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야심가 케빈 워시…트럼프, 뒤통수 또 맞나[홍길용의 화식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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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지 않는다. 군주가 의도를 내보이면 신하는 그에 따라 잘 보이려고 스스로를 꾸밀 것이다 (중략) 군주가 취향을 드러내지 않으면 신하는 즉시 본심을 드러낼 것이다. 군주가 지략이나 지혜를 감추면 신하들은 스스로 신중하게 처신할 것이다” 한비자(韓非子) ‘주도(主道)’

친절한(?) 연준은 이젠 그만

케빈 워시(Kevin Warsh) 연방준비제도(Fed) 신임 의장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이뤄진 변화는 금리정책의 방향을 미리 알려주는 이른바 선행 지침(forward guidance)의 축소 선언이다. 시장이 연준의 방향을 미리 알면 쏠림으로 인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다. 헤지펀드에서 근무했던 워시다. 금리 방향성을 바탕으로 한 매크로나 차익거래 전략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연준의 권위 회복이다. 워시는 모건스탠리와 백악관에서 일하면서 소통 보다는 모호한 화술로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앨런 그린스펀 의장을 보아왔다. 그런데 최연소 연준 이사가 되면서 만난 벤 버냉키 의장은 금융위기를 맞아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고, 양적완화(QE) 정책까지 펼쳤다. 자신의 철학과 어긋난 연준의 행보에 워시는 2011년 이사직을 내던진다. 이후 연준은 모두가 다 아는 경제지표를 바탕으로 통화정책을 펼쳤다. 외부에서 연준의 패를 다 볼 수 있으니 참견도 심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전 의장의 대립은 그 대표적 사례다.

지난 5월 15년 만에 연준에 의장으로 돌아온 워시는 취임사에서 롤모델로 그린스펀만 언급하고, 5년을 함께 일한 버냉키는 이름조차 꺼내지 않았다. 이후 워시는 입도 다물고 패도 철저히 감춰 연준의 권위를 되살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달 연준 개혁을 위해 만든 태스크포스(TF)가 대표적이다.

“연준을 개혁하라” … 독수리 5형제 ‘떴다’

새로운 리더가 조직을 장악하고 바꾸는 데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명망 있는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형식은 꽤 설득력이 높다. 영국, 인도, 브라질 전 중앙은행 총재를 비롯해 노벨경제학자 수상자,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거물급 인사 15명으로 구성된 TF는 데이터(Data), 인플레이션 측정 방식(Inflation Frameworks), 소통(Communication), 대차대조표 정책(Balance Sheet Policy), 생산성과 일자리(Productivity & Jobs) 등 5개 분과로 나눠 향후 연준의 개혁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외부 전문가라고 하지만, 그들을 선정하고 개혁 주제를 제시한 게 리더라면 큰 방향은 정해졌다고 봐야한다. 특히 워낙 유명한 이들이어서 이들이 어떤 주장을 펼칠 지도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5개 TF의 방향성을 짧게 예상해보면;

① 과거가 아닌 현재를 보여주는 데이터로 경제를 제대로 읽고

② 정책 신뢰로 금리 변동성을 낮추며

③ 침묵으로 시장의 합리적 기능을 되살리면서

④ 통화정책이 아닌 양적긴축(QT)으로 거품을 줄이고 건전한 재정을 유도한다.

⑤ AI 등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대한 믿음을 구축해 인플레이션에 대응한다.

연준의 패를 최대한 감추되 경제 현실에 맞는 최적의 정책을 펼치겠다는 뜻이다.

인플레 잡는 기준금리 인상 최소한으로

이렇게 되면 연준의 권위가 지금보다 강화될 뿐 아니라, 시장이 한쪽 방향으로 쏠리지 않아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거나 내릴 필요도 줄어들 수 있다. 여기에 QT와 기술혁신까지 붙이면 워시의 방향은 “금리를 최소한으로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큰 칼을 너무 자주, 크게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경거망동은 권위와 상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내리라”고 워시를 의장에 지명했지만 워시는 오히려 정부가 연준에 간섭하기 어렵도록 개혁하려는 모습이다. 왜 그럴까?

워시는 부잣집 아들이다. 대기업 가문(Estée Lauder)의 사위이기도 하다. 최연소 연준 이사를 지냈고, 투자은행(IB)에서도 오래 일했다. 자리나 돈에 집착할 이유가 적다. 오히려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려는 쪽일 가능성이 크다. 개혁을 통해 연준에 이른바 워시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상당한 영예이고 높은 권위를 누릴 수도 있다. 61세에 의장이 된 그린스펀은 무려 18년간 재임했다. 워시는 올해 56세다. 길게 볼 수 있는 나이다.

‘케빈은 야심가’… 역대 의장들 관상과 비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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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연준 의장의 키와 금리정책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도 있다. 그렇다면 관상(觀相)은 어떨까? 관상은 과학이 아니다. 하지만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다. 사람은 얼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권력을 오래 가진 사람의 얼굴에는 시간과 함께 습관과 책임이 새겨진다. 얼굴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이 얼굴을 만든다. 그렇다면 역대 연준 의장의 얼굴에는 어떤 통화정책의 철학이 새겨져 있을까?

① 초긴축을 단행한 폴 볼커(Paul Adolph Volcker, 1979~1987) 목표에 돌진하는 맹장(勇將) 형

② 최장수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1987~2006) 속을 알 수 없는 책사(策師) 형

③ 양적완화(QE)로 금융위기를 극복한 벤 버냉키(Ben Bernanke, 2006~2014) 명의(名醫) 형

④ QE 종료를 시작했지만 속도를 조절한 재닛 옐런(Janet Yellen, 2014~2018) 덕장(德將) 형

⑤ 온화하지만 균형과 원칙을 중요시 한 제롬 파월(Jerome Powell, 2018~2026) 조율자

워시의 얼굴을 관상으로 풀면 한 마디로 ‘권위를 다시 세우려는 재상(宰相)형’이다. 눈빛은 모이고, 두 눈썹 사이는 맑으며, 입이 잘 다물어져 있으며 턱이 단단한 상이다. 공명심(功名心)이 크고, 관운(官運)도 있으나 아직 대기(大器)가 완전히 무르익지는 않은 얼굴이다.

다만 워시의 모습에서는 긴장이 엿보인다. 중책을 맡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임명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뜻과 시장 사이에 큰 간극을 의식해서일지도 모른다. 매파로 알려졌던 그는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트럼프로부터 의장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취임 후 첫 금리결정에서 그는 꽤 매파적 성향을 드러냈다. 시장은 물론 트럼프와도 긴장관계가 될 수 있음을 예고한 셈이다.

“잘 돼야 잘한 것” … 개혁 성패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만들어진 저금리 경제는 이제 막을 내린 듯하다. 중앙은행과 재정의 균형은 더욱 중요해졌다. AI는 금융시스템을 뿌리째 흔들 변수가 되고 있다. 연준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다만 워시가 개혁에 성공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QT가 가져올 파장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파월 전 의장이 관례를 깨고 이사로 남아있고, 민주당 정부에서 임명한 이사들이 여전히 과반이다. 외부 전문가 조언을 보수적인 연준 조직이 얼마나 받아들일 지도 미지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준이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정책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새로운 데이터가 경제를 얼마나 정확히 보여주는지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침묵은 시장의 오해를 키워 위험 프리미엄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선행지침은 중장기 금리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안전판이 될 수도 있다. 연준이 실수를 하면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치를 대가는 너무 크다.

중앙은행의 권위는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맞는 판단에서 나온다. 침묵도, 모호함도, 선행지침도 결국 신뢰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시장은 한동안 권위만으로 연준을 믿지 않을 것이다. 워시의 성패는 침묵이 아니라, 그 침묵 뒤에 있었던 판단의 정확성으로 결정될 것이다.

한비자의 술치(術治)는 군주의 권위를 세운다. 그러나 시장이라는 신하가 군주의 침묵을 ‘깊이’가 아니라 ‘불안’으로 읽는 순간, 감춘 패는 권위가 아니라 위험이 된다. 워시의 침묵이 어느 쪽이었는 지는 결국 연준이 내놓을 결과가 답할 것이다.

[첨부] 케빈 워시가 연준에 설치한 TF 5개 분과와 소속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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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Data)

연준이 결정에 활용하는 경제지표들은 대부분 한 달 이상 지난 수치다. 워시는 현재의 데이터를 원한다.

하버드 경제학자 라즈 체티(Raj Chetty)는 코로나19 때 카드결제·민간 급여·소상공인 매출 데이터를 묶어, 정부 통계보다 몇 주 빠르게 동네와 소득계층 단위로 경제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월마트 전 회장인 더그 맥밀런(Doug McMillon)은 실물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이다.

케빈 머피(Kevin Murphy) 시카고대학 교수는 가격이론의 대가다. 데이터를 식별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 지 판단하는 데 전문가다.

▶ 인플레이션 측정 방식(Inflation Frameworks)

트럼프는 금리 인하를 원한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경기와 재정에 부담이 크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Thomas Sargent) 뉴욕대 교수는 중앙은행과 재정의 공조만으로 인플레이션을 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연구했다. 정부는 재정적자가 더 늘어나지 않게 하고, 중앙은행은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시장의 믿음을 얻는 게 핵심이다.

그렉 맨큐(Greg Mankiw) 하버드 경제학 교수 역시 사람들의 기대를 조정하면 물가를 잡기 한결 수월해 진다는 이론적 명분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결제은행(BIS) 출신 경제학자인 빌 화이트(Bill White)는 부채와 자산 거품을 주목해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했다. 물가 지표 외에 부채와 자산가격에서 인플레이션을 읽어내는 방법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 소통(Communication)

머빈 킹(Mervyn King) 전 영란은행(BoE) 총재는 재임 기간 금리 경로를 알려주지 않으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주력했다. 딱 워시 스타일이다.

피터 피셔(Peter R. Fisher)는 뉴욕 연준에서 트레이딩을 맡았고, 세계 최대자산운용사인 블랙록에서 채권 부분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연준이 신호를 먼저 주면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고,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아는 전문가다.

아르미니오 프라가(Arminio Fraga) 전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 역시 재임 기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며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워시가 가고 싶은 길을 가본 셈이다.

▶ 대차대조표 정책(Balance Sheet Policy)

워시는 금융위기 대응과정에서 연준의 QE 확대에 반발해 이사직을 사임했다. QE 과정에서 연준 보유하게 된 국채를 시장에 내다파는 대차대조표 축소는 워시의 숙제이지만 시장에서는 가장 경계하는 정책이다.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사실상의 긴축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풀면 금리를 올리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연준 이사를 지낸 제러미 스타인(Jeremy Stein)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돈이 오래 풀려 있으면 시장이 높은 수익을 좇게 돼 위험이 높아진다는 입장이다.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 전 인도준비은행(RBI) 총재는 QE로 인한 유동성 팽창의 위험을 경고해 온 인물이다.

캐런 다이넌(Karen Dynan) 전 재무부 경제정책 담당 차관보는 QE가 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생산성과 일자리(Productivity & Jobs)

워시는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인플레이션을 누를 힘이 있다고 믿는다.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였고 현재 앤트로픽에서 일하고 있는 찰스 존스(Charles Jones)는 AI가 경제 성장에 미칠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은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이자 디지털자산 투자 전문가이다. 최신기술의 동향에 정통한 인물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임원인 아샤 샤르마(Asha Sharma)는 기업들의 AI 활용 현황을 가장 잘 읽고 있는 전문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