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이혼’에 가슴 철렁한 개미들…미·중 사례 보니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연합]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이혼이 남긴 상흔에 시름 하는 대상은 그 당사자들과 가족뿐만이 아니다. 이혼 당사자가 상장기업의 대주주라면, 투자자들도 이혼 소식에 가슴이 철렁할 수 있다.

2018년 캘리포니아의 한 구호기구 행사에서 포즈를 취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조스와 전 부인 메켄지 스콧의 모습. 메켄지는 베조스가 아마존을 창업할 때 적극적으로 지원해 공동창업자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9년 이혼할 때 아마존 경영권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재산분할에서 베조스에 상당 부분을 양보했다고 전해진다. [게티이미지]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4일 중국 대표증시인 A주 시장에서 대주주들의 이혼으로 인한 지배구조 변경과 이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A주 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에서는 반도체를 검사하는 핵심 장비 제조업체인 맥스원 세미컨덕터 쑤저우가 최근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맥스원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저우 밍 회장이 이혼하면서 재산분할로 인해 10.86%에 달하는 회사 지분을 전처에게 양도한 것이다. 이를 해당일 종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10.86%의 지분은 60억위원(1조3000억원)에 해당한다.

데이터 센터 정보 기술 인프라 서비스 업체인 트러스트 앤드 파 테크놀로지의 창업자인 잔 리슝도 지난주 아내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한 상태다. 잔 회장은 회사 지분 20.73%를 보유하고 있는데, 아내는 재산분할을 요구하고 있어 향후 해당 지분율에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앞서 2023년에도 360 시큐리티 테크놀로지의 창립자인 저우 훙이가 아내와 이혼하면서 회사 지분의 6.25%를 전처에게 양도한 바 있다. 당시 해당 지분은 90억위안(1조9400억원)의 가치로 평가됐다.

지난 2017년 뉴욕의 링컨센터 재즈홀에서 열린 전 세계 빈곤·질병 퇴치 성과 조명 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왼쪽부터)과 멜린다 게이츠, 빌 게이츠가 연설하고 있다. 빌과 멜린다 게이츠 부부의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은 전해지지 않았으나, 둘이 거주했던 워싱턴주에서는 부부가 결혼 기간에 함께 축적한 재산을 5대 5로 동등하게 나누도록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를 두고 SCMP는 투자자들 사이에 대주주의 이혼으로 인한 지분 증여 이후 변화한 지배구조에 맞춰 경영진이 바뀌거나, 최악의 경우 지분을 투매해 주가가 하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주주의 이혼은 기업 지배구조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혼 소송이 제기되거나 합의중인 상황에서 공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 쑤 머천트 뱅크의 푸 이푸 특별 연구원은 “주식 처분은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및 거래소 규정의 적용을 받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재산분할 후) 주식이 거래 가능해지면 주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집중적인 매도세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인 투자자들의 우려는 기업 지배구조 안정성에 대한 깊은 불신과 과거 사례들에서 비롯된다”라며 “상장 기업들은 이러한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정보 공개에 있어 더 큰 투명성과 일관성을 필요로 한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등 ‘세기의 이혼’을 수차례 겪은 바 있다. 2019년 이혼할 때 제프 베조스의 아내 매켄지는 경영권은 베조스에게 몰아주고(베조스가 100% 보유), 자신은 공동 지분의 25% (전체 아마존 주식의 약 4%)만 가져갔다. 매킨지는 사실상 베조스와 함께 아마존을 창업한 ‘공동 창업자’나 다름없다. 두 사람은 월스트리트의 투자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에 도전하면서, 매켄지가 차고에서 책을 포장해 우체국으로 나르고 회사의 모든 회계와 행정 업무를 도맡았다. 회사 이름 구상 등 모든 아이디어를 베조스와 매켄지가 함께 고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매켄지는 아마존 경영권이 흔들리거나 주가가 급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승적으로 양보했다고 전해진다. 아마존 공동지분의 25%만 확보하고, 자신 몫으로 받은 아마존 주식에 대한 의결권 4%(투표권)는 전량 베조스에게 넘겨줬다. 덕분에 베조스는 이혼 후에도 아마존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매켄지는 우주 탐사기업 블루 오리진이나 언론사 워싱턴포스트 등 기타 자산도 모두 베조스의 몫으로 넘겼다. 그럼에도 매켄지의 지분 가치는 당시 약 383억달러(56조원)로 평가됐다.

2021년 빌 게이츠와 전처 멜린다의 이혼시 재산분할 내역은 세간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거주했던 미국 워싱턴주는 부부가 결혼 기간에 함께 축적한 재산을 5대5로 동등하게 나누도록 하는 ‘공동재산주’ 원칙을 따른다. 이에 포브스 등은 멜린다가 당시 게이츠 재산(약 1520억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760억달러(약 111조원) 상당을 재산분할 받았을 것이라 추정했다.

한국에서도 2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에 대해 94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쟁점이었던 SK㈜의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하면서 최 회장이 3분의2, 노 관장이 3분의1의 비율로 나누게 했다. 이 같은 분할 비율에 대해 재판부는 “혼인 당시 양측이 보유한 자산, 부부공동재산의 취득 경위, 부부공동재산의 형성과 유지에 대한 기여 정도, 혼인 기간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앞서 나온 두 사람의 이혼소송 하급심과 비교했을 때 이날 파기환송심 판결은 사실상 재판부가 노 관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산분할 액수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인 ‘SK주식의 분할 여부’를 두고 재판부가 노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법원은 최 회장에 판결 확정 다음 날부터 지급을 완료할 때까지 연 5%의 지연이자도 내라고 명했다. 이는 연 472억원, 하루에 1억3천만원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