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현실과 무의식 오가는 연출
로맨스와 유머로 채운 오리지널 프렌치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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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리의 사생활’ [티캐스트 제공]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파리에 사는 정신과 의사 릴리안(조디 포스터 분)은 어느 날 9년간 자신에게 상담을 받아온 환자 폴라(비르지니 에피라 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상담이 돈 낭비였다고 쏘아붙이던 환자 앞에서도 흔들림 없던 그이지만, 이상하게도 폴라의 죽음을 알게 된 후로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흐르는 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폴라의 딸 발레리(루아나 바이라미 분)의 연락을 받은 릴리안은 폴라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릴리안을 본 폴라의 남편 시몽(마티유 아말릭 분)은 무슨 연유인지 화를 참지 못하고 그를 문전박대한다.
가족 앞에서조차 이성을 앞세우며 살아온 릴리안은 결국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다스리기 위해 환자에게 들었던 최면술사를 찾아간다. 눈물 뒤에 숨은 깊은 애도를 꿰뚫어 본 최면술사는 릴리안을 전생의 기억 속으로 이끌고, 최면술사의 목소리를 따라 무의식의 문을 여닫던 릴리안은 끝내 전생에서 자신과 폴라가 깊은 관계였음을 알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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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리의 사생활’ [티캐스트 제공] |
최면에서 마주한 전생의 기억과 폴라와의 상담 녹음을 토대로, 릴리안은 폴라가 단순히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닐 것이란 확신에 다다른다. 환자를 잃은 슬픔과 죄책감은 멈춰버린 눈물 대신, 진짜 ‘범인 찾기’에 나선 릴리안의 여정으로 발현된다. 폴라의 죽음에 얽힌 비밀은 무엇일까. 릴리안은 그 진실을 밝혀내고, 자신을 옭아매던 책임감과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공식 초청작인 ‘파리의 사생활’은 할리우드 명배우 조디 포스터가 섬세하게 그려내는 연기 변주로 관객을 이끈다. 누구보다 이성적이었던 정신과 의사가 자기 확신이라는 벽에 자꾸만 부딪히고, 죄책감과 의심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연기는 작품 전반을 지탱하는 서사 그 자체로 작동한다.
어딘가 수상해 보이지만 딱히 그렇다고도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좌표를 정하고 곧장 달려 나가는 주인공의 여정은 ‘미스터리 추적극’이라는 장르의 무게와 달리 오히려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경쾌한 인상을 남긴다. 남의 택배를 슬쩍 훔치고,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고, 어설프게 미행까지 감행하는 릴리안. 지극히 냉철했던 한 사람이 벌이는 일탈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성과 감성을 오가는 릴리안은 무의식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 현실과의 경계마저 무너뜨린 채 그 안에서 헤엄친다. 이성의 반대편에서 감성과 한 덩어리로 뭉친 무의식은 독특하고도 기이한 질감의 비주얼, 흔들리는 앵글 등을 통해 표현되며 현실과 자연스레 결합한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프랑스 특유의 정서와 리듬감을 살린 연출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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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리의 사생활’ [티캐스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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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리의 사생활’ [티캐스트 제공] |
‘그랜드 센트럴’(2013), ‘플래니테리엄’(2016), ‘타인의 아이들’(2022) 등을 통해 스릴러와 로맨스, 블랙 코미디를 넘나드는 장르를 선보여 온 레베카 즐로토브스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꿈과 판타지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릴리안의 좌충우돌 추적극은, 결국 한 정신과 의사의 성장기로 귀결된다. 진실을 좇는 과정에서 릴리안은 가까운 이들이 오랜 시간 자신을 바라봐 온 시선과 감정들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이유로 정당화해 왔던 어긋난 관계들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깨닫는다.
굳게 닫힌 문을 걸어 잠근 채 자신만의 틀 안에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살아온 릴리안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그동안 열지 않았던 문을 열어젖힌다. “우리 엄마는 사과를 하지 않는데요.” 릴리안의 사과에 당황하는 아들 쥘리앵의 모습과, “왜 녹음을 하지 않냐”는 환자의 의문 섞인 질문은 한 인간이자 직업인으로서 성장한 릴리안의 모습을 투영한다.
‘파리의 사생활’은 제목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릴리안의 내밀한 감정과 ‘사생활’을 파고든다. 동시에 영화는 미국인인 릴리안의 시선으로 바라본 파리라는 도시의 낯섦을, 이국적인 멋과 감성, 프랑스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절묘하게 조화시킨다. 미스터리 추적극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성장과 로맨스, 유머가 겹겹이 포개져 있다. 장르의 경계 사이사이를 채워 넣은 중년의 로맨스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15세 이상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