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바로 앞 마천루라니…“세계적인 보석에 흠집 나면 안돼”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세계유산센터장
세운4구역 재개발과 종묘 경관 훼손 우려
종묘 보호 위해 ‘유산영향평가’ 필요 강조
사도광산 전체 역사 반영 결정문 채택 성과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일 양국 중재 이을 것
부산선언 채택으로 6번째 전략목표 확장해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장 [국가유산청 제공]


“10년 뒤 자녀가 ‘종묘 주변 개발이 너무 진행돼 이제는 그 가치를 온전히 누릴 수 없게 됐다’는 말을 듣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장은 최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현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아소모 센터장은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책임”이라며 이번 방한을 계기로 사도광산과 종묘, 부산선언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종묘 중요성 강조 “유산영향평가 필수”


종묘 영녕전 전경 [한국관광공사 제공]


아소모 센터장은 종묘를 ‘소중한 보석’이라고 표현하면서 최근 불거진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으로 시각적 완결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그는 종묘가 유네스코 공식 ‘세계유산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산이라는 점도 언급하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종묘는 대한민국이 최초로 세계유산에 등재하면서 국제사회에 선물로 안겨준 대단히 중요한 유산”이라며 “한국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 자체를 담고 있기 때문에 보존은 한국만의 과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을 가져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 세운4구역 변경안은 청계천변 건축물 높이를 71.8m에서 141.9m로, 종로변은 54.3m에서 98.7m로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역사문화경관을 해칠 것이라는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지난 3월 비공개 서한을 통해 세계유산영향평가(HIA) 시행을 권고한 바 있다.

종묘대제 [한국관광공사 제공]


아소모 센터장은 “종묘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개발 압력 이슈는 전 세계 수많은 도시 지역의 세계유산들이 직면한 것과 똑같은 도전”이라며 “이에 대한 대안은 첫째, 유산 보호를 위한 적절한 규제와 법적·행정적 도구를 갖추는 것이고 둘째, 개발이 유산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유산영향평가’ 절차”라고 강조했다.

유산영향평가(HIA)는 세계유산 주변 지역에서 개발 행위가 추진될 때, 해당 개발이 유산의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조사·예측·평가하는 제도다. 개발 계획 수립 초기 단계부터 유산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여 최선의 대안을 모색하며,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경관·구조적 손상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소모 센터장은 “종묘라는 소중한 보석이 어떠한 손상도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영향평가를 진행하는 것”이라면서 “세계유산센터는 한국의 국가유산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유산영향평가 진행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사도광산 ‘전체 역사’ 반영 요구 이끌어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장 [국가유산청 제공]


4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한 주요 이슈 중 하나는 23일 일본의 사도광산 관련 결정문을 채택한 것이다. 광산 개발의 전 기간에 걸친 ‘전체 역사(the whole history)’를 현장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다루고, 해석·전시 전략 및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당사국들과 긴밀히 협의하라고 권고한 것이 골자다. 이는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인의 강제 동원 및 노역 사실을 현장 해설과 전시물에 명시하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어 세계유산위는 일본 정부에 2027년 12월 1일까지 후속 조치 이행 상황 보고서를 다시 제출하도록 했다. 이를 토대로 2028년 제50차 회의에서 일본의 이행 사항을 재검토할 예정이다. 결정문 채택에는 아소모 센터장의 노력이 큰 힘이 됐다.

아소모 센터장은 “당사국이 특정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하는 행위는 위원회가 내리는 결정을 따르겠다는 자발적 약속”이라며 “보고서가 제출되면 자문기구 전문가들과 함께 유산의 보존 상태가 악화했는지, 결정을 완전하게 이행했는지 면밀히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2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장 기자간담회 [국가유산청 제공]


결정문을 냈어도 국가별로 입장에 따른 해석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일본은 ‘강제 동원’ 표현을 전시물에 명확히 담지 않는 등 전체 역사를 충실히 반영하라는 요구를 사실상 무시해 왔다.

아소모 센터장은 “이번 결정문의 핵심은 모든 위원국의 합의를 거쳐 채택됐다는 사실 그 자체”라며 “결정문 속에 모든 위원국의 의견과 기대, 이해관계가 반영됐고 그것이 컨센서스(총의)‘로 채택됐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세계유산위원회는 특정 국가에 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 없는 만큼 ‘대화와 협력’을 통해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뜻도 전했다. 이는 유네스코의 창립 이념과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아소모 센터장은 “일본과 대한민국 모두 유네스코에게 대단히 중요한 파트너 국가”라며 “두 국가 모두와 계속 협력하며 양국 간 대화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독려하고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선언’ 채택… 6번째 전략목표 ‘협력’ 추가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세계유산센터장(사진 왼쪽)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사진 오른쪽)이 20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밖에도 아소모 센터장은 회의 첫날인 20일에 전원일치로 채택된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선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기존 5대 전략목표(신뢰성·보존·역량 강화·소통·공동체)에 ‘협력(Collaboration)’을 추가해 ‘6Cs’로 확장하는 안으로, 한국이 주도해 성과를 끌어냈다. 기후변화와 무력분쟁, 개발 압력 등 복합적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자는 취지다.

아소모 센터장은 “부산선언은 두 손이 서로를 맞댄 세계유산 로고의 의미를 완벽히 구현한 결과물”이라며 “새롭게 추가된 ‘협력’이 유네스코의 핵심 목표로 자리 잡아 인류 유산을 안전하게 미래 세대에 물려주는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