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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고 있는 티셔츠.[챗GPT로 제작된 이미지]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차라리 나눠주지, 왜 태워?’
한 장에 100만원을 호가하는 티셔츠와 수백만원에 달하는 외투. 일부 명품 브랜드 옷들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인 수준이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모두 팔리는 건 아니다. 상당한 양의 명품들은 끝까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재고’로 남는다.
문제는 이 재고들이 할인 매장이 아니라 ‘소각장’으로 보내지고 있다는 것. 명품의 본고장 유럽에서 폐기되는 ‘새 옷’만 해도 1년에 20만톤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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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명품 중고 시장.[게티이미지뱅크] |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고 시장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것. 물론, 제품을 생산·폐기하는 데 따른 막대한 환경오염에 대해서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명품업계의 관행.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이 제품 폐기 자체를 금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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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애비뉴 명품관. 이상섭 기자. |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의류의 양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전 세계 의류 판매량은 2000년 500억벌에서 2015년 1000억벌로 급증했다. 추세가 이어진 것을 감안하면, 현재는 매년 약 1500억벌가량이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대량으로 생산되는 의류 중 상당량은 주인을 찾지 못하고 버려진다. 호주순환섬유협회(ACTA)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의류의 약 30%는 판매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쉽게 말해, 매년 약 400억벌 이상이 그대로 버려지거나 태워지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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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냐 나이로비에 버려진 옷 쓰레기들 [클린업케냐] |
이는 명품의 본고장인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유럽 시장에 출시되는 섬유제품 가운데 4~9%가 원래 용도로 한 번도 사용되지 못한 채 파괴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단순 무게로 따지면 26만4000톤에서 59만4000톤에 달하는 규모다.
멀쩡한 옷을 폐기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특히 명품 브랜드의 경우 ‘희소성’을 지키기 위해 이같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만일, 명품 브랜드 상품이 대규모 할인해 판매될 경우, 소비자가 정상 가격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돼 ‘희소성’과 ‘높은 가격’에 상응하는 상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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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가 타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
대중 의류브랜드 또한 재고를 폐기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유행이 지난 제품을 창고에 계속 쌓아두면 임차료와 관리비가 들고 새 상품을 보관할 공간이 줄어든다. 할인 판매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익보다 판매 비용이 더 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결국 ‘폐기’가 가장 저렴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지난 19일부터 EU에 속한 대기업들은 팔리지 않는 의류와 액세서리, 신발 등 제품을 이전처럼 폐기할 수 없게 됐다.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의 적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2024년 제정된 해당 법령은 제품을 만들 때부터 생산·사용·폐기 전 과정의 환경영향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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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 매장.[게티이미지뱅크] |
여기서 말하는 ‘파괴’는 불에 태우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팔리지 않는 제품을 쓰레기로 만들어 재활용 공정에 투입하거나, 소각·매립하는 등 전반적인 폐기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새 옷을 분쇄해서 섬유나 충전재로 만드는 방식도 금지된다.
EU는 폐기 대신 기부와 수선, 재사용 등을 권장하고 있으며 건강·안전상 위험이 있거나 위조품 또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 제품 등 특정 상황에서만 폐기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의 표면적인 내용은 소각과 매립 금지다. 섬유제품을 처리하는 데 따른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것. 하지만 숨은 의도가 있다. 수요를 더 정확히 예측해 생산량을 줄이도록 하는 것. 팔리지 않을 옷까지 대량으로 만들어 놓는 패션업계의 관행을 없애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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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의 한 중고 시장.[게티이미지뱅크] |
유럽환경청 분석에 따르면 섬유제품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의 약 80%는 원료 생산과 방적·직조·염색·봉제 등 생산 단계에서 발생한다. 수거·선별·재활용·소각·매립 등 폐기 단계는 약 3%다. 새 옷을 없앨 때 발생하는 오염보다, 입지도 않을 옷을 생산하는 게 더 나쁘다는 얘기다.
2022년 EU에서 소비된 의류·신발·가정용 섬유제품을 생산하는 데 원료 2억3400만톤과 물 53억㎥, 토지 14만4000㎢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공급망에서 온실가스 1억5900만톤이 배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유럽에서 미판매 섬유제품을 처리·파괴하면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연간 최대 560만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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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 의류 매장.[게티이미지뱅크] |
우리나라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국내 패션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48조4167억원 수준.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의류업의 생산액 대비 연말 재고액 비율은 20%에 달한다. 적지 않은 양이 팔리지 않고 남는다는 얘기. 일부 대기업의 경우 1년간 재고 의류를 100톤 이상 소각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2026년 폐의류 선별·파쇄·화학적 재활용 체계와 한국형 에코디자인 제도를 추진하고, 2027~2036년 제1차 순환경제 기본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EU처럼 미판매 의류의 폐기를 직접 금지하거나 기업별 폐기량 공개를 의무화한 제도가 없다.
그 결과 파쇄·소각이 여전히 기업에 가장 손쉽고 저렴한 재고 처리 방식으로 남아 있다. 의류업계 또한 저렴한 폐기 방식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중소업체의 경우 환경을 위해 재고 재활용 방안을 찾으려 해도,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불만을 내놓고 있다.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재활용을 위한 기술 개발이나 시스템 구축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면서 “소각을 하지 않았을 때 유인책이 실질적 이익이 되게 하고, 재활용 기반을 지원해 준다면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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