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지도자 유고 시나리오까지 코드화”…날로 진화한다는 이란의 ‘美 대응력’, 비결은?

이란의 공습으로 인해 지난 18일(현지시간) 쿠웨이트 망가프의 석유시설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미국이 전쟁 전 핵협상에서 우라늄 농축 금지를 요구했다가 이란이 이를 거부하자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며, 이를 ‘오판‘이라 비판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날 현지 언론인 자바드 모구이와 인터뷰에서 협상의 내막과 최근 교전으로 이어진 사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우라늄) 농축도 0%’라는 그들(미국)의 비이성적 요구에 우리는 저항했다. 그들은 협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자 이란의 준비 태세를 오판해 전쟁을 시작했다”며 “협상이 전쟁을 유발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2월) 그들은 농축도 0% 요구를 받든지 군사행동을 감수하라는 식이었다”며 “이에 정부와 군 당국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했으나 상대가 이 요구를 포기할 수도 있으니 한두 번은 협상해야 결렬돼도 ‘할 만큼 했다’는 명분이 축적된다고 봤다”며 강경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추진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어떤 국가든 협상의 길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당연히 위험이 적고 비용이 덜 드는 이 길을 선호한다”며 “10%의 확률이라도 협상을 통해 전쟁이 아닌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이 기회를 시도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2일 전쟁을 끝내고 미국과 협상하기로 한 판단은 내 결정이 아니고 집단적 결정”이라며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산하 6인 위원회에서의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 위원회에서 군의 한 고위급 인사가 “우리는 완벽히 준비됐다. 장관님은 장관님 일을 하라”고 전했다. 군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는 협상을 반대했고, 실용주의 노선에 있는 인사들이 이 반대를 무릅쓰고 협상에 나섰다는 세간의 관측을 정면 반박했다.

그는 “12일 전쟁을 통해 우린 정치적 교훈뿐 아니라 매우 중요한 군사적 교훈을 얻었다”며 “미사일 발사대 시스템이 완전히 재편됐고 그들이 아무리 타격해도 즉시 대체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의 대비에 대해 “미국의 단독 공격, 미·이스라엘과 합동 공격, 국가 인프라에 대한 공격, 최고지도자의 유고 시 등에 대한 군사적 시나리오가 모두 검토돼 코드까지 지정됐었다”며 “이런 준비로 전쟁 발발 직후 지체 없이 대응할 수 있었다”고 과시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역시 어떻게 첫날부터 봉쇄할 수 있었겠느냐”며 “최고지도자가 타격을 입을 경우 즉시 해협을 막도록 설계됐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동 국가들을 왜 강경하게 압박하지 않느냐’는 비판에는 사실과 다르다며 “역내 지도자 중 한명이 지극히 오만한 태도로 묘한 기쁨을 띤 채 ‘미국이 이란 본토와 당신들의 최고지도자를 겨냥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에게 ‘우리 석유 시설을 때린다면 중동 내 그 누구도 석유를 수출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후 역내 국가들이 전쟁을 막기 위해 행동에 나서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거세게 일었다가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에 의해 잦아든 반정부 시위에 대해서는 “어쨌든 우리에게 약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서 “지난 1월 8, 9일 외부 공작 세력이 본격 개입해 민간인과 진압군을 무차별 사격했다”고 주장했다. 이란 정부가 당시 선전했던,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선동된 시위라는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에 대한 근거로 ‘이란에 유혈사태가 발생하면 개입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들었다.

아라그치 장관은 초기에 오만이 중재국으로 나서 미국과 이란의 협상을 진행했던 상황에 대해서도 내막을 전했다. 당시 오만은 양국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미국에 이란이 전례없이 협조적이라고 ‘어필’하기도 했고,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이 협상 분위기가 좋다는 글을 전쟁 발발 직전까지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라그치 장관의 전언에 따르면 미국을 방문한 알부사이디 장관은 미국의 태도에 크게 낙담해 아라그치 장관에게 전화해 우울해했다. 이에 아라그치 장관은 전쟁 하루 전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짓고,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2월 28일 오전 9시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그날 밤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아라그치 장관은 중동 인근 국가들에 대한 보복 공습은 군부의 독자적인 판단이 아니라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핵심 지휘부와 실시간 소통하며 외교적 최후통첩 이후 단행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당시 공습에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고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이후에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에 대해, 아라그치 장관도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합의한 휴전이 모즈타바의 결정에 의한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아라그치 장관은 “당시엔 그분과 직접 소통이 어려워서 연락원을 통해 소통했고, 그러한 방식으로 사안들이 전달됐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