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전당에서 떼창과 스탠딩…혼네가 롯데콘서트홀을 다루는 법 [고승희의 리와인드]

데뷔 10주년 내한공연 팝 듀오 혼네
롯데콘서트홀에서 3일간 4회 공연
클래식홀에서 떼창과 함성, 스탠딩
잔향 강점, 어쿠스틱 사운드 빛나


혼네 데뷔 10주년 기념 내한공연 [Savoir-Faire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클래식 전용홀에서 2000명의 관객이 일어섰다. 애초 클래식을 위해 설계된 롯데콘서트홀은 영국 팝 듀오 혼네(HONNE)의 10주년 공연에서 떼창의 성지로 변신했다.

“오늘 밤 함께 있어 줘, 우리 둘 다 후회 없게 만들자 (Spend the night and we will make it worth the while)” (‘더 나이트(The Night)’ 가사 중)

공연은 데뷔 앨범 ‘웜 온 어 콜드 나이트(Warm On A Cold Night)’의 첫 트랙인 ‘더 나이트’로 시작됐다. 혼네의 음악에서 ‘밤’은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사적인 감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무대는 30여 개의 알전구가 달린 스탠드 조명이 만든 작은 방, 클래식홀의 깊은 잔향 속에서 관객은 ‘혼네의 밤’ 안으로 들어가 ‘듣는 음악’을 만났다.

영국 출신의 얼터너티브 팝 듀오로 보컬 앤디 클러터벅과 신시사이저 연주자 제임스 해처로 구성된 혼네(HONNE)가 데뷔 10주년을 맞은 글로벌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을 찾았다. 컴필레이션 앨범 ‘혼네-10’의 발매에 맞춰 16~18일까지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국 팬들과 만났다. 당초 이 공연은 3회차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전석 전회차 매진 행렬로 회차를 늘려 4번의 공연으로 팬들과 만났다.

왜 롯데콘서트홀이었나…무대 위에 지은 작은 방


“아이 러브 디스 사운드(I love this sound).”

혼네는 공연 내내 이 말을 반복했다. 관객이 박수를 칠 때, 떼창으로 응답할 때, 객석에 함성이 수채화처럼 번질 때도 그들의 감탄사엔 이 말이 따라왔다. “판타스틱 사운드.” 혼네가 롯데콘서트홀을 10주년 기념 공연 장소로 결정한 이유다.

혼네 데뷔 10주년 기념 내한공연 [Savoir-Faire 제공]


그간 혼네는 한국을 찾을 때마다 대중음악 공연장을 주로 이용했다. 2016년 첫 방한 당시 예스24홀을 시작으로 블루스퀘어(2019), KBS아레나(2023)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고 각종 국내 페스티벌을 통해 유수 공연장과 야외무대에 섰다.

이번엔 예술의전당과 함께 한국의 대표 클래식 성지인 롯데콘서트홀을 데뷔 10주년 기념 내한 공연의 무대로 결정했다.

국내 가수들이 종종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섰으나, 해외 팝스타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연기획사 프라이빗 커브는 “아티스트와 공연장을 결정할 때 좌석수, 위치, 공연장 컨디션 등 다양한 요인을 놓고 논의한다”며 “혼네는 차분한 느낌의 공연장과 관객을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콘서트홀을 찾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어쿠스틱 사운드의 구현이었다.

대중음악계에서도 롯데콘서트홀을 선호하는 이유는 혼네와 다르지 않다. 롯데콘서트홀 관계자는 “최근 대중음악은 오케스트라 협연, 어쿠스틱 편곡 등 클래식 요소를 접목한 공연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며 “뛰어난 어쿠스틱을 바탕으로 기존 투어와 차별화된 무대를 구현하기에 적합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원하는 아티스트들이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너른 포도밭을 형상화한 빈야드 객석 구조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주는 것은 물론 어느 자리에서도 무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최소 8석(2층 L, R구역)에서 최대 160석(2층 C구역), 총 37개 구획으로 뉜 객석은 무대와의 거리도 최소화했다. 기존 클래식 공연장은 무대 높이가 80~90㎝지만, 롯데콘서트홀은 60㎝다. 객석 1층 자리에선 무대 위 연주자와 가수들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혼네 데뷔 10주년 기념 내한공연 [Savoir-Faire 제공]


혼네는 이 공간을 훌륭하게 활용했다. 100평에 달하는 무대는 절반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대형 LED 스크린도, 화려한 영상도 없었다. 출입구를 에워싼 스피커가 있었으나, 무대는 절반쯤은 방치된 채 정중앙에 부채꼴 모양으로 30~40개의 플로어 스탠딩 조명을 세워 하나의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그 안으로 혼네와 여성 보컬 베카, 드러머, 그랜드 피아노, 전자 건반이 자리했다.

무대 위 또 하나의 무대, 작은 방이 만들어졌다. ‘베드룸 팝’이라 불리는 혼네의 음악은 원래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빛난다. 늦은 밤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은 클래식홀 한가운데 거실 같은 친밀한 공간으로 옮겨왔다.

악기가 된 공연장...떼창, 함성, 박수도 음악


연은 혼네의 시작과 이 듀오의 최전성기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2016년 데뷔 앨범부터 시간순으로 나열한 뻔한 스토리텔링이 아니었다. 혼네는 10년간 그들이 노래한 감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었다. 사랑에 빠지고, 멀어지고, 다시 서로를 위로하는 이야기였다.

‘더 나이트(The Night)’로 시작한 공연은 ‘3AM’, ‘미 & 유(Me & You)’, ‘로케이션 언노운(Location Unknown)’, ‘프리 러브(free love)’, ‘노 송 위드아웃 유(no song without you)’, ‘굿 투게더(Good Together)’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혼네가 빚어낸 음향이었다. 롯데콘서트홀은 잔향이 길어 클래식 애호가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세계적 지휘자들이 오면 “OO도 살리지 못한 음향”이라는 평이 나오기 일쑤였다.

혼네 데뷔 10주년 기념 내한공연 [Savoir-Faire 제공]


애초 ‘공간’을 품고 있는 혼네의 음악은 이곳에 안성맞춤이었다. 신스 패드와 코러스, 여백이 많은 편곡, 단단하지만 과장하지 않는 보컬은 긴 잔향을 흩뜨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품었다. 공연 기획사에 따르면 혼네는 공연 전 여러 차례 사운드 체크를 거쳤다. 혼네는 공연장의 울림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그 울림을 음악 안으로 끌어들였다. 공연장은 더 이상 음악을 담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악기가 됐다.

특별한 사운드 연출의 순간도 인상적이었다. ‘306’에선 벌레 울음소리를, ‘코스털 러브’에선 파란 조명에 맞춘 파도 소리를 더했다. 어쿠스틱으로 편곡된 혼네의 곡들이 세련된 도시 감성을 벗고 자연을 입는 순간이었다.

공연 내내 눈길을 끈 건 혼네의 소통 방식이었다. 빈야드홀의 구조,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는 심리적 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혼네는 노래를 마치고 1층 객석 중앙에 앉은 커플에게 “아까 했던 동작 다시 한번 해달라”고 요청했고, 객석에서 커플이 팔을 맞대 하트를 만들자, 혼네는 손하트를 만들어 관객들에게 돌려보냈다. 그러자 공연장 곳곳에선 손하트가 파도타기처럼 이어졌다.

롯데콘서트홀 관계자는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운 빈야드홀은 어느 자리에서도 뛰어난 시야와 몰입감을 제공한다”며 “공연장 특유의 공간미 역시 일반 공연장과는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요소라서 대중음악 장르에서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혼네 데뷔 10주년 기념 내한공연 [Savoir-Faire 제공]


심지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클래식 홀에서의 ‘스탠딩 공연’도 성사됐다. 혼네가 “일어설 수 있겠냐”고 요청하자, 관객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리듬을 타며 음악을 즐겼다. 절정은 앙코르였다. 세트리스트에서 가장 의도적인 지점이다. 이날의 앙코르는 ‘웜 온 어 콜드 나이트(Warm On A Cold Night)’와 ‘데이 원(Day 1)’.

‘웜 온 어 콜드 나이트’는 한국에선 침대 광고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혼네라는 팀을 가장 잘 설명하는 노래다. 차가운 밤을 데우는 작은 온기는 혼네가 품어온 가까운 이들과의 감정의 시작이다. 워낙 유명한 곡인 만큼 떼창도 필수였다. 혼네는 무대에서 너른 포도밭 공연장을 두세 구역으로 나눠 ‘떼창’ 경쟁을 시켰고, 관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낭랑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데이 원’은 10주년을 기점으로 다시 ‘첫날’로 돌아가고자 하는 초심의 발로였다. 팬들은 그 마음을 아는지 떼창으로 감정을 공유했다.

한국은 혼네가 처음으로 공연을 매진시킨 나라다. 두 사람은 “‘테이크 언더 원스 윙’(Take under one‘s wing·보살피다)이라는 영어 관용구가 있다. 한국이 저희를 그렇게 해 준 곳”이라며 몇 번이나 한국어로 “한국 사랑해”,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한국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