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 속 진짜 현실…‘살인 무기’로 훈련, “가족 죽어도 통보 안해”

드라마 ‘김부장’·1953년 5월 1일 켈로부대 유격대 헌병대원 일동이 기념촬영한 모습 [SBS·국가기록원]


[헤럴드경제=김보영 기자] 최근 북파공작원을 다룬 배우 소지섭 주연 드라마 ‘김부장’이 인기를 끌면서 공작원들의 삶도 재조명되고 있다.

1984년부터 3년간 ‘북파 공작원’으로 훈련받았던 하태준(67) 특수임무수행자유족동지회 회장은 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존재 자체가 기밀이었던 탓에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했던 공작원들의 삶을 회고했다.

북파공작원은 남북 대치가 이어지던 시기 군과 정보기관의 지휘 아래 북한에 침투해 적군 생포·사살, 첩보 수집 등 비밀 임무를 수행했던 특수임무 수행자들이다.

6·25전쟁 때부터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까지 북한에 파견된 인원은 1만3000여명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실종 처리된 인원만 7726명에 달한다.

특수임무수행자유족동지회 북파공작원 선열영위. [연합]


하 회장은 “국가 기관에서 평생 일하고, 먹고 살게 해주겠다며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정부가 주로 포섭했다”면서 정작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가족에게 통보조차 되지 않은 채 외부와 격리된 훈련소로 끌려간 이들은 ‘살인 무기’가 되기 위한 극단적 훈련을 받았다.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 훈련은 기본이었다.

북한에서 발각되면 고문을 이겨내도록 훈련한다는 명분 아래 해머로 가슴을 내려찍는 등 상상 이상의 구타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평생 장애를 안게 된 부대원들도 있었다.

하 회장은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훈련을 했다”며 “감시 요원들은 가족이 죽었다는 걸 알아도 안 알려줬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비정규군으로 후방 유격활동과 첩보활동의 특수임무를 수행한 미군 산하 8240부대(주한첩보연락처, 일명 켈로부대)들이 중공군 복장을 하고 북한으로 침투하기 직전 모습. [국가기록원]


사회로 돌아온 뒤에도 공작원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정신·육체적으로 피폐해져 돌아왔으나 가족의 원망을 듣는 공작원들도 상당수였다.

3년간 못 봤던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뛰쳐나오던 모친이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난 한 북파 공작원의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하 회장은 “목숨을 내놓고 일했지만, 국가는 공작원들을 버렸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존재는 2002년 법원이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2004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이 마련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러나 생존자와 유족은 충분한 명예 회복이나 보상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특수임무유공자들은 참전유공자나 다른 국가유공자가 받는 정기적인 수당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의료지원이나 보훈병원 감면 등 현물 위주의 복지 혜택에 그치는 실정이다.

하 회장은 “북파공작원처럼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 독립유공자 수준으로 예우받기를 바란다”며 “국가가 이들의 공과 희생, 피해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고 그에 걸맞은 예우와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