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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미국 워싱턴에서는 디지털자산 역사에 남을 장면이 연출됐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을 규율하는 ‘지니어스 법’(GENIUS Act)이 대통령 서명으로 발효됐고, 같은 주 하원은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관할권을 나누는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 법’(CLARITY Act)을 294 대 134라는 초당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가히 ‘크립토 입법 빅뱅’이라 부를 만하다. 특히 지니어스 법은 인가제와 100% 준비금이라는 엄격한 규율을 세우면서도, 요건을 갖춘 비은행 사업자에게 발행의 문을 열어 안정과 혁신의 균형을 꾀했다.
주목할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입법의 전 과정은 전통 금융권과 크립토 업계의 치열한 긴장 속에서 진행됐다. 핵심 쟁점은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 대한 이자·보상 지급이었다. 이미 발효된 지니어스 법은 발행자의 직접적 이자 지급을 금지했지만, 클래리티 법 심의 과정에서 거래소 등 제3자를 통한 우회적 보상(Rewards)의 여지가 남으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은행권은 예금 이탈로 지역은행의 대출 여력이 무너진다며 전면 금지를 요구했고, 크립토 업계는 기득권 보호를 위한 압박이라며 맞섰다. 미국은행협회의 서한과 광고 공세, 코인베이스 CEO의 공개 반대로 상원 심의가 중단되는 진통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 의회는 갈등을 봉합의 대상이 아니라 공론의 재료로 삼았다. 위원회 초안을 공개하고 100건이 넘는 수정안을 테이블에 올렸으며, 백악관은 은행과 크립토 경영진을 한자리에 불러 절충을 중재했다. 그 결과 올해 5월 상원 은행위원회는 클래리티 법안을 가결했고, 이달 본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은행권의 로비가 아무리 거셌어도, 그것이 크립토 업계의 발언권을 지우지는 못했다. 어느 한쪽에 판을 통째로 내주지 않고, 양 업계를 대등한 협상 당사자로 세운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은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가운데, 은행이 지분 과반을 갖는 컨소시엄에만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자는 이른바 ‘51% 룰’이 논의를 지배하고 있다. 업계와 핀테크가 “은행 중심 구조는 리스크 관리에만 매몰돼 혁신 서비스가 나오기 어렵다”고 호소해도, 정책 설계는 사실상 당국과 금융권 간의 논의로 진행되고 업계의 의견 수렴은 형식에 그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테더와 서클 등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어느 것도 은행 주도로 탄생하지 않았고, 미국·일본·유럽연합(EU) 모두 비은행 발행을 제도권에 수용했다는 점에서, 선례 없는 폐쇄적 구조를 우리만 고집할 이유가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발행 주체를 둘러싼 이견으로 입법 자체가 표류하는 사이, 국내 시장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잠식되고 있다. 이는 산업 경쟁력을 넘어 통화 주권의 문제다.
미국의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첫째, 이해관계의 충돌은 밀실이 아닌 공개된 절차에서 조정돼야 한다. 둘째, 규제당국은 심판이지 특정 선수의 후원자가 아니다. 셋째, 완벽한 합의를 기다리기보다 단계적 입법으로 속도를 확보해야 한다. 금융 안정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안정의 이름으로 혁신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설계된 제도는, 결국 시장의 외면과 산업의 해외 이탈이라는 더 큰 불안정을 낳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업계를 규제의 객체가 아닌 입법의 파트너로 초대하는 열린 거버넌스이며, 그것이 미국의 입법 빅뱅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시사점이다.
조원희 한국웹3블록체인협회장 법무법인 디엘지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