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대 재결합이 보여준 ‘롱테일 IP 산업’
3040 구매력, Z세대 유입한 K-팝 생태계
![]() |
|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룹 빅뱅의 월드투어 고양 콘서트 예매에 무려 21만 명의 대기가 발생, 3일 공연이 전석 매진됐다. [갤럭시코퍼레이션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7년의 저주’는 끝났다. 한때 K-팝의 숙명같던 ‘마의 구간’이 옅어진 것이다. 10대 팬은 성장해 이른바 ‘내돈내산(내 돈 내고 내가 산다)’의 확실한 구매력을 갖춘 ‘큰 손’이 됐고, 새로운 팬덤은 그들을 ‘Z세대의 K-팝 클래식’으로 소비한다.
30일 가요계에 따르면 데뷔 20주년을 맞은 빅뱅을 비롯한 2세대 아이돌과 데뷔 10주년을 맞아 재결합한 아이오아이가 여전히 강력한 K-팝 IP(지식재산권)로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빅뱅, 아이오아이 등의 컴백과 여전한 인기는 ‘추억 소비’라고만 볼 수는 없다”며 “과거의 K-팝은 ‘세대교체 중심 산업’이었지만 지금은 ‘롱테일(Long-tail) IP 산업’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K-팝 레전드’ 빅뱅이 돌아온다. 지난해 지드래곤이 컴백할 당시부터 ‘빅뱅 성인식’을 예고했던 만큼 올 한 해 이어질 이벤트는 팬들의 기다림이 컸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빅뱅은 데뷔 기념일인 8월 19일을 맞아 9년 만의 월드투어로 완전체 활동을 시작한다.
YG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빅뱅 월드투어 고양 콘서트 일반 티켓 예매엔 총 21만 명의 대기 인원이 몰리며 접속 장애를 빚었다. 8월 21~23일까지 사흘간 이어지는 공연은 오픈 22분 만에 전석 매진. 심지어 팬들 요청으로 급히 편성된 추가 티켓 역시 일반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데뷔 날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 무대에서 진행되는 팬 이벤트 티켓 역시 6분 만에 전석 완판을 기록했다.
일명 ‘국민 프로듀서’의 태동을 알린 걸그룹 아이오아이의 귀환은 ‘레전드 IP’가 다시 한번 각인된 ‘사건’이다.
2016년 Mnet ‘프로듀스 101’을 통해 결성된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오아이(I.O.I)는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아 세 번째 미니앨범 ‘아이오아이 : 루프(I.O.I : LOOP)’를 발매, 약 9년 만에 완전체로 복귀했다. 활동 종료 이후 연기, 솔로 가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아이오아이의 컴백은 10년의 성장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 |
| 아이오아이 [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 |
컴백과 동시에 노래 역시 엄청난 인기였다. 타이틀곡 ‘갑자기’는 발매 직후 단숨에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 핫100 1위에 오르더니, ‘장기 집권’ 체제를 이어갔다.
흥행은 종합 차트에서도 확인됐다. 한국음악산업협회가 운영하는 써클차트의 6월 음원 종합순위에서도 ‘갑자기’는 1위에 올랐다. 김진우 써클차트 데이터 칼럼니스트는 “아이오아이의 1위는 음악적 소비를 넘어 시대를 공유했던 대중과 팬들의 향수, 이들의 데뷔 단계부터 성장을 지켜본 ‘서사’가 결합해 음원 차트에서 파괴력을 보여준 사례”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노래방까지 장악했다. 금영 노래방에 따르면 ‘갑자기’는 여자 아이돌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에 올랐고, 반주기 전체 인기 차트 톱100에도 올랐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음악부터 신스팝, 디스코 비트의 복고풍인 데다 아이오아이와 그 시절을 함께 보낸 팬들, 혹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을 접했던 사람들이 아이오아이가 ‘픽 미’(Pick me)를 부르던 시절로 함께 되돌아간 것”이라고 했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B1A4는 데뷔 15주년을 맞아 복귀했고, 하이라이트는 꾸준히 페스티벌 무대와 개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PM과 슈퍼주니어, 샤이니의 완전체, 유닛, 개인 활동은 여전히 엄청난 파급력이다. 앞서 2NE1은 데뷔 15주년 글로벌 투어의 시작점이었던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공연에 총 40만 명 이상의 동시 접속자가 폭주했다.
이른바 ‘마의 7년’이 깨진 지는 오래다. 표준계약서가 명시한 전속계약 기간인 7년이 지난 그룹이 해체되거나 뿔뿔이 흩어졌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K-팝 그룹은 수명이 길어졌다. 10년은커녕 20~25년 이상의 장수 그룹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가장 큰 요인은 팬덤의 성장이다. 2~3세대 K-팝 스타들이 전성기를 누린 2000년대 중후반에서 2010년대 중반에 10~20대 학창 시절을 보낸 팬덤은 현재 20대 후반~40대 초반으로 성장했다. 일정 부분 구매력을 갖춘 핵심 ‘경제 인구’에 해당하는 이 연령대는 학생 시절의 지갑 사정에서 벗어나 ‘최애 스타’들의 귀환에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학생 시절에는 CD 한 장 사기도 부담스러웠던 팬들이 이제는 스타디움 공연 티켓과 프리미엄 굿즈, LP, 멤버십까지 적극적으로 소비한다”고 귀띔했다.
![]() |
| 코첼라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빅뱅 [각 소속사 제공] |
실제로 소녀시대, 지드래곤, 태양, 방탄소년단, 하이라이트의 콘서트 현장엔 가수와 함께 성장한 팬들이 적잖다. 이들 중엔 “최애 가수의 공연에 내가 번 돈으로 와보고 싶었는데 이제 꿈을 이뤘다”는 팬들도 적지 않다. 학생 시절의 팬덤이 ‘응원’이었다면, 지금의 팬덤은 산업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구매력이 됐다.
기존 팬덤을 넘어 새로운 팬도 유입된다. 소위 레전드 IP들의 귀환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공간은 틱톡,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이다. 업계에선 숏폼 플랫폼의 확산으로 10~20대 초반의 Z세대들이 과거의 히트곡과 아티스트를 한결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 팬덤에겐 이들의 곡이 향수이나, 지금 세대에게 이 곡들은 현재의 K-팝과는 완전히 차별화한 ‘신선한 트랙’이다. 이제는 과거의 K-팝이 Z세대의 클래식이 된 상황이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요즘엔 우연히 음악방송 프로그램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재조명되는 현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아이오아이의 ‘갑자기’ 역시 숏폼 콘텐츠와 밈을 통해 확산, 세대를 넘어 소비됐다.
이 관계자는 “최근 2, 3세대 K-팝 그룹 공연장에 가면 10~20대부터 30~40대 팬덤이 공존하며 자연스럽게 세대 통합이 이뤄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라고 했다.
팬덤의 공존 현상은 음원 차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이오아이가 장기집권하고 코르티스, 에스파, 아일릿, 리센느, 한로로, 하츠투하츠가 공존한다. 심지어 써클차트 6월 집계 기준, 3개월 이내 발매된 신곡 이용량 비중은 19.3%에 그쳤다. 신보와 검증된 IP가 섞여 특정 곡과 가수의 ‘독점 체제’를 방어하고 있다.
2, 3세대 그룹들의 여전한 인기는 우연이 아니다. 군 복무, 재계약 등 아이돌 그룹의 수명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럿이다. 결성 10년 이상 된 2~3세대 K-팝 그룹들은 현재 모든 걸림돌을 해소한 상태다.
빅뱅 샤이니 등 보이그룹 멤버들이 이미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활동을 재개한 상태고, 계약 만료 이후에도 팀의 브랜드를 유지하며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 유연성을 확보했다.
게다가 상표권 문제를 해결하거나 독립 레이블을 설립하는 사례도 생겼다. 하이라이트는 비스트상표권을 되찾았고, B1A4는 독립 레이블로 활동 기반을 다졌다.
![]() |
| B1A4 [드림어스컴퍼니 제공] |
업계 관계자는 “이들 그룹은 기존 소속사 체제를 벗어나 음악적·활동적 주도권을 직접 확보하며 고연차 아티스트로서 자신들의 날개를 펴고 있다”고 했다.
사실 대형 기획사를 벗어난 아이돌의 독자 행보가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음원 발매는 물론 글로벌 직배사와 글로벌 음원 플랫폼과의 조건 계약, 전 세계 주요 공연장의 대관 경쟁, 복잡한 현지 프로모션 조율, 글로벌 통관과 관세 장벽이 얽힌 MD의 다국적 물류망 구축 등 실무 현장의 허들이 상당히 높다.
음원 플랫폼 플로를 운영하는 드림어스컴퍼니 관계자는 “개별 아티스트가 자체 레이블이나 1인 기획사를 설립해 주도권을 쥐더라도, 대형 기획사가 수십 년간 쌓아온 자금력과 제작 인프라, 글로벌 유통망의 벽을 홀로 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룹과 팬덤의 활동을 지지하는 플랫폼이 정교해진 것도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동력이다. 팬덤 플랫폼, 공연 인프라, 글로벌 유통 시스템 등이 과거보다 수월해진 것이다. 과거엔 대형 기획사만 할 수 있었던 팬 커뮤니티 운영과 MD 판매, 글로벌 유통, 공연 제작 등을 함께 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B1A4 역시 음원 플랫폼 플로를 통해 음반원 유통, 콘서트 기획, 팬덤 비즈니스, 굿즈 개발까지 함께하고 있다.
오랜 시간 ‘신인 중심’ 시장으로 세대교체를 거듭해 왔던 K-팝의 수명이 달라지는 때다. 신인 그룹은 새로운 팬덤을, 레전드 아티스트는 축적된 브랜드와 서사를 기반으로 또 다른 시장을 만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변화는 아티스트의 활동 방식과 산업 인프라가 함께 진화한 결과”라며 “지금의 K-팝은 축적된 IP가 세대를 넘어 반복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