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얼굴이 연주하는 프랑스 음악…모두의 음악적 지평 넓어지길” [인터뷰]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강선애 대표·플루티스트 조성현 만나
신진 발굴·새로운 레퍼토리에 적극적
음악가들이 사랑하는 ‘탐구형 축제’


플루티스트 조성현과 피아니스트 문재원 [더하우스콘서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멜랑콜리한 선율이 하향 곡선을 그리다, 아련한 음색으로 서정적 고요를 노래한다. 대학로는 어느새 노을 지는 파리의 한복판이 됐다. 그 우울한 첫 멜로디가 울리는 순간, 맑은 유백색의 음색 속으로 스며드는 서글픈 탁함에 관객들의 호흡은 일순 멎는다. 조성현과 피아니스트 문재원이 함께 한 풀랑의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

무대와 관객 사이 거리는 1m 남짓. 마룻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악기의 진동과 연주자의 날숨까지 온몸으로 흡수한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대한민국 실내악의 가장 ‘뜨거운’ 현장이다.

“관악기는 아무래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더 많아요.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 호흡이 감상에 방해되지 않도록 연습 때부터 유념했어요.” (조성현)

플루티스트 조성현에게 더하우스콘서트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2021년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며 독주와 실내악으로 관객과 만났다. 몇 번이나 이 무대에 섰지만, 더하우스콘서트(이하 하콘)의 대표 여름 축제인 ‘줄라이 페스티벌’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조성현은 “상주 음악가도 맡았고, 여러 무대에 섰지만 줄라이 페스티벌은 이상하게 연이 닿지 않았다”며 “하콘 무대는 늘 특별하고 긴장된다”고 말했다.

“실내악은 듣는 음악”…형제의 첫 무대


무대 뒤에서 관악기 연주자들이 악기를 매만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날것의 소리가 공존하는 곳. 찰나의 수선거림에 관객들은 다음 무대에 더 큰 기대를 품는다. 대망의 마지막 무대. 이번엔 풀랑의 육중주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어 들어오는 연주자들 틈에서 유독 ‘닮은꼴’ 두 사람이 눈에 띈다. 조성현의 동생인 바수니스트 조광현이었다. 사실 이 무대는 조성현이 직접 멤버를 구성했다.

한 달간 이어지는 줄라이 페스티벌은 솔로 리사이틀을 빼고 적게는 2~3명에서 많게는 오케스트라 50~60명까지, 해마다 한 달간 200~250명의 연주자가 출연한다. 페스티벌을 진두지휘하는 강선애 더하우스콘서트 대표는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페스티벌 준비는 1년 전부터 시작한다”며 “실내악은 주축이 되는 연주자에게 조합을 맡기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줄라이 페스티벌이 연주자에게 주는 ‘특권(?)’인 셈이다.

강선애 더하우스콘서트 대표와 플루티스트 조성현/고승희 기자


조성현은 “고잉홈 오케스트라나 유학 시절부터 깊은 친분을 쌓아온 후배들과 꾸민 팀”이라며 “실내악은 자기 생각만 밀어붙이면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서로 어떻게 연주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어 기대된다”고 했다. 동생은 누구보다 조성현이 믿고 맡기는 연주자다. 그는 “사실 동생은 (저랑) 안 하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레슨 아닌 레슨을 해와서 그런지 꺼렸다”며 웃었다.

올해 줄라이 페스티벌의 주제는 ‘프랑스’다. 지난해까진 ‘작곡가 도장깨기’를 이어왔으나, 이제 다시 ‘나라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조성현이 “풀랑은 프랑스 음악의 색채를 가장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작곡가”라며 “플루트는 리드가 없어 소리가 자유롭게 퍼지는 악기라 프랑스 음악의 색감과 결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했다.

조성현의 플루트는 투명한 유리창에 살며시 내려앉은 서리처럼 몽환적인 음영으로 풀랑크의 뉘앙스를 섬세하게 그린다. 그의 풀랑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 그는 “예전엔 더 프랑스 음악처럼 들리게 하기 위해 몸짓이나 프레이징도 일부러 크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정반대”라며 “억지로 프랑스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이어지는 화성과 색채를 따라가는 자연스러움이 프랑스 음악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엔 불협화음조차 아름다운 화성이 되고, 슬픔과 음울 속에도 위트가 공존한다.

줄라이 페스티벌은 물론 더하우스콘서트는 연주자에게 쉽지 않은 무대다. 순간의 실수, 사소한 버릇도 모두 포착되기 때문이다. 조성현이 “늘 긴장되는 무대”고 말한다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같은 음도 다른 방식으로 불고, 같은 다이내믹도 다시 계산해야 한다. 호흡하는 소리까지 관객에게 전달되기에 숨을 쉬는 순간도 음악의 일부가 된다.

조성현은 “관객을 찌르는 소리가 아닌 공간을 채우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과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플루티스트 조성현(왼쪽)과 친동생 바수니스트 조광현(오른쪽 두 번째)의 첫 실내악 무대 [더하우스콘서트 제공]


“안 팔려도 해야만 한다”…음악에만 몰입하는 사랑방


해마다 여름이면 무수히 많은 음악 축제가 돌아온다. 스타 연주자와 최정상 악단, 지휘자가 등장하는 유수 음악 페스티벌이 있지만, 줄라이 페스티벌은 이 모든 축제와는 다르다. 강 대표는 이 페스티벌을 “탐구형 페스티벌”이라고 했다.

‘줄라이 페스티벌’은 단지 주제에 맞춰 유명 연주자들을 불러오는 축제가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그 곡을 가장 잘 연주할 사람을 연결한다. 축제 준비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 대표는 “나라를 정하면, 그 나라의 작곡가와 작품을 샅샅이 훑는다”며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찾고, 최적의 연주자를 매칭한다”고 했다.

페스티벌에선 지난해까진 작곡가 시리즈를 이어왔다. 주제 전환 마지막 해였던 작년엔 스트라빈스키와 쇼스타코비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낯선 연주자와 프로그램, 작곡가의 조합은 음악 페스티벌엔 쥐약이다. 그래서 티켓 판매의 널뛰기를 경험하게 된다.

강 대표는 “20세기 음악을 다루면서 관객들에게 난해하다는 평가와 함께 슈만, 슈베르트를 중심으로 했던 해보다 티켓 판매가 절반 이상 줄었다”며 “하지만 익숙한 작품만 고집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콘의 정체성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대중적인 소품곡만 반복하는 게 아니다”며 “낯설지만 매력적인 레퍼토리를 발굴해 연주자와 관객 모두의 음악적 지평을 넓혀주는 데에 있다”고 강조한다.

조성현도 강 대표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손열음, 김두민(첼로) 등과 함께 음악가들이 주축이 된 오케스트라인 ‘고잉홈프로젝트’를 이끄는 그는 “어떤 프로그램이냐에 따라 티켓 판매는 0에서 100 사이를 오간다”며 웃었다.

“새로운 곡을 하고 싶다가도 이렇게 하면 아무도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에 방향을 틀곤 해요. 감히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아직은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은 낯선 것이 아닌가 싶어요.” (조성현)

강선애 더하우스콘서트 대표와 플루티스트 조성현/고승희 기자


이 무대가 연주자들에게 주는 최고의 장점은 “음악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조성현은 “음악가에게 정말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새로운 레퍼토리를 발굴해 연주하는 것인데, 하콘은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놀랄 만큼 새로운 레퍼토리가 많다”며 “연주자들끼리 대기실을 함께 쓰면서 서로의 연주를 듣게 되는데 큰 배움이 된다”고 했다.

올해 줄라이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연주자는 총 220명. 강 대표는 “이 중 30% 이상이 10~20대의 신진 연주자들”이라고 했다. 30대 이후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까지 치면 ‘신진’의 범위는 늘어난다.

그는 “티켓 판매나 관객 동원을 생각하면 기성 연주자로 채우는 게 안전할 수 있지만, 저흰 신진과 기성 연주자를 교차 배치한다”며 “관객분들이 어떤 연주자나 작품을 들으려고 왔다가, 처음 보는 연주자인데 ‘굉장히 잘한다’며 재밌어하는 경우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강 대표의 이야기를 듣던 조성현은 “국내 클래식은 팬덤이 주도하는 시장이라 연주자를 찾아 공연장을 찾는 문화는 활발하나 스타 연주자나 유명 곡에 치우쳐 있는 점은 안타깝다”며 “새로운 음악과 젊은 연주자를 발굴하는 무대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관객은 낯선 즐거움을 경험한다. 숨소리와 긴장감이 음악으로 치환되는 공간에선 생소한 음악과 얼굴이 가로막는 장벽이 없다. 오로지 음악만 남는다. 이 과정을 수없이 본 조성현은 “관객은 새로운 음악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믿는다. 두 사람이 바라는 것은 다르지 않다. 줄라이 페스티벌은 새로운 작품, 아직 이름을 알리지 않은 연주자만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아직 열리지 않은 관객의 귀를 기다린다.

“새로운 레퍼토리든, 신진 연주자든, 조금 더 호기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한 연주자를 만날 때 콩쿠르 결과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그 사람의 음악을 궁금해하면서 같이 지켜보고 관찰하는 문화가 생기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자연히 새로운 것에 열려 있는 관객이 늘어나고, 그게 결국 발전적인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하콘이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싶은 거죠.” (강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