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언론탄압 12·3 불법계엄 때도 이어졌다…1980년 해직언론인들 목소리

해직언론인협의회, 국민대토론회 열어
해직 이후에도 감시·사찰은 ‘국가폭력’
조정식 “해직 언론인 명예회복 돕겠다”

20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80년 언론인 강제해직의 역사재판 국민대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 넷째부터 조경태 의원, 조정식 국회의장, 김재홍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정근식 서울교육감, 전진숙 의원, 정진욱 의원.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제공]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1980년대 신군부의 정치적 탄압으로 펜을 놓아야 했던 언론인 모임인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협의회)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국민대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해직 후에도 취업 제한과 감시, 사찰 등 이른바 사후 관리를 자행한 전방위적 국가폭력이었다”며 12·3 비상계엄에서도 언론 탄업의 흔적이 목격됐다고 규탄했다.

해직된 언론인 35명은 “해직 이후 재취업이 제한되는 등 피해를 보았다”며 지난해 11월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6일 이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협의회는 “80년대 언론인 해직에 대한 국가 책임을 법원이 처음으로 본격 심리하는 역사적 사례”라고 밝혔다.

한종범 협의회 상임대표는 이날 인사말에서 “전두환 일당은 어느 독재 세력보다 언론장악에 더욱 철저했고 더욱 간악했으며 더욱 야만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조정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민주언론시민연합, 광주5·18기념재단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조정식 의장은 축사에서 “80년대 언론 탄압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재판이 처음으로 시작됐다. 국회도 해직언론인의 진실규명과 명예 회복을 제도로 돕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검열을 거부한 해직언론인의 싸움은 5·18정신의 표상이다. 그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개헌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협의회 대표단은 공동성명을 내고 “국회의장의 언론인 강제해직에 대한 진심 어린 비판과 5·18정신의 헌법전문 명기 의지에 깊은 경의와 함께 환영한다”고 밝혔다.

1980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그해 벌어진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언론의 비판 보도와 검열 거부를 빌미로 전국 신문·방송사 언론인을 해직했다. 보도 검열 비협조자 등 명단을 작성해 각 언론사에 해고 압력을 행사하면서 900명 이상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기조발제자로 나선 동아일보 기자 출신 김재홍 협의회 공동대표(전 17대 국회의원)는 “(언론인 해직은) 취업 금지와 제한으로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했으며 감시 사찰로 총체적 기본권을 말살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12·3 불법 계엄을 선포한 직후 일부 언론사를 단전·단수 모의한 걸 두고 “희대의 언론 탄압”이라고 꼬집었다.

김주언 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주제발표에서 1979년 10월 말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된 뒤 1981년 1월 해제 시까지 신군부는 언론 보도 총 108만여건을 사전 검열하고 2만9000여건을 보도 관제했다고 공개했다. 그러면서 “보도 검열과 비판 언론인 축출은 내란의 필수 수단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