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극복하는 이해의 힘…‘나의 부치 엄마’[북적book적]

타이완 작가 황후이전 에세이
비밀을 깨고 화해하는 여성 서사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나는 게이비(Gayby)입니다. 게이비는 성 소수자가 출산해서 양육한 아이 또는 그들이 입양한 아이를 뜻합니다. 영어권에서 유래한 이 사랑스러운 낱말로 퀴어 가족이 한낱 사회적 이슈가 아닌, 사실은 무척 창조적이며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공동체로 느껴지길 바랍니다. 게이비라는 단어는 내게 있어 신분을 규정하는 라벨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가정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비록 세상의 어떤 곳에서는 여전히 이 사실에 대해 수긍하길 두려워하지만 말입니다.”

타이완 작가 황후이전은 최근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나의 부치 엄마’ 서문에서 자신을 ‘게이비’로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부치(Butch) 엄마’, 즉 여자를 좋아하는 엄마라고 부른다.

저자는 일곱 살 때 엄마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어린 그에게 더 큰 충격은 아버지의 성폭력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와 공포 속에도 어린 시절의 그는 비밀을 언급하지 않고 무덤까지 안고 가는 것이 가족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상처는 저절로 낫지 않았다. 비밀은 작가가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버지에 대한 혐오뿐 아니라, 묻지 않은 엄마에 대해서도 원망이 생겼다.

이 책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테디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나프어워드, 타이베이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등을 수상한 작가의 다큐멘터리 영화 ‘일상 대화’의 이십 년간 기록을 에세이로 담은 작품이다.

작가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당신 이야기와 가족에 대한 것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을 때, 엄마의 첫 반응은 “누가 우리 가족 이야기를 보러 오겠니?”였다. 스스로도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삶의 곡절은 철저히 숨겨서 다른 사람들이 거북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자신의 이야기는 하소연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성장한 그는 자신과 엄마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고, 자신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임을 알게 된다. 오히려 상처를 감춰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라는 가치관을 구축해 온 사회야말로 부끄러운 것이라고 지적한다.

작가는 “레즈비언의 아이로서 때로는 고통을 경험했지만, 그 고통은 엄마가 동성애자라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차별 대우 때문”이라고 밝힌다. 나아가 “나는 퀴어 가정의 일원이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삶은 더 넓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며 자신의 운명을 긍정한다.

실제로 그를 키우고 지탱한 것은 부재했던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와 다른 여자들이었다. 작가는 서로 연대하며 살아 남은 여성들의 서사를 그리며 “나는 이 여자들에게 감사한다. 그녀들을 알아 가는 여정 중에, 나 자신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책은 레즈비언 엄마를 둔 딸의 시선에서 출발해 사랑과 미움,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서로 얽혀 있는 엄마와의 관계를 더듬어 간다. 자신을 옥죄던 껍질을 깨고, 비로소 엄마라는 한 인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은 비단 성소수자의 가족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화해를 보여준다.

‘정상 가족’이라는 케케묵은 신화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상대방의 평안을 기원할 줄 아는 성숙한 모습이 아닐까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나의 부치 엄마/황후이전 지음·방철환 옮김/움직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