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스타 모인 ‘우리 시대 에투알’
고국 돌아온 숨은 보석들의 향연
포스트 OOO 꿈꾸는 ‘육각형’ 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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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 박세은이 기획한 발레 공연 ‘우리 시대 에투알’ [예술의전당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발레 종가’ 파리오페라발레, 마린스키발레단, 네덜란드국립발레단,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 뉴욕시티발레단, 라 스칼라 발레단….
유럽과 미주의 유수 오페라하우스와 발레단이 문을 닫으면 한국은 ‘발레 성수기’가 된다. 7~8월 유럽의 주요 발레단이 여름 휴가(Off 시즌)에 들어가는 시기다.
발레계 관계자는 “휴가 기간 정규 시즌 공연은 없어 단원들의 단체 활동은 쉴 수 있지만, 갈라 공연, 해외 초청, 개인 프로젝트 등의 투어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기간 한국에서 굵직한 갈라 공연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한국의 경우 7~8월은 일종의 클래식 공연 비수기다. 여름 음악 페스티벌이 자리하고 있으나 대형 악단들의 초청 비율이 뚝 떨어지니 공연장 대관 일정에도 비교적 여유가 생긴다.
올여름도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세계 무대에서 정상을 증명한 스타들의 화려한 테크닉부터 해외 무대 구석구석에서 묵묵히 기량을 피워낸 숨은 보석들의 고국 복귀 무대, 세계 무용계를 지각 변동시킬 차세대 신성들의 비상까지. 각기 다른 색채와 층위를 지닌 세 개의 대형 갈라 공연이 올여름 한국 무대를 한층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비단 ‘그들만의 잔치’는 아니다. 이미 관객이 응답하고 있다.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의 조주현 예술감독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한국 발레와 무용이 사랑받고 있다. 이 인기에 ‘이게 웬일이야’ 할 정도로 너무나 감사하다”며 “지금이 정점이자 최고치인 것 같다. 지난 10년여간 한국인 무용수들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며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발레 명가’들의 최고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세계 발레사의 축을 담당하는 명문 발레단 최정상 무용수들의 기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무대다. ‘우리 시대 에투알 2026’(7월 28~29일, 8월 1~2일)이다.
이 공연의 ‘강력한 무기’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에투알) 박세은이다. ‘우리 시대 에투알’은 그가 직접 기획과 큐레이션을 맡았다.
박세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발레는 나 하나만 잘하면 되는 일이지만, 큐레이팅은 수많은 스태프와 합을 맞춰야 하는 공동 작업이라 많은 희생과 시간이 뒤따른다”며 “어려움 속에 완성된 무대를 기다리는 마음은 비교할 수 없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올해 공연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중심이던 무대를 이탈리아 라스칼라 발레단과 미국 뉴욕시티발레단의 수석진까지 확장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우아한 정통 프랑스 스타일, 뉴욕시티발레단이 자랑하는 조지 발란신·제롬 로빈스의 미니멀리즘, 라스칼라 발레단의 강렬한 서사와 이탈리아 에너지가 한 공간에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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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 박세은이 기획한 발레 공연 ‘우리 시대 에투알’의 타일라 팩, 니콜레타 마니 [예술의전당 제공] |
박세은은 “춤의 스타일을 넘어 ‘관객의 마음을 울리고 영감을 주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세계 무대에서 직접 공연을 보여 이 친구들의 춤은 꼭 한국 관객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다.
뉴욕시티발레단의 타일러 팩은 첫 내한 무대에서 제롬 로빈스의 명작과 발란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을 통해 미국 네오클래식 발레의 속도감과 정교한 기량을 보여준다. 그는 “내게 음악은 전부다. 스토리 발레가 아니더라도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기면 표현력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며 “움직임의 정교함과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라 스칼라 발레단의 유일한 여성 에투알 니콜레타 마니는 수석 무용수 안드레아스 티모페이 안드레아 센코와 ‘카라바조’ 파드되(7월 29, 30일), ‘카르멘’ 침실 파드되(8월 1, 2일)를 선보인다. 그는 “이탈리아 무용수들은 독창적인 아티스트리와 강렬한 무대 개성을 지니고 있다”며 “무대 위에서 관객과 뜨거운 에너지를 교환하고 소통하는 예술적 순간을 만들겠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번 무대에서 박세은은 장 기욤 바르가 그를 위해 안무하고 드뷔시의 음악을 올린 세계 초연작 ‘달빛(Clair de Lune)’을 선보인다. 손정범 피아니스트의 라이브 연주와 호흡을 맞춘다.
그는 “드뷔시의 음악에 맞춰 편안하게 빠져들 수 있는 작품으로, 스펙터클한 기술보다 음악과의 조화를 보여주고 싶다”며 “라이브 연주와 숨을 맞출 때 무용수로서 느끼는 행복감은 두 배가 된다”며 웃었다. ‘달빛’ 외에도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파드되, ‘타이스’ 명상곡 파드되, ‘돈키호테’ 파드되를 선보인다. 아망딘 알비송, 폴 마르크, 기욤 디오프가 함께 온다.
공연의 백미는 각기 다른 발레단 출신의 무용수 전 출연자가 모여 선보이는 누레예프 버전 ‘라 바야데르’(8월 1, 2일) 무대다.
파리오페라발레 쉬제 윤서후,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 정서현, 독일 라이프치히발레 최수정, 일본 다이라쿠다칸 양종예까지.
어느덧 23년째 이어지고 있는 ‘한국을 빛낸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8월 1~2일, 나루아트센터)은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얼굴들을 소환한다. 세계 유수 오페라하우스와 발레단에서 활약 중이나, 국내 관객은 만날 기회가 드물었던 ‘숨은 보석’들을 조명하는 자리다. 조주현 예술감독(전 워싱턴발레단 수석)과 장광열 프로듀서가 이끄는 프로젝트다.
이 무대는 ‘갈라 공연’을 거부한다. 장광열 제작감독은 “해외 입단 5년 차 이상의 검증된 주역들이 소속 발레단의 간판 대표작과 세계적 거장들의 초연작을 직접 들여와 소개한다”며 “상업성보다 공공성을 지향하는 무대”라고 했다. 자체 예산도 부족해 이 무대의 무용수와 예술감독, 제작감독은 ‘열정페이’를 자처해 뛰어든다. 장 감독은 “무용수들이 말도 안 되는 출연료를 받으며 마음만 갖고 서는 무대라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눈물을 삼켰다. 조 예술감독은 이에 “무용수들이 한국 관객 앞에 서는 무대는 가장 긴장되면서도 그동안 쌓아온 눈물과 땀, 고심의 시간을 담아 진심을 보여주고 싶은 특별한 자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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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23회를 맞은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주역들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제공] |
다이라쿠다칸 부토 무용수인 양종예는 2026 도쿄 SAI 댄스 컴페티션에서 대상을 받은 17년차 아티스트다. 그는 내면의 깊은 방을 탐구하는 컨템포러리 부토 ‘정체불명 X의 소환’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파리오페라발레 입단 이후 10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서는 윤서후는 누레예프 안무의 ‘백조의 호수’ 파드되와 ‘레이몬다’ 파드되를 골라왔다. 그는 “입단 후 10년 만에 고국 땅에서 서는 첫 무대라 감회가 남다르다”며 “파리오페라발레단 고유의 우아함과 귀족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특히 ‘레이몬다’ 파드되는 이번 공연 중 가장 긴 ‘그랑 파드되’다.
독일 라이프치히 발레단의 최수정 역시 10년 만의 복귀 무대다. 그는 우베 숄츠의 명작 ‘천지창조’ 중 아담과 이브의 순수한 교감을 담은 파드되와 감정의 인연을 그린 ‘수베니어’를 올린다. 독일 젬퍼오페라발레단의 정서현은 단체의 리허설 디렉터이자 세계적 안무가인 허용순의 세계 초연작 ‘안나 카레니나’ 듀엣과 위트 넘치는 현대작 ‘1+1’을 스펙터클하게 펼쳐낸다.
23년 전 이 무대의 1회 출연자였던 허용순은 이번엔 안무가로서 자기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해외 컴퍼니 작업 시 언제나 최상의 무용수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어떤 컴퍼니에서 작업하든 늘 가장 뛰어나고 성실한 건 한국인 무용수였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하게 돼 뿌듯하다”고 했다.
‘포스트 박세은’, ‘포스트 김기민’을 꿈꾸는 신성들도 기다린다. 콩쿠르를 휩쓸고 세계 명문 발레학교와 주니어 단체로 입단을 확정한 넥스트 K-발레 스타다.
백림아트가 ‘아시아 발레 콩쿠르’의 허브 격인 탄츠올림프아시아 10주년을 기념한 이 무대에 영국 로열발레학교,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주니어 컴퍼니,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최정상 교육 기관과 주니어 컴퍼니들이 연대하는 무대(7월 31일, ‘갤럭시 노바 온 스테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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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럭시 노바 온 스테이지 출연 무용수들 [백림아트 제공] |
어린 한국의 무용수들이 단단한 기본기와 바가노바 테크닉, 예술성을 균형 있게 갖춘 일명 ‘육각형 무용수’로 성장하고 있는 현재를 볼 수 있는 자리다. 이번 무대의 라인업은 백림아트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지원을 통해 세계적 무용수로 도약한 주인공들이 상당수다.
3년 연속 한국인 우승 기적을 쓴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AGP) 우승자로 영국 로열발레학교에 재학 중인 서민준은 균형 잡힌 테크닉과 예술성을 바탕으로 ‘해적’ 그랑 파드되를 선보인다.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에 정단원으로 입단 예정인 박이은은 아메리카발레시어터(ABT) JKO 스쿨을 거쳐 유럽 메인 컴퍼니로 직행한 유망주다. 서민준과 ‘해적’ 무대를 함께 꾸민다.
예중, 예고를 거치지 않고 국립발레단에 합격한 김윤과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주니어 컴퍼니에 발탁된 전지율은 ‘파키타’ 파드되를 연주한다. 스위스 로잔 콩쿠르를 거쳐 각각 네덜란드 국립발레아카데미와 영국 로열발레학교 입학을 확정한 이예린과 홍수림은 김주안과 함께 ‘백조의 호수’ 파 드 트루아를 선보인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정건세는 안무작 ‘별종’ 듀엣 무대를 가진다. 그는 “제가 생각하는 ‘별종’은 남들과 차별화된 스페셜리스트”라며 “현대무용은 서툴고 완벽하지 않은 어긋남 자체도 하나의 근사한 언어가 된다. 창작 과정은 나에게 의무가 아닌 최고의 리프레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