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우회로’ 홍해까지 살얼음판…韓 등 亞수입국 ‘직격탄’ [홍해로 확대된 미·이란 전선]

‘親이란’ 후티, 사우디 해상 봉쇄 선언
‘원유 생명줄’ 바브엘만데브 해협 폐쇄 우려
하루 700만배럴·세계원유생산량 7% 운송
사우디, 개전후 홍해항로 의존도 4배 상승
우회 수출로 차단땐 또다른 에너지 공급난
해상운송·보험료 이미 상승…한·일 초비상


예멘의 친이란 성향 후티 반군이 2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언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우회로인 홍해까지 봉쇄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후티 반군 대변인인 야히야 사리가 TV 방송을 통해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EPA]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 대안 역할을 하며 중동 원유 수출의 숨통을 틔워줬던 홍해까지 봉쇄 위기에 처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전례 없는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제유가는 홍해 봉쇄 위협 소식이 전해지자 급등했다. 홍해 봉쇄가 현실화하면 중동 지역에서 원유를 수급해 온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대리세력인 예멘의 무장세력 후티 반군은 20일(현지시간) “범죄 국가인 사우디 적들을 상대로 해상 봉쇄를 선언하며, 이는 즉각 효력이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3일 후티 반군이 통제하는 사나 국제공항이 폭격받은 것에 대한 책임을 친미(親美)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물으면서, 보복성 조치로 홍해를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후티가 가로막으려는 곳은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곳은 세계 원유 운송의 3% 이상이 통과하는데, 최근에는 사우디가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을 피하기 위해 이곳을 통한 원유 수출을 늘리면서 그 비중이 7%까지 늘었다.

전쟁 전 사우디아라비아는 동부 유전에서 시추한 원유를 동쪽 항구에서 선적해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수출해 왔다. 전쟁 발발 후에는 이를 육상 송유관을 통해 서부의 얀부항으로 보낸 후 홍해를 통과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쳐 수출하는 것으로 바꿨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5월 얀부항을 통해 수출한 원유는 하루 365만배럴로, 전쟁 이전 얀부항에서 선적되는 원유 전체 물량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그 비중이 커졌다. 1년 전의 97만3000배럴에서 4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지난달에는 그 비중이 더 커졌다. 해운 데이터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지난달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한 석유류 물동량은 하루 740만배럴에 달했다.


사우디가 얀부항을 이용해 홍해를 거쳐 에너지를 수출한 덕에 전쟁 기간 중동산 에너지 공급이 이어졌고, 국제유가 상승 압박을 다소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러나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들을 공격해, 사실상 홍해를 봉쇄한다면 호르무즈 해협과 함께 사우디 원유 수출의 양대 통로가 모두 막히는 셈이다. 이는 바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타격으로 이어진다.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국제유가는 단숨에 급등했다. ICE선물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89.22달러로 전장보다 1.27% 올랐다. 브렌트유는 장 중 한때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도 배럴당 83.23달러로 전장보다 0.90% 상승했다. 종가 기준으로 브렌트유는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정 전인 6월 11일 이후, WTI는 6월 12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에너지 애스팩츠의 창업자 암리타 센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홍해 봉쇄까지 이어지고, 전 세계 원유 재고 고갈이 맞물릴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얀부항을 출발한 유조선으로부터 석유 제품을 공급받는 주요 수입국은 한국과 일본, 중국, 싱가포르,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등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경제 타격이 가중될 것이라 분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노암 레이든 선임연구원은 NYT에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수에즈 운하를 통해 항로를 우회해야 한다”며 “이는 운송 비용에 더 큰 부담을 가중할 것이고, 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에너지 공급 외에도 홍해를 통한 해상 운송이 전반적으로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커졌다. 로이터 통신은 보험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후티 반군이 대(對)사우디 해상 봉쇄를 선언한 직후 홍해를 통한 상품 운송의 보험료가 이미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홍해 통항 선박의 전쟁위험 프리미엄은 지난 17일 약 0.3%였는데, 후티 반군의 봉쇄 발표 이후 약 0.75%로 2배 넘게 뛴 것으로 전해졌다.

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