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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90도 인사를 하는 모습이 담긴 두 장의 사진이다. 이 대통령은 90도 인사도 모자라 “두 분은 국가·국민 영웅으로 부르고 싶다”고까지 했다. 대통령이 기업 회장에게 허리를 90도 굽혀 인사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낯설기만 하다. 이날 발표된 단군이래 최대 규모 투자라는 4700조 숫자 역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말마따나 쉽사리 와닿지 않는 낯선 숫자다.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 피지컬AI, AI데이터센터 등을 3대 축으로 호남 및 충청, 영남 등 전국을 신산업 클러스터로 연결하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대통령)이다. 1960년대 당시 자본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섬유·봉제 중심의 경공업 산업구조를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중화학 중심으로 대전환을 이끌었던 포항제철소 설립만큼이나 쉽게 머릿 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말도 많고 사공도 많은 서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3대 메가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이렇게 ‘낯설음’으로 시작했다. 흔히 낯설음은 정치의 영역에서 휘발성이 높기 마련이다. 일각에서 일고 있는 관치논란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땔감을 때서 저성장 궤도로 이탈한 한국경제를 다시 성장의 궤도로 돌려 놓기 위해선 낯설음을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소모적인 논쟁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정치 영역에서 벗어나 이제는 설루션을 내놓아야 한다.
산업혁명의 충격을 뛰어넘는 AI 시대로의 대전환은 낯선 상황에서 마주친 속도의 경쟁이다. 누가 더 빨리, 그것도 정확하게 조준점을 맞춰서 AI를 선점하느냐의 문제다. 메모리 반도체를 구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을 “아비규환”이라고 표현한 최태원 회장의 경험담은 괜한 과장이 아닐 것이다. 최 회장은 “호남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가능하다면 지어야 한다고 본다. 전세계를 다 찾아서 어디가 제일 좋고 빠르고 크게 할 수 있는지 우선순위를 가려서 빨리 짓는 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명줄처럼 됐다”고도 했다. 속도 경쟁이 되고 있는 AI 전쟁에서 생명줄을 잡아 살아남기 위해선 논쟁과 좌고우면의 답답함은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돌 다리도 차근 차근 밟아 나가며 위험을 최소화하는 문법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서나 통한 과거유물일 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전력·용수·정주여건 등 반도체 팹 건설에 필요한 모든 요건을 갖춘 곳은 없다. 어디는 전력이 딸리고, 또 어디는 용수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부족한 인프라를 채우는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의 몫이다.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기업은 어디든 달려 갈 것이다.
‘약속한 투자를 잘 해라’ ‘결단을 내려 진심으로 감사하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 등등 세간의 해석이 어떻든 간에 기업오너에게 90도 인사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 이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먼저 빈 칸을 채워 설루션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야 낯설음은 소모적인 정치와 결별해 대통령이 말하는 새로운 한국경제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CEO들을 정치 무대에 불러들여 들러리로 세우고, 책상 머리에 앉아 나온 숫자 추계를 들이미는 대신에 기업 실무자들을 찾아가 전력과 용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해결책을 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주52시간 등 촘촘하기만 한 규제의 틀도 바꿔야 한다.
무모하리만큼 낯설었던 포항제철소의 기적이 현실이 된 것처럼, 호남반도체가 성공하기 위해선 필요하다면 ‘대 못’을 박을 각오도 해야 한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조변석개식으로 변하는 정책환경은 기업들에게 기업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아무리 빨리 속도를 낸다고 해도 족히 10여년이 걸리는 반도체 팹 건설은 언제든 정책변화의 위험에 노출될 수 뿐이 없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기존의 결정이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확신감을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은 필수요소다.
한석희 뉴스콘텐츠부문장 겸 산업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