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시간 무급실습 ‘병원인력 대체’ 논란…간호조무사 실습생 보호 사각지대

“실질적 근로 제공했다면 근로자성 인정해야”
“교육보다 반복업무 치중” 지적…간호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일부 개선


사진은 기사와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간호조무사 자격 취득을 위해 의무적으로 이수하는 780시간의 병원 실습 과정이 사실상 병원 인력 공백을 메우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실습생이 병원의 지휘·감독 아래 실질적인 노동을 제공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박현서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최정은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최근 발표한 '노동판례리뷰'에서 지난해 서울북부지법 항소심이 선고한 간호조무사 실습생 사건을 분석하며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짚었다.

해당 사건은 간호조무사 교육생 A씨가 2022년 약 4개월 반 동안 병원에서 총 780시간의 현장실습을 마친 뒤 "실습이 아니라 실제 근로를 제공했다"며 최저임금 상당의 임금을 청구한 소송이다.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를 위해서는 740시간 이상의 이론교육과 780시간 이상의 실습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1심은 A씨와 병원 사이에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합의가 없었다며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교육 범위를 벗어나 실질적인 노동을 제공한 일부는 인정해 전체 실습시간의 절반인 390시간에 대한 최저임금 상당액을 병원이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실습의 목적이 교육훈련에 있고 근로계약도 체결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병원의 부당이득 반환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실습생의 업무 능력이 미숙해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의 지속적인 감독이 필요했던 만큼 병원이 실습생의 노동력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두 교수는 항소심이 근로자성 판단의 핵심인 '실질'보다 계약 형식에 지나치게 무게를 뒀다고 비판했다.

대법원은 근로자성 판단 시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보다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종속적으로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는데, 항소심은 근로계약 미체결과 국가자격 취득을 위한 필수 교육이라는 점을 근거로 근로자성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두 교수는 "실습생이 수행한 업무가 반복적이고 단순해 교육 목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면 병원이 실질적으로 노동력을 활용해 인력 운영 비용을 절감했을 가능성을 면밀히 따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위탁계약의 존재 여부 등 형식보다 현장실습이 교육 목적에 맞게 운영됐는지, 병원의 지휘·감독 아래 실질적인 노무를 제공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고용노동부의 '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과도 맞닿아 있다. 노동부는 직무교육 프로그램 없이 업무상 필요에 따라 수련생에게 반복적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등 사실상 노동력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제도 개선도 일부 이뤄졌다. 지난해 제정된 간호법 시행규칙은 기존 780시간의 병원 실습 가운데 최대 234시간을 정부가 지정한 훈련기관의 실습교육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 병원 중심의 장시간 현장실습 부담을 일부 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