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정치인’서 한달 만에 英총리 직행…트럼프가 취임 첫날부터 견제한 ‘북부의 왕’[더 비저너리-앤디 버넘 英 총리]

브렉시트 후 10년새 7번째 총리…초고속·무혈 입성
리버풀 인근 노동자 가정 출신 에버턴 축구팬
재무부·내무부 거쳐 문화·보건장관 역임
당대표 선거 두차례 고배…맨체스터 시장 8년

코로나 때 중앙정부와 충돌…‘북부의 왕’ 별칭
버스 공영화·노숙인 정책으로 도시행정 개편
맨체스터 경험 토대로 지방분권·균형발전 추진
“반성과 결의의 시간…효율적 정부 만들것” 취임 일성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노동당 특별 전당대회에서 노동당 새 대표이자 차기 총리로 확정된 앤디 버넘이 행사장을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북부의 왕’이 영국 총리가 됐다.

왕실이 내린 칭호는 아니다. 제조업 쇠퇴 이후 긴 침체를 겪은 영국 북부 주민들이 자신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한 정치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두 차례 패배하며 한때 ‘끝난 정치인’으로 불렸던 앤디 버넘(56)은 웨스트민스터를 떠나 맨체스터에서 다시 출발했다. 시장으로 재임하며 교통과 주택, 노숙인 정책을 손질했고,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중앙정부와 맞서 북부 주민들의 생계를 대변했다.

그렇게 부활한 버넘은 20일(현지시간) 찰스 3세 국왕으로부터 정부 구성 요청을 받고 제59대 영국 총리로 취임했다. 2024년 총선으로 집권한 노동당 정부의 두 번째 총리이자,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10년 사이 일곱번째 총리다.

영국 정치의 중심은 언제나 런던이었다. 총리는 웨스트민스터에서 탄생했고, 권력은 화이트홀에 집중됐다. 웨스트민스터가 아닌 맨체스터에서 정치적 재기에 성공해 총리까지 오른 버넘의 등장은 영국 정치의 무게중심이 중앙에서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전화 엔지니어의 아들에서 영국 정치 지도자로…버넘을 키운 축구와 노동자의 삶


버넘은 1970년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에인트리에서 태어나 체셔주 컬체스의 단층 주택에서 자랐다. 전화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병원 접수원으로 일한 어머니 밑에서 세 아들 가운데 둘째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축구였다. 평생 에버턴 FC의 팬으로 살아온 그는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에도 축구와 크리켓을 즐겼고, 대학신문 ‘바시티’에서 스포츠 기자로 활동하며 축구와 가라테, 크리켓 관련 기사를 썼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경기장을 찾을 만큼 축구 사랑이 각별하다. 영국 언론은 그를 ‘축구장에서 시민을 만나는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지난 5월 17일 영국 리버풀의 힐 디킨슨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에버턴과 선덜랜드의 경기 후, 앤디 버넘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이 관중석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정치에 눈을 뜬 계기는 의외였다. 1980년대 BBC 드라마 ‘보이즈 프롬 더 블랙스터프(Boys from the Blackstuff)’였다.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대량 실업으로 무너지는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버넘은 영국 GQ와의 인터뷰에서 “부모님과 함께 매회 이 드라마를 봤고, 그때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노동당에 입당한 그는 케임브리지대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정치권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폐간된 지역신문 ‘미들턴 가디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2년 런던으로 건너가 출판사에서 ‘탱크 월드’와 ‘컨테이너 매니지먼트’ 같은 산업 전문지를 담당했다. 이곳에서 노동당 의원 테사 조웰의 의붓딸 엘리너 밀스를 만났고, 술자리에서 “국회 보좌관에 지원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우연처럼 시작된 이 인연은 버넘의 정치 인생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는 계기가 됐다.

미들턴 가디언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의 젊은 앤디 버넘(왼쪽에서 두 번째). [가디언]


차기 총리감에서 ‘끝난 정치인’으로…맨체스터가 다시 살린 버넘


1990년대 중반 노동당에 합류한 버넘은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를 중심으로 ‘뉴 레이버(New Labour)’를 내세우며 정권 교체를 준비하고 있었다. 버넘은 테사 조웰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 실무를 익혔고, 이후 문화부 특별보좌관으로 일하며 중앙정부 경험을 쌓았다.

2001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내무부 정무차관을 시작으로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장관, 재무부 수석차관, 보건장관 등을 잇달아 맡았다. 특히 보건장관 시절에는 국민보건서비스(NHS) 개혁과 신종플루 대응을 지휘하며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불과 서른 후반에 주요 부처 장관을 맡은 그는 노동당 내부에서 차기 지도자로 꼽히는 ‘젊은 피’였다.

하지만 정치 인생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2010년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데이비드 밀리밴드와 에드 밀리밴드 형제에게 밀렸고, 2015년에는 제러미 코빈에게 패했다. 두 번의 패배는 치명적이었다.

2017년 버넘은 웨스트민스터를 떠나 광역 맨체스터(Greater Manchester) 초대 직선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영국 정치권은 의아하게 바라봤다. 장관까지 지낸 정치인이 지방정부로 내려가는 것은 사실상 중앙정치에서 밀려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넘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사람들이 정치를 믿지 않는 이유는 정치가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라며 “정치는 시민이 사는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앤디 버넘 당시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이 비 네트워크(Bee Network) 버스 앞에서 교통 통합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비 네트워크는 버스와 트램, 자전거를 하나의 공공 교통체계로 묶은 버넘의 대표 정책으로 꼽힌다. [그레이터맨체스터시장실]


그가 시장으로 취임한 뒤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의외로 교통이었다. 당시 맨체스터 버스는 민영회사들이 각각 노선과 요금을 운영해 시민들의 불만이 컸다. 같은 목적지를 가더라도 회사마다 요금이 달랐고 환승 체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버넘은 이를 런던처럼 하나의 공공 교통망으로 통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비 네트워크(Bee Network)’였다. 맨체스터를 상징하는 꿀벌(Bee)에서 이름을 따온 이 정책은 버스와 트램, 자전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고 하나의 요금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1980년대 대처 정부 이후 민영화됐던 버스 체계를 지방정부가 다시 관리하겠다는 시도는 영국에서도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비 네트워크는 영국 지방정부 교통정책의 대표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고,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모델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숙인 정책도 과감하게 손봤다. 취임 직후 거리 노숙을 줄이기 위한 ‘에브리원 인(Everyone In)’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지방정부와 자선단체, 민간기업을 함께 참여시키는 협력 모델을 구축했다. 버넘은 “노숙인은 통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주거 지원을 확대했다. 이런 생활밀착형 정책은 ‘행정을 잘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코로나 앞에서 시민 대표로 앞장…‘북부의 왕’이 탄생한 순간


지난 1일 영국 런던 의회 앞에서 한 친EU 시위 참가자가 앤디 버넘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친EU 진영은 차기 총리로 유력한 버넘이 EU와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PA]


버넘을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만든 결정적인 사건은 코로나19였다. 2020년 가을, 보리스 존슨 정부는 잉글랜드 북부에 가장 강력한 봉쇄 조치를 추진했다. 버넘은 봉쇄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대신 “봉쇄를 한다면 시민들이 먹고살 수 있는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는 추가 지원을 거부했다. 버넘은 생중계 기자회견을 열어 중앙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맨체스터 시민의 삶은 런던 시민보다 덜 소중하지 않다.”

“북부는 정부에 구걸하는 지역이 아니다.”

기자회견은 영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정부와 지방시장이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장면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BBC와 스카이뉴스는 그의 기자회견을 주요 뉴스로 다뤘고, SNS에서는 “우리를 대신해 말해주는 정치인”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가디언은 버넘을 “북부의 목소리”라고 불렀고, 정치권에서는 ‘킹 오브 더 노스(King of the North)’라는 별명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버넘에게 중앙정부에 맞서 시민 편에 선 시장이라는 이미지를 남겼고, 그 신뢰는 지방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됐다. 총리 후보로 두 번 실패했던 정치인은 그렇게 다시 영국 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보궐선거 당선 한 달 만에 다우닝가로…스타머 사임이 연 초고속 입성


지난달 29일 영국 맨체스터 인민역사박물관에서 안경을 고쳐 쓰며 연설하고 있는 앤디 버넘 노동당 대표. [AP]


버넘이 총리로 가는 마지막 길은 빠르게 열렸다.

2024년 7월 총선에서 노동당을 압승으로 이끌며 14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한 스타머 전 총리는 집권 이후 잦은 정책 철회와 국정 비전 부족, 인사 오판으로 지지율 하락을 겪었다. 지방선거에서는 우익 영국개혁당에 밀리며 참패했고, 노동당 내부에서는 2029년 차기 총선 패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내 사임 압박이 거세지자 스타머는 결국 총리직과 당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버넘이 당시 하원의원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영국 총리가 되려면 통상 하원의원 신분으로 집권당을 이끌어야 한다. 버넘은 지난달 18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9년 만에 하원으로 돌아왔다.

복귀 이후의 과정은 초고속이었다. 버넘은 노동당 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하며 당대표 경선에 단독 출마했고, 지난 17일 런던에서 열린 특별 당대회에서 노동당 대표로 공식 선출됐다.

총선 없이 총리가 교체된 것은 영국 의원내각제의 특성 때문이다. 의회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집권을 유지하는 한 당대표가 바뀌면 새 대표가 총리를 맡을 수 있다.

버넘은 노동당 의원 379명과 23개 연계 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경쟁 후보 없이 대표로 선출된 그는 사흘 뒤 다우닝가 10번지에 입성했다. 블레어 전 총리의 사임 이후 경선 경쟁 없이 총리 자리를 넘겨받았던 브라운 전 총리와 비슷한 방식이다.

“국민 숨통 틔우겠다”…‘북부의 왕’ 앞에 놓인 첫 시험대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노동당 특별 전당대회에서 노동당 신임 대표이자 차기 총리로 확정된 앤디 버넘이 아내 마리프랑스 판힐과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


버넘은 20일 먼저 버킹엄궁을 찾아 찰스 3세 국왕으로부터 정부 구성 요청을 받았다. 이후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 앞에서 국민을 향한 첫 연설에 나섰다.

그는 10년 새 다우닝가에 들어서는 일곱 번째 총리가 됐다는 사실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며 더 안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잦은 총리 교체와 정책 혼선으로 커진 정치 불신부터 해결하겠다는 의미다.

버넘은 취임을 ‘반성과 결의의 시간’이라고 규정했다. 영국이 직면한 도전을 솔직히 인정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어 전 세계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버넘 앞에는 적지 않은 과제가 놓여 있다. 영국 경제는 저성장과 높은 생활비 부담, 만성적인 NHS 적체, 심각한 주택난, 브렉시트 이후 투자 둔화라는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북부와 남부의 격차도 여전하다.

스타머 정부의 지지율을 끌어내린 핵심 원인도 국민이 체감하지 못한 경제 회복과 공공서비스 개선이었다. 버넘이 취임사에서 “국민의 숨통을 틔우겠다”고 강조한 것도 생활비 부담을 낮추고 정부가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지 못하면 노동당 정부의 위기가 계속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외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다. 최대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버넘에 대해 “매우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들었다”며 “아마 북해 유전 개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버넘 취임일인 20일에는 “북해 유전을 완전히 개방할 것”이라며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만들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영국이 화석연료 개발을 확대해야 한다는 자신의 에너지 정책을 버넘에게 공개적으로 주문한 셈이다.

버넘은 그동안 노동당의 북해 신규 석유·가스전 개발 중단 공약을 지지해왔지만, 최근에는 북해 개발에 ‘열린 태도’를 보인다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버넘 역시 트럼프를 향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그는 미국식 정치 양극화를 ‘독이 든 정치’라고 지적했고, 2021년 미국 의회 난입 사태 당시에는 트럼프를 지지한 영국 정치인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정치적 견해차를 넘어 트럼프와 실용적인 미·영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가 버넘의 첫 외교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앤디 버넘이 걸어온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