비싼 ‘삼전닉스’ 대신 중국? 미국기업들, 중국산 눈돌리지만…[디브리핑]

AI 열풍에 메모리값 급등…미국 기업들 중국산 대안 검토
애플도 ‘창신메모리’ 사용 승인 요청…FT “중국 의존 키울 수도”
‘칩 전쟁’ 저자 “가격보다 공급망 안보가 더 중요”…해법 아냐
[연합]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미국 기업들이 중국산 메모리 반도체를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비용은 낮출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높여 공급망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3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칩 전쟁(Chip War)’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기고문에서 “중국은 미국의 ‘칩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답이 아니다”라며 “가격만 보고 중국산 메모리를 선택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위험한 결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는 전례 없는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생성형 AI 모델을 학습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대용량 D램이 필수 부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FT는 올해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구매 규모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0.7%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20년 평균의 약 6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올해 전 세계가 메모리 반도체 구매에 쓰는 돈은 음료와 신발, 스마트폰 구매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전체 투자도 올해 세계 GDP의 1.25%, 내년에는 1.5%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불과 3년 전과 비교하면 약 3배 규모다. 특히 투자액의 절반 이상이 메모리 기업으로 향할 것으로 분석됐다.

메모리 업체들의 실적도 호황을 맞고 있다.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은 최근 매출총이익률이 80%를 웃돌았고 삼성전자 역시 대규모 생산시설 증설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신규 생산라인을 확대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다. 마이크론도 미국과 대만에서 생산시설 확장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FT는 현재 메모리 가격 상승이 AI 인프라 구축 경쟁과 공급 부족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메모리 업체들은 불과 2023년만 해도 공급 과잉으로 적자를 기록했지만, AI 투자 붐으로 시장이 공급 부족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가격 협상력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높은 메모리 가격은 전방 산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애플은 최근 맥북과 아이패드 가격 인상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을 지목했고, 제너럴모터스(GM)를 비롯한 자동차 업체들도 메모리 비용 증가를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꼽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로이터]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기업들이 주목하는 곳이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다.

한때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평가받던 CXMT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며 현재 세계 4위 D램 업체로 성장했다. 최근 기업공개(IPO)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아직 AI 서버용 HBM은 생산하지 않지만 범용 D램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CXMT를 수출 통제 대상인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중국과의 관세 및 희토류 협상 과정에서 이를 철회했다.

최근에는 메모리 공급난이 심화하면서 애플이 백악관에 CXMT 제품 사용 승인을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비용 부담이 커진 미국 기업들이 중국산 메모리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FT는 이를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밀러 교수는 일부 기업들이 CXMT를 메모리 가격 상승의 해법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 정부 관련 기업이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회사가 수익성과 관계없이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할 경우 글로벌 구매자들이 중국 공급망에 종속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가격만 보면 중국산 메모리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망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메모리 가격을 낮추기 위해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선택이 오히려 향후 협상력 약화와 공급망 불안이라는 더 큰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밀러 교수는 “문제는 단순히 메모리 가격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산업의 공급망을 누가 통제하느냐”며 “칩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