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캔버스’ 6000년의 기록…울산 반구천 암각화, 침수 딛고 불멸로

신석기·청동기, 9세기 신라까지 기록
동물 그림·문자 등 선사시대 걸작 평가
인류 최초의 고래잡이 기록, 가치 높아

해발 53~57m 위치, 비 오면 일부침수
물 잠겼다 마르기 반복해 약 24% 유실
정부, 수문 설치해 상시 수위조절 추진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주변 모습. 김명상 기자


문명의 태동기, 한반도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힌트가 울산에 남아 있다. 울주군 ‘반구천의 암각화’는 신석기부터 청동기를 거쳐 기원후 9세기 신라시대까지, 약 6000년에 걸친 기록을 담고 있다.

기하학적 무늬와 사냥 장면, 문자 등이 새겨진 이 암각화는 선사 문화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한반도의 타임캡슐이라 불러도 무방할 이 유적은 현대적인 산업도시 울산의 풍경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오늘도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을 짙게 표시한 이미지.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등 7종 이상의 고래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천연 캔버스에 6000년간 새긴 그림

“지워진 게 아닙니다. 해가 들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는 거예요.”

박미현 울산시청 학예연구사가 군중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반구대 암각화의 경우는 오후 3시 30분부터 4시 30분 정도에 해가 가장 잘 듭니다. 이 시간 이외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암각화가 지워졌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국보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국보 ‘천전리 명문 및 암각화’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방문 당일에는 짙은 구름으로 하늘이 열리지 않아 암각화 그림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아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7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현장에는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 참석자들이 방문했다. 부산에서 개최되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프랑스, 리투아니아, 탄자니아 등 59명의 세계유산 전문가는 현장에 설치된 망원경과 가상 영상 모니터, 휴대폰 카메라를 활용해 바위에 새겨진 문양을 살폈다. 일부는 카메라 줌을 당겨 화면 속에서 그림을 찾았다. 화면에서 고래 형태를 확인한 한 전문가가 감탄사를 내뱉자 주변 사람들이 몰려와 화면을 함께 들여다보기도 했다.

이곳 반구천 유역에는 수많은 바위벽이 솟아 있지만, 그림이 남아 있는 곳은 반구대와 천전리 단 두 곳뿐이다. 선사시대 인류가 자신들의 예술성을 자랑할 천연 캔버스로 오직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바위면은 모두 11개로 나뉘어 있고, 그중에서도 그림이 집중된 곳은 따로 있다.

박 연구사의 녹색 레이저 포인터가 맞은편에 있는 평평한 바위를 가리켰다. 그림을 그린다면 누구나 저 평평한 부분에 주목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바위면의 갈라진 틈을 기준으로 좌우가 나뉜다. 왼쪽에는 바다 동물이 집중적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인류 최초의 고래잡이 기록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등 7종 이상의 고래가 새끼를 등에 업고 가거나 물을 뿜는 모습으로 정교하게 새겨졌다.

또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가 고래를 사냥하고, 이를 인양해 해체하는 전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배에 많은 사람이 탄 모습, 고래 몸통에 작살이 박힌 모습도 보인다. 고래가 물속 깊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작살줄에 매달아 두었던 거품 모양의 ‘부구’도 묘사돼 당시의 높은 사냥 기술을 보여준다. 이 유산이 세계 바위 예술 중에서도 독창적인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다. 실제로 울산 황성동 등 인근 신석기 유적에서는 작살 촉이 박힌 고래 뼈 화석이 출토돼, 암각화 속 그림들이 실화 바탕의 기록이었음을 증명했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들기 시작하면 영화처럼 그림들이 선명하게 살아나죠. 갈라진 틈 오른쪽에는 육지 동물이 주로 모여 있습니다.”

박 연구사의 레이저 포인터를 따라 눈을 가늘게 뜨며 집중하자 흐릿하게 무언가가 보였다. 안내판을 보니 호랑이, 멧돼지, 사슴, 늑대 같은 육지 동물과 활을 쏘는 사냥꾼, 탈을 쓴 주술사가 새겨져 있다.

이 중심 바위면이 풍화 속에서도 형태를 유지한 비결에 대해 박 연구사는 위쪽을 가리켰다. 눈을 들어 보니 자연 암벽이 2~3m 정도 튀어나와 있다. 이 바위가 지붕 역할을 하면서 그림을 보호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선사인들은 이곳에 그림을 남긴 뒤, 물길을 따라 5㎞가량 떨어진 천전리에서도 기록을 이어갔다. 마름모, 동심원 등 기하학적 문양과 신라 법흥왕의 동생인 사부지왕의 방문 기록이 새겨진 천전리 암각화 역시 세계유산이다. 박 연구사는 “망원경을 통해 이미지를 확대해 볼 수 있고,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도 문양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도록 가상 영상 설명 화면도 준비했다”고 말했다.

반구천 암각화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사진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국가유산청 제공]


매년 한 달, 물에 잠기는 암각화의 수난

선사시대인의 뛰어난 예술성과 해양 문화를 보여주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인정받아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반구천 암각화의 빛나는 이면에는 수십 년간 겪어온 침수와 훼손의 그림자가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1965년 대곡천 하류에 준공된 사연댐은 수문이 없고 만수위가 60m에 달한다. 사연댐 상류에 있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높이는 해발 53~57m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비가 내려 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유적 아랫부분이 잠기고, 57m에 이르면 완전히 수중으로 사라진다. 이에 따라 물에 잠겼다 마르기를 반복해 암각화는 생성 당시 보다 약 24%가량 유실됐다.

그동안 보존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명확했다. 국가유산청은 사연댐 수위 조절을 통한 암각화 보존을 우선시한 반면, 울산시는 시민의 식수 부족을 이유로 수위 조절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사연댐이 울산시민 식수의 40% 이상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암각화 침수를 막기 위해 터널형 유로 변경안, 임시 제방 설치안, 가변형 물막이 설치 등 다양한 대책이 논의됐으나 경관 훼손 우려와 안전성 문제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나마 2014년부터 취수탑을 통해 임시로 댐 수위를 낮추면서 연평균 193일에 달했던 침수 일수를 평균 38일(2013~2020년 기준)로 줄였다.

그럼에도 추가 훼손을 막으려면 완전한 침수 방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항구적으로 침수를 막기 위한 ‘사연댐 수문 설치’ 합의가 이뤄진 결정적 계기는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면서부터다.

조규형 국가유산청 건축유산팀 팀장은 “2021년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유산청과 울산시는 세계유산 등재를 공동 추진하고, 사연댐 수문 설치와 안정적인 물 공급 사업을 병행하기로 했다”면서 “이러한 협력 덕분에 지난해 반구천 암각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총사업비 809억원을 투입해 사연댐의 여수로(남는 물을 흘려보내는 인공 배수로)를 17m가량 깎아내고 폭 15m, 높이 7.3m 규모의 수문 3개를 신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수문 공사가 올 하반기 착공해 2030년 완공되면 평상시 댐 수위를 암각화 아래인 해발 48m 이하로 상시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침수일은 1일 이하로 감소하게 될 전망이다.

물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다. 댐 수위를 낮추면 저수 용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울산 시민들의 생활용수 공급량이 감소할 우려가 있다. 이날 현장을 찾은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사연댐에 수문을 만들어 수위 조절을 하고 암각화를 보존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며 울산시와도 뜻을 같이하고 있다”며 “문화유산의 지속가능한 보존과 관리는 정부와 지자체,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소통하고 협력할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 참석자들이 반구대 암각화 현장을 찾아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있다.


아부 심벨, 암각화 보존의 나침반

반구천 암각화의 보존을 위해 물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이집트의 아부 심벨 이전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1950년대 후반, 이집트 정부는 고질적인 가뭄과 홍수를 해결하고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나일강 상류에 ‘아스완 하이 댐’ 건설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댐이 완공되면 람세스 2세가 세운 ‘아부 심벨 신전’ 등 수많은 고대 이집트 유적들이 통째로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유네스코는 ‘유적 구하기’에 나섰다. 당시 유네스코는 “비록 이집트 땅에 있는 유적이지만, 인류 공동의 역사이자 자산이니 이를 지키는 것은 전 세계의 의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뜻을 함께하는 전 세계 50여 개국이 기금을 모으고 전문가를 파견했다. 그 결과 거대한 석상과 신전 내부를 20~30t 무게의 블록 1000여 개로 정밀하게 잘라 65m 높은 절벽 위로 이전할 수 있었다.

이전 계획의 성공은 전 세계에 엄청난 자신감과 깨달음을 줬다. 이를 계기로 오늘날의 세계유산협약과 세계유산위원회가 탄생했다. 오늘날 우리가 여행지에서 흔히 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마크가 탄생된 위대한 시발점인 셈이다.

반구천의 암각화 역시 비슷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글로벌 전문가들이 애써 암각화 현장을 찾은 이유도 현재의 실수로 영원히 사라질 수 있는 인류의 유산을 지키자는 공통의 목표 때문이었다.

불가리아에서 온 마리엘라 인코바 씨는 암각화의 안내판을 살펴보다가 바위면의 빈 공간을 가리키며 “왜 그림이 없는 부분이 있냐”고 물었다. 이에 박 연구사가 “그 답변은 7000년 전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니 현장에 웃음꽃이 피었다.

국내 취재진이 질문한 그녀에게 이곳에 온 소감을 묻자 불가리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인코바씨는 “세계유산인 ‘마다라의 기사상’이 빗물 유입 등에 의한 침식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가유산청이 전 세계 전문가들에게 암각화의 위기를 공개한 것도 다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는 뜻도 담겨 있다.

선명하게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남기며 돌아오는 길, 물에 잠기고 마르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지워져 온 6000년의 기록은 이제 시간과 다투고 있는 듯 보였다. 수문이 완공되면, 암각화는 비로소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선조들이 새긴 그림 편지에 오후의 해가 비추는 그 순간을 먼 후손들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울산=김명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