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이 그린 ‘영웅적 고뇌’…경이로운 오디세우스의 대서사시 [리뷰]

크리스토퍼 놀란 블록버스터 ‘오디세이’
트로이 전쟁 후 오디세우스의 귀향 여정
영웅담 빠진 인간적 고뇌와 상실에 무게
172분 무색…경이로운 놀란표 대서사시
영화 ‘오디세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전쟁에는 늘 명분이 따른다. 검은 속내를 감춘 거창한 이유들에 떠밀려, 오랜 시간 수많은 장정이 전장에 온몸을 내던졌다. 심지어 그 불구덩이 속에서 스러진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짓, 전쟁은 이렇게 스스로 부여한 정당성 하나에 기대어 수천, 수만 년을 이어져 왔다. 이란의 핵무장을 저지한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마치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양 포장된 채, 전쟁은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생명력을 발휘한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돼 무뎌져 버린 오늘, 3000년의 세월을 건너 스크린에 도착한 ‘트로이 전쟁’과 영웅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명분 뒤에 숨어있는 전쟁의 무자비함과 상흔, 희생, 그리고 영웅이라 불리는 한 인간의 고뇌와 성찰을 가감 없이 펼쳐 보인다. 후대가 번뜩이는 지략으로만 기억하는 그 전쟁은, 정녕 인간과 세상을 행복과 평화, 번영으로만 이끌었을까.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이야기, 그리고 완벽한 영화가 우리 앞에 도착했다.

영화 ‘오디세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트로이 전쟁 후,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에 걸친 방황기를 그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그 어떤 찬사로도 부족하다. 놀란 감독은 무려 24권에 달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능수능란하면서도 빈틈없이 조각해, 아름답고 웅장한 대서사시로 완성해 냈다.

신들이 존재하는 세계, 신화에 발붙인 이 이야기는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지나 새로운 문명을 기다리는 시대의 서사로 확장되며,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깊숙이 파고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긴 러닝타임(172분)과 고전(古典)이란 진입장벽 앞에서 망설이지 않길 추천한다. 극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시간이 기다린다.

이타카의 왕비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와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는 20년째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는 10년간 이어졌던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다. 아테나에게 바칠 재물로 위장한 목마에 몸을 숨겨 트로이의 성문을 뚫은 오디세우스의 영웅담은 노래가 돼 이타카에 당도한 지 오래다. 페넬로페는 전쟁 후 수년이 지나도록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남편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다.

이타카의 성은 왕의 오랜 부재를 틈타 왕좌를 탐내는 잡배들로 득실거린다. 페넬로페의 구혼자를 자처한 이들은 ‘모든 나그네와 손님을 환대해야 한다’는 제우스의 법을 악용해 뻔뻔하게 성에 머무르며 마치 주인인 양 온갖 만행을 일삼는다. 껍데기만 남은 왕국이 위태로워지자,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선다.

영화 ‘오디세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같은 시각, 오디세우스는 바다 건너 어느 섬에서 칼립소(샤를리즈 테론 분)와 평화롭고도 안정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가족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는 본능적으로 어딘가로 돌아가기 위해 뗏목을 엮을 판자 조각들을 모은다. 그리고 마약과도 같던 로토스 꽃 먹기를 멈추자, 승리의 기쁨을 안고 올랐던 귀향길이 실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었던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조각조각 떠오르기 시작한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출항 후 잠시 정박한 어느 한 섬에서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힌다. 폴리페모스는 제우스의 법 따위는 무시한 채 부하들을 하나둘씩 잡아먹는다. 이윽고 오디세우스 일행은 그의 눈을 멀게 만들고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뒤늦게 폴리페모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임을 깨달은 이들에게, 다시 시작된 항해는 제 발로 분노한 신의 품속으로 뛰어든 꼴과 매한가지다.

결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이란 경고라도 하듯, 거센 폭풍우를 비롯해 마녀와 거인족, 사이렌, 여섯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등 온갖 초인적인 시련이 앞다투어 이들의 길을 막아선다. 거듭된 희생 속에서 오디세우스의 함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점차 무법지대로 변해가는 이타카 왕국은 어떠한 운명을 맞게 될까.

영화 ‘오디세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오디세이’는 다양한 인물의 회상과 시선을 빌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비선형적 구조로 장대한 대서사시를 긴밀하게 담아낸다. 지나치게 방대해질 수 있는 서사는 놀란 감독의 시그니처격인 스토리텔링 구조 안에서 군더더기 없이 움직인다. 마녀 키르케, 칼립소와 오디세우스의 관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설정은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히 따라간다. 아무리 저항해도 피할 수 없는 신의 뜻 앞에서 인간은 한낱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사공일 뿐이다. 이 영화는 멀리서 보면 그저 죽음이란 정박지를 피해 고향에 돌아가려는 이들이 처절히 배를 틀고 노를 젓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통 뒤에 시련이, 그 뒤엔 또 다른 희생이 이어지는 서사 속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한 오디세우스는 마냥 영웅적이지 않다. 10년의 기다림 끝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 지략가의 눈은 기쁨과 환희보다는 오히려 후회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형벌인 양,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과 짙게 밴 피로감 또한 대중이 ‘영웅’에게 바라는 모습은 아니다.

노래로 구전되며 어느 순간 신과도 같이 여겨졌을 오디세우스란 인물은 ‘오디세이’ 안에서 철저히 한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마치 수많은 역사가 비범하게 그려온 영웅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련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희생에 계속해서 자책하며, 화를 참지 못해 일을 그르치기도 하는 그저 한 인간이 그리움과 후회를 끌어안고 끝내 고향에 도달한다. 전쟁의 끝은 승리가 아닌 집에 돌아오는 순간이며, 진정한 맺음은 기쁨이 아닌 안도다.

적어도 놀란 감독은 무자비한 살육과 희생 앞에서 승리의 아드레날린에 취하는 이에게 영웅이라 칭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디세우스의 영웅적 면모는 지략보다는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만회하고 사죄하기 위해 기꺼이 짊어진 상실의 무게에서 나온다. 트로이의 목마 안에 숨죽이고 숨어있던 병사들, 이유도 모른 채 창칼 아래 스러진 이름 없는 청년들, 그리고 10년을 기다린 이들의 잃어버린 시간까지도 말이다.

물론 그런 오디세우스의 인간적 면모가 두드러지는 건, 평생 잘못이라고는 인정할 줄 모르는 비열한 안티노오스(로버트 패틴슨 분)의 존재 덕도 크다. 안타깝게 희생된 부하 시논(엘리엇 페이지 분)도 자신을 희생시킨 왕의 전략에 분노하면서도, 오디세우스가 예를 다해 그를 묻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한다.

영화 ‘오디세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눈을 뗄 수 없는 연출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이름값 하는 배우들의 열연, 무엇보다 오스카 후보는 따 놓은 당상인 맷 데이먼의 인생 연기가 압권이다. 신과 마법,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무한히 뻗어나가는 자연의 스케일은 인간의 한낱 욕망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인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한 장면 한 장면 모두 깊은 ‘자본(제작비 3800억 원)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기나긴 대장정의 막바지에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다시 모든 것의 시작인 트로이와의 전쟁으로 돌아간다. 시대의 불문율과도 같았던 제우스의 법을 스스로 짓밟고, 무고한 이들이 무자비하게 죽어 나갔던 그 전쟁이 남긴 건 승리라는 두 글자와 한낱 영웅담뿐이다. 칠흑 같던 트로이의 밤을 물들인 건 그 어떤 대의명분도 아닌, 붉은 광기였음을 오디세우스는 기억한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가 저지르고 잃어버린 것들이 상념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영화가 가장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기에 있을 테다.

명분은 시대마다 이름을 바꿔가며 전쟁을 정당화해 왔지만, 그 이름 뒤에 남는 것은 언제나 같다. 스러져간 이름 없는 이들과, 살아남아 그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하는 자의 무게. 놀란 감독은 ‘오디세이’를 통해 그 오래된 진실에 신화의 옷을 입혀 다시 우리 앞에 내려놓는다. 영화의 만듦새와 수준에 대해서는 ‘경이로움’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이 경이로운 마술사는, 이제 자신 또한 신의 영역으로까지 발을 들이려는 모양이다. 8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