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동안 ‘동사’로 알려졌던 잉카 미라 소년…진짜 사인은 ‘타살’이었다 [후암동 논문 연구소]

얼어붙은 상태로 발견된 ‘엘 플로모의 아이’. 500년 전 잉카 제국의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9호]

[헤럴드경제=장윤우 기자] 1954년 칠레 안데스산맥 해발 5400m 지점에서 여덟 살 아이의 시신이 발견됐다. 얼어붙은 땅속에서 500년 넘게 잠든 자세 그대로였다. 피부도 머리카락도 손톱도 남아 있었다.

당시 학자들은 아이가 추위 속에서 잠들 듯 숨졌다고 결론 내렸다. 손가락에 동상 흔적이 있었고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70년 동안 정설로 통했다.

그런데 최근 500년 된 아이의 몸을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다시 들여다본 연구팀이 전혀 다른 결론을 내놨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9호에 칠레·스페인 공동 연구팀은 ‘엘 플로모의 아이’로 불려 온 이 소년이 얼어 죽은 것이 아니라 머리에 강한 타격을 받아 숨졌다고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해발 5400m 지점에 돌로 둘러싸인 매장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9호]


잉카의 ‘카파코차’, 아이를 산에 바치던 의식


고대 잉카 제국에는 ‘카파코차’라 불리는 의식이 있었다. 아이를 골라 산 정상에 바치는 제사다.

잉카인들은 높은 산을 ‘아푸’라 부르며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선택된 아이는 죽음으로 신의 세계에 들어가 마을과 신 사이를 잇는 존재가 된다고 믿었다.

의식이 치러지는 과정은 아이들을 수도인 쿠스코로 모은 뒤 산을 향해 걸었다. 순례길에 위치한 마을들은 지나가는 행렬에 음식을 내주고 함께 먹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카파코차’ 유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9호]


연구팀은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의 세로 에스메랄다에서 1976년 발견된 아홉 살 소녀와 열여덟 살 여성, 1954년 세로 엘 플로모에서 발견된 여덟 살 소년의 사인을 분석했다.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결과 세 사람 모두 15세기 중반 서기 1440~1480년 무렵 숨진 것으로 나왔다.

연구팀은 머리카락을 분석해 결과를 도출했다.

머리카락은 한 달에 약 1㎝씩 자란다. 자라는 동안 그때 먹은 음식과 마신 물의 성분이 그대로 새겨진다. 머리카락을 뿌리부터 끝까지 잘라 순서대로 분석하면 죽기 몇 달 전에 무엇을 먹고 어디에 있었는지 시간순으로 되짚을 수 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9호]


지역마다 흙과 물, 작물의 성분이 다르다. 건조한 곳과 습한 곳, 높은 곳과 낮은 곳이 각각 다른 흔적을 남긴다. 따라서 머리카락 속 성분이 어느 시점부터 달라졌다면 이동했다는 뜻이 된다.

분석 결과 세 사람 모두 죽기 전 수개월 동안 서로 다른 환경을 거쳤다. 아홉 살 소녀는 약 5개월에 걸쳐 900~1200㎞를 이동한 것으로 추정됐다. 열여덟 살 여성은 비슷한 거리를 3개월 만에 지났다. 여덟 살 소년은 쿠스코에서 칠레 중부 계곡까지 약 9개월간 2600~2800㎞를 걸었다.

얼어 죽었다던 소년은 맞아 죽었다


연구팀은 사인을 밝히기 위해 소년의 피부를 확대경으로 살피고 조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기존 연구 결과와 달리 얼어붙은 흔적이나 조직 세포가 망가진 흔적은 없었다. 저체온증으로 숨졌다면 남았을 흔적들이 없었던 것이다.

대신 왼쪽 이마에 가로 3.7㎝, 세로 2㎝ 크기의 눌린 자국이 있었다. CT로 그 아래를 보니 이마뼈에 3㎝ 길이의 금이 가 있었다. 뼈가 아물기 시작한 흔적은 없었다. 다친 직후 곧 숨졌다는 뜻이다.

CT 촬영 결과 둔기로 맞은 흔적이 발견됐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9호]


연구팀은 소년의 두개골을 3차원으로 복원한 뒤 여러 세기로 충격을 가하는 모의실험을 돌렸다. 그 결과 약 2800N,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내리치는 정도의 힘이 가해졌을 때 실제 상처와 가장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상처가 생긴 위치는 관자놀이 부근으로 두개골에서 충격에 약한 부위다. 연구팀은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아니라 겨냥해서 때린 타격이라고 판단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를 다른 카파코차 유적과 비교했다. 페루 암파토와 피추피추에서는 두개골 골절이, 아르헨티나 추스차에서는 찔린 상처가 나왔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분석이 그 일이 실제로 어떻게 벌어졌는지 재현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가능한지를 따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계산 과정에서 피부와 옷은 반영하지 않았다. 누가, 어떤 자세로 때렸는지는 남은 증거로 알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참고논문


DOI : 10.1126/sciadv.adz9055

논문 정보 : Verónica Silva-Pinto et al. ,Pilgrimage to sacrifice: Mechanisms, causes, and time of death of the Western Andean Capacocha of the Southern Tawantinsuyu.Sci. Adv.12,eadz9055(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