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점포’도 팔아 10년간 4조대 자산 유동화
리츠상장 무산·코로나·이커머스 공세 ‘삼중고’
“차입 경영, 경쟁력 약화”…MBK는 1조대 수익
2000억 긴급수혈 ‘인공호흡’, 생사 달린 2개월
“마트 규제완화 필요…기울어진 운동장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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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창립 30주년을 앞둔 홈플러스가 파산 문턱에 놓였다. 지난해 3월 기업회생절차 개시 이후 급속도로 재정이 악화하며 ‘회생 폐지’ 결정문까지 받아들었다. 142개까지 늘었던 매장은 67개까지 줄었고, 이마저도 영업이 중단됐다. 2만명을 넘었던 직원 수는 이탈이 계속되며 1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때 국내 대형마트 업계 2위에 올랐던 홈플러스의 급작스러운 추락은 유통업계뿐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위기감을 안기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홈플러스 사태를 놓고 “11년 전부터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지분을 100% 인수한 2015년이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지적이다. ‘7조원대 빅딜’ 이후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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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할인점’ 미래였던 홈플러스
홈플러스의 모체는 삼성그룹 유통 부문이다. 삼성은 1991년 신세계 계열 분리 이후 유통업 재진출을 모색했다. 1997년 대구에 홈플러스 1호점을 열고, 1999년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와 손을 잡고 합작법인 ‘삼성테스코’를 설립했다. 이후 공격적인 출점과 인수합병(M&A)를 통해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렸다. 2008년 이랜드 홈에버(구 까르푸) 매장 33개를 인수하며 이마트·롯데마트의 경쟁사로 우뚝 섰다. 테스코는 2011년 삼성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사명을 오늘날의 ‘홈플러스’로 변경했다. 2013년 홈플러스의 연결 기준 매출은 9조원에 육박했고, 영업이익 3382억원을 기록하며 명실상부 업계 2위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백화점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문화센터를 대형마트에 선보인 파격은 ‘한국형 할인점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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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의 등판…10년새 4조 자산 처분
MBK파트너스는 2015년에 등장했다. 테스코는 홈플러스 지분을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에 약 7조2000억원에 매각했다. 당시 기준으로 국내 M&A 사상 최대 규모다. MBK파트너스는 인수금액 가운데 2조7000억원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차입매수(LBO) 방식을 택했다. 인수기업의 자산이나 미래 현금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기업을 인수하는 M&A 방식으로, 인수자의 자기 자본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
빚을 내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파트너스는 점포 68개를 매각해 차입금을 상환하고, 매장을 재임대하는 ‘세일즈 앤 리스백(SLB)’ 방식으로 자산 유동화를 진행했다. SLB 방식이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는 이마트·롯데마트 모두 SLB를 통해 현금을 확보하던 시절이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당장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직영으로 두는 게 일반적인 알짜배기 점포마저 매각했다”며 “위험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홈플러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처분한 유형자산 규모만 3조4506억원이다. 해당 기간 MBK파트너스가 현금화한 홈플러스 자산은 4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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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 상장 실패·팬데믹·이커머스’ 악재
악재는 이어졌다. 2019년 3월 홈플러스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의 증시 상장 철회도 그중 하나다. 당시 홈플러스는 전국 매장 가운데 51개점을 기초자산으로 임대료를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를 제안했다. 리츠를 생소하게 여겼던 국내에서 ‘최초의 조(兆) 단위 공모 리츠’로 관심을 모았다. 해외 기관의 대규모 투자도 기대했으나, 정부 규제 등으로 대형마트 업황이 악화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MBK파트너스는 리츠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안을 아는 한 관계자는 “상장이 무산된 이후부터 더더욱 공격적인 SLB를 통한 자산 유동화가 이뤄졌다”며 “매달 월세와 홈플러스가 내야 하는 이자가 불어나면서 경영상황이 악화일로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전 세계를 혼돈에 빠뜨렸던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쳤다. 확진자가 다녀갈 때마다 마트 영업이 전면 중단됐다. 매번 건물을 소독하고 신선식품 폐기 수순을 밟으면서 재정 부담이 불어났다. 2018년 7조6598억원이었던 매출은 2019년 7조3001억원, 2020년 6조9662억원, 2021년 6조4807억원으로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2018년 2599억원에서 2019년 1601억원, 2020년 933억원으로 줄다가 2021년 1335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지나간 자리에는 쿠팡으로 대표되는 이커머스가 나타났다. 대형마트가 유통산업발전법상 월 2회 의무휴업, 심야 배송 금지 규제에 갇힌 사이 이커머스는 공격적으로 국민 일상을 파고들었다. 이마트·롯데마트는 핵심 점포 리뉴얼, 온라인 및 해외사업 투자 확대 등을 통해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재정은 빠르게 악화했다. 영업적자는 2022년 2601억원, 2023년 1994억원, 2024년 3142억원, 2025년 5463억원으로 확대됐다.
결국 홈플러스는 2025년 3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매장 수는 현재 67개까지 감소했다. 한때 1조원대 기업가치가 거론되며 ‘알짜 사업부’란 평가를 받았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올해 5월 1200억원대에 하림그룹 품으로 넘어갔다. 홈플러스 재무 구조 악화가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홈플러스 사태를 지켜본 업계와 정치권 등에서는 MBK파트너스의 차입경영이 여러 번의 악재와 맞물리며 홈플러스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단기 수익을 극대화하는 사모펀드가 LBO 방식을 택한 순간부터 기업 부실화가 예견됐다는 것이다. 앞서 홈플러스 긴급운영자금(DIP) 대출 문제로 MBK파트너스와 갈등을 겪은 메리츠금융그룹에 따르면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투자펀드인 3호 펀드는 경영 실패에도 불구하고 2025년 말 기준 1조원대 수익을 올렸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손익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10년간 MBK파트너스의 출구 전략을 그대로 밟은 게 아닌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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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억 DIP 극적 수혈…회생까지 ‘산 넘어 산’
이달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홈플러스는 2000억원의 DIP 수혈이 확정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MBK파트너스와 메리츠금융그룹이 극적으로 DIP 대출 조건에 합의한 결과다. 핵심 쟁점이었던 김병주 MBK 회장의 전액 연대보증이 결정되면서 메리츠금융그룹도 대출을 의결했다. 홈플러스는 20일 오후 서울회생법원에 즉시항고장을 제출하면서 기업회생절차의 불씨를 되살리겠다는 방침이다. 법원이 회생 폐지 결정을 내린 핵심 사유였던 2000억원 조달 문제가 해소된 만큼, 법원이 폐지 결정을 취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DIP 자금 대부분은 밀린 점포 임대료와 전기세 등 관리비, 납품대금 정산 등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운영을 중단한 67개 점포를 모두 정상화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법원이 기업회생절차를 재개하더라도, 오는 9월까지 잔존사업부(대형마트·온라인·본사) 매각 없이는 파산을 피할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9월은 현행법상 연장 가능한 기업회생절차 최종 시한이다.
남은 시간 동안 인수의향자를 모색하는 동시에, 폐점 점포 등 주요 자산 매각을 통해 차입금을 상환하는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오는 9월 납입이 예상되는 대전 유성점·동광주점 매각 대금 1700억원도 1순위 담보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회수가 불가피하다. 앞서 홈플러스에 약 1조2000억원을 대출한 메리츠금융그룹은 전국 62개 점포를 담보로 잡고 있다.
“유통업계, 제로섬 게임 아닌 파이 키워야”
“유통업계는 더 이상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게임’으로 접근해야 한다.”
삼성테스코 시절 홈플러스를 이끌었던 이승한 전 회장은 지난해 3월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새로운 유통 질서를 선도하는 기업이 시장의 승자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채널 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유통업계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 전 회장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를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했던 2009년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던 인사다.
이 전 회장의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통시장 및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며 대형마트에 선을 그은 규제는 이커머스라는 ‘유통 공룡’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에서 다양한 제도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유통산업발전법 내 규제 완화는 국내 유통업계의 오랜 숙원으로 꼽힌다.
청와대와 정부, 더불어민주당은 2012년 대형마트 규제가 도입된 지 14년 만인 올해 2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검토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지난 5개월간 국회 논의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렵게 불씨를 되살린 규제 완화 논의가 이대로 없던 일이 될까 걱정”이라며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