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올렸는데 집값 더 상승” 한국만 그런 줄 알았더니…[나우,어스]

일본은행, 정책금리 1%로 31년 만의 최고 수준
도쿄 도심 현금 매수·주식 차익 자금 부동산으로 이동
신축 공급은 1994년의 3분의 1…중고 가격까지 떠받쳐
전문가 “변동금리 3%까지 오를 가능성 염두에 둬야”


일본 도쿄 도심의 고층 아파트 단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도 도심 아파트 가격은 현금 매수와 공급 부족 등의 영향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31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일본 아파트 가격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금리 인상에도 현금 부자와 주식 투자자들의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고, 신축 아파트 공급 감소까지 겹치면서 가격을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리를 올리면 대출 부담이 커지고 주택 수요가 줄어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공식이 일본에서는 아직 뚜렷하게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지난달 정책금리를 1% 수준으로 인상했다. 31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일본 주택담보대출 이용자의 70~80%가 선택하는 변동금리도 오를 전망이다. 새로 대출받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금리는 오는 10월 전후, 기존 대출자는 2027년 1월께 연 1.3% 안팎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일본 부동산 시장에서는 금리 상승이 아파트 가격 하락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도쿄 도심에서는 대출금리 상승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수요층이 적지 않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반도체 관련 주식 등의 상승으로 금융자산이 1억엔을 넘어선 50대 직장인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직장인은 도쿄 도심에서 1억엔 안팎의 아파트를 찾고 있다. 보유 주식 일부를 매각해 구입 자금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대출을 받을 계획이다. 그는 “변동성이 큰 주식 비중을 낮추고 자산을 재조정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금리가 오른다고 구입을 중단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금리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고소득층과 현금 매수자들이 도심 고가 주택 수요를 떠받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라이플홈즈종합연구소의 나카야마 도시오 부소장은 “도쿄 23구 중에서도 도심에 위치한 초고가 부동산은 대출 없이 현금으로 구입하는 사례가 많다”며 “가격에 고점 인식은 있지만, 가격이 무너지는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의 정책금리가 31년 만의 최고치라고 해도 미국과 유럽의 금리 인상기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점도 부동산 가격 억제 효과를 제한하는 요인이다.

미국의 사례도 일본 부동산 시장의 향방을 보여주는 비교 대상으로 거론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주택 가격이 하락한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주택 가격 상승세가 이어졌다.

다이와종합연구소는 미국에서 금리가 올라도 고소득층의 주택 수요가 유지된 반면, 일반 가구의 구매력은 떨어지면서 저가 주택 공급이 오히려 줄었다고 분석했다. 거래량은 감소했지만 주택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시장 양극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도쿄 도심 고가 아파트 가격이 현금 부자들의 매수로 버티자 실수요자들은 도쿄 23구 외곽과 수도권 핵심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심을 넘어 수도권 전체 아파트 가격까지 오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도쿄칸테이에 따르면 도쿄 도심 6개구의 중고 아파트 가격은 70㎡ 기준 평균 1억8000만엔대에 머물고 있다. 올해 들어 전월 대비 하락한 달도 있었지만 가격 수준 자체는 여전히 높다.

도쿄 23구 중고 아파트 가격은 지난달 소폭 하락했지만 수도권 전체 평균 가격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긴키권 아파트 시장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의 한 증권사에서 시민들이 일본 닛케이 225 지수를 보여주는 전자 주가 게시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


주식시장 상승으로 늘어난 자금도 부동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본 전문가들은 도심 중고 아파트가 주식보다 가격 변동성이 작고 물가 상승을 피할 수 있는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투자 수요가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부동산은 상속세를 줄이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주가 상승으로 자산이 늘어난 투자자들이 차익을 실현한 뒤 자금을 도심 아파트로 옮기는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아파트값을 떠받치는 또 다른 요인은 심각한 공급 부족이다.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전국의 신축 아파트 공급 물량은 5만9940가구로 집계됐다. 공급이 가장 많았던 1994년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 수도권 공급 물량도 지난해와 비슷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인력 부족과 건설비 상승으로 신축 아파트 공급이 줄면서 수요가 중고 시장으로 몰리고, 중고 아파트 가격까지 오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사쿠라사무소의 나가시마 오사무 창업자는 “금리 인상은 일정한 가격 억제 효과를 내겠지만 평균 가격이 단기간에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신축 감소는 인력 부족 등 구조적인 요인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가격 상승세도 쉽게 꺾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지역과 주택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도심에서 멀고 교통이 불편한 지방 아파트는 금리 인상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관리 상태가 좋지 않거나 수요가 적은 주택은 거래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아파트 시장이 당분간 고점 부근에서 버티겠지만 과거처럼 모든 주택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상승과 집값 정체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무리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가구의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콘도미니엄에셋매니지먼트의 전문가들은 주택 구입을 검토하는 소비자들에게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3% 수준까지 오르는 상황을 가정해 상환 능력을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가격보다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소득과 자산 수준을 넘어선 주택을 구입하는 위험도 커졌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