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규제통화’ 벗는다…정부, 자유교환통화 전환 로드맵 발표

역외 원화결제망 구축·24시간 외환시장·외환규제 대폭 완화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무역결제 확대…리스크 관리체계도 병행


24시간 외환시장 개장 첫날인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원화를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자유교환통화(Freely Convertible Currency)’로 전환하는 청사진을 내놨다. 외환시장 24시간 운영을 넘어 해외에서도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결제할 수 있는 역외 원화결제망을 구축하는 한편 외국인 원화거래 규제를 대폭 완화해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자본 유출입 확대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에 대비해 외환안전망과 시장 모니터링 체계도 함께 강화하기로 했다.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한국예탁결제원은 19일 이런 내용을 담은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부는 원화를 현재의 ‘규제통화(Restricted Currency)’에서 ‘자유교환통화’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역외 원화거래 인프라 구축 및 외환제도 개선 ▷원화거래 수요 확충 ▷원화 유동성 공급 확대 ▷다층적 리스크 관리체계 구축 등 4대 전략을 추진한다.

정부는 우리 경제 규모와 자본시장 발전 수준을 감안하면 원화 국제화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판단했다. 원화 국제화가 진전되면 기업의 환전·환헤지 비용이 줄고 자본시장 접근성이 높아지는 반면 글로벌 충격이 국내로 빠르게 전파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리스크 관리를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해외서 원화 계좌 개설·결제…‘역외원화결제망’ 구축



가장 큰 변화는 역외 원화거래 인프라 구축이다.

정부는 지난 6일 시작한 외환시장 24시간 운영을 정착시키는 데 이어 해외 금융기관을 ‘역외원화결제기관’으로 등록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이를 통해 외국인은 국내 은행 계좌를 만들지 않아도 해외 금융기관에 개설한 본인 명의 원화 계좌를 이용해 원화를 보유하고 송금·결제할 수 있게 된다.

역외원화결제기관을 이용한 외국인 간 원화 자본거래는 국내 부동산 거래를 제외하고 사전신고가 면제되며 은행의 거래 확인 절차도 간소화된다. 역외원화결제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외국인의 원화거래에는 기존 외국환거래법령상 절차가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은행에는 24시간 운영되는 ‘역외원화결제망’도 새롭게 구축된다. 외국인 간 원화 거래가 한국은행 결제망에서 최종 결제되도록 해 해외에서도 시차 제약 없이 원화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오는 9월 시범운영을 거쳐 2027년 역외원화결제망을 정식 시행할 계획이다.

현재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중심인 원화 거래를 실물인도선물환(DF) 거래로 점진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인센티브도 마련한다. 선물환 포지션과 외환건전성부담금 산정 시 NDF보다 DF 거래를 우대하는 방안 등이 검토된다.

외환규제도 대폭 손질한다. 외국인 원화대출과 외화차입 등 자본거래의 사전신고 기준금액을 두 배 이상 높이고, 현행 사전신고 체계를 단계적으로 사후보고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제3자 외환거래에서 외국 금융회사가 거래 당사자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복잡한 원화계정 구조도 통합·간소화한다.

디지털 금융환경 변화에도 대응한다. 정부는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유통·거래 근거를 마련하고 국경 간 지급결제도 제도화할 방침이다. 한국은행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연계한 국채 토큰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국제결제은행(BIS)의 디지털 국제결제 프로젝트인 ‘아고라(Project Agorá)’에도 참여한다.

외환규제 풀고 원화 수요 확대…변동성 대비 안전판도 강화



원화 수요를 늘리기 위한 정책도 함께 추진된다.

MSCI 선진시장 접근성 개선 로드맵의 잔여 과제를 이행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권시장 접근성을 높인다. 외국인이 보유한 국채와 통화안정증권의 담보·대차 활용 범위를 넓히고 국제예탁결제기구(ICSD) 내 외국인 간 국채·통안채 대차거래도 허용할 계획이다.

무역 분야에서는 원화 결제에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원화로 수출입 대금을 결제하는 기업에는 정책금융 금리 우대와 무역보험 한도 우대를 검토하고, 정부 수출지원사업 선정 시 원화 결제 실적과 확대 계획을 우대 요소로 반영한다.

주요 교역국과 달러를 거치지 않고 자국 통화로 결제하는 현지통화 직거래체계(LCT)도 확대한다. 국가 간 QR결제 연동을 늘리고 아시아 지역 소액결제망을 연결하는 다자간 지급결제 네트워크 참여도 검토한다.

원화 유동성 공급 장치도 마련한다. 야간 역외 결제 과정에서 외국 금융기관이 국내 외국환은행으로부터 원화를 제한 없이 일시 차입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하면 정부 외국환평형기금과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는 공공 백스톱을 구축한다.

정부는 원화 국제화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 외환시장 안전장치도 강화한다. 외환시장 안정 여력을 점진적으로 확충하고 공공부문의 외화자산이 유사시 외화 유동성 공급수단으로 활용되도록 기능을 강화한다. 양자·다자간 통화스와프도 확충한다.

재경부와 한국은행의 야간 모니터링 데스크를 중심으로 환율 급변과 호가 스프레드, 거래량 등을 실시간 점검하고 역외 원화시장의 유동성과 금융기관별 원화 조달 규모를 살피는 별도 모니터링 지표도 신설할 방침이다. 외환건전성 규제와 스트레스 테스트에도 역외 원화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등 건전성 관리체계를 단계적으로 재설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