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승부수 던진 삼성…제2 로보틱스 M&A 예고

삼성전자 미래성장동력 ‘로봇’ 본격 육성
RX사업추진실 초대 실장은 노태문 대표
로보틱스 전략팀장 이동건 부사장 임명
미래로봇추진단·SR·생기연 역량 결집

구미 사업장에는 데이터 팩토리 만들어
가전·모바일 위기감 속 로봇으로 반등
‘로봇손’ 개발 총력, M&A·인재영입 예고

지난해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등장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사족보행 로봇.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재용 회장의 전략적 투자에 따라 삼성전자가 지분 35%의 최대주주로 있는 로봇 개발 기업이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노태문 대표이사 직속의 ‘RX(Robotics-eXperience, 로보틱스 경험)사업추진실’을 전격 신설한 것은 산업계의 공통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로봇 사업의 실행 속도를 올리고, 최근 거듭되는 완제품(세트) 사업의 위기를 빠르게 타개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통상 10월 말 정기인사 및 조직개편을 단행하지만 이보다 3개월 앞당겨 로봇에 초점을 맞춘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한 것 역시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로봇 사업에 대규모 물적·인적 자원을 투입하는 가운데 더 이상 뒤쳐져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노태문 대표가 실장 겸직…로봇추진단·SR·생기연 인력 집결=2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번에 새롭게 출범하는 RX사업추진실의 초대 실장은 노태문 대표이사 겸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사장)이 맡는다.

노 대표가 미래 성장동력인 로봇 신사업 조직을 직접 챙기는 만큼 전략 수립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 1월 미국에서 열린 CES 2026에서 현대차와 LG전자가 각각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와 ‘클로이드’ 실물을 전시하며 미래 성장 가능성을 제시한 반면, 삼성전자는 로봇 관련 전시를 생략해 대조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삼성전자 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로봇 관련 인력과 조직이 이번 RX사업추진실 산하로 집결하면서 시너지 극대화 및 빠른 성과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2024년 12월 국내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합병(M&A)을 계기로 신설된 삼성 미래로봇추진단은 약 1년 6개월 만에 RX사업추진실 산하 조직으로 재편됐다. 미래로봇추진단을 이끌어 온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석좌교수는 계속 단장을 맡아 로봇 개발 노하우를 삼성전자에 이식하는 역할을 이어간다.

여기에 삼성리서치(SR) 산하 로봇센터와 DX부문 미래 제조기술을 선행 연구하는 생산기술연구소의 로봇 연구인력들까지 한 곳으로 모아 삼성전자의 로봇 신사업을 이끌 핵심 역량이 RX사업추진실에 총 결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 대표는 지난 1월 CES 2026 기자간담회에서 “(제조 현장에서 얻은)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역량을 강화한 다음 B2B·B2C 사업으로 발전시켔다는 전략”이라며 “B2C는 ‘홈 로봇’ 분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기업 고객들에게 삼성전자가 만든 산업용 로봇을 공급하는 B2B 사업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에게 가정용 로봇을 판매하는 B2C 사업에도 진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가전·모바일 부진, DS와 양극화…로봇으로 ‘반전’ 모색=로봇 신사업은 삼성전자 DX부문에 드리운 부진과 위기감을 씻어낼 기대 요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삼성전자 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완제품 사업은 최근 업계의 경쟁 심화와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 여파로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모바일경험(MX) 사업부는 메모리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맞으며 올 2분기 사상 첫 적자를 기록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 상황이다.

TV·가전 사업을 맡고 있는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와 생활가전(DA) 사업부 역시 가격 경쟁력과 내수 시장의 지지를 등에 업은 중국의 부상으로 시장 점유율을 점차 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이 역대급 실적 행진을 이어가는 반면, DX부문은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고 있어 사업부문 간의 양극화와 갈등이 최근 삼성전자의 최대 고민거리로 부상했다.

DX부문은 이번 RX사업추진실 신설을 통해 기존 사업의 부진을 로봇 신사업으로 상쇄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노 대표는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로봇 사업은 DX부문의 미래 기술 혁신과 성장을 주도할 핵심 분야 중 하나”라며 “전사적 역량을 결집해 로봇, AI, 핸드 기술과 같은 핵심 경쟁력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제2의 로보틱스 M&A 나오나…추가 인재영입도 예고=삼성전자는 이번 RX사업추진실 신설을 계기로 추가 M&A를 통해 미래 기술 육성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로봇 손 분야의 기술을 보유한 해외 유망 스타트업과의 협력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기존에 인수한 레인보우로보틱스와의 시너지를 통해 자체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동시에 기술력이 입증된 다른 업체에 투자 또는 인수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우선 자체 생산시설에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들을 투입해 검증 과정을 거친 뒤 여기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용 로봇·가정용 로봇 사업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추가 외부 인재영입도 예고했다. 이번에 신설된 RX사업추진실의 로보틱스전략팀장으로 선임된 이동건 삼성전자 기획팀 부사장도 외부 출신이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 운영방향을 포함한 로봇 전략을 이끌었다. 이 부사장은 지난 5월 삼성전자로 영입됐다.

앞서 엔비디아에서 자율주행차용 인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 2023년 영입된 권정현 삼성리서치 로봇인텔리전스팀장은 작년 말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바 있다.

지능형 자율 로봇 시스템 및 로봇제어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평가받는 김현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와 로봇 손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김의겸 아주대 기계공학과 교수도 RX사업추진실에 합류한다.

삼성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의 최대 과제로 꼽히는 로봇 손(덱스터러스 핸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덱스터러스 핸드는 휴머노이드 부품 원가에서 17~31%를 차지할 만큼 기술 장벽과 비용 부담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핸드 선도업체와 전략적인 협력을 통해 핸드 기술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핸드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김의겸 교수를 로보틱스 매니퓰레이션 개발팀에 영입해 핸드를 비롯한 지능 조작 기술 전반에 걸쳐 개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잡포스팅(사내 공모)과 경력 채용 등을 통해 보행·전신 제어, 매니퓰레이션,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 등 전문 인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현일·이정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