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의 제주 집들이
“개인의 불행 전시 아닌 삶의 기록…
장르 너머 하나의 ‘장면’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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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 [세종문화회관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드르륵.
여닫이문이 열리자, 여유가 집 앞 마당으로 나온다. 삽을 들어 흙을 고르는 모습을 새침한 고양이 한 마리가 가만가만 지켜본다. “고양이 집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설빈의 웃음이 제주의 파란 대문, 파란 지붕에 포개진다.
“좁고 작은 그 방의 문이 열리면, 꼭꼭 숨겨라 보일라, 보물찾기 하자.” (‘숨바꼭질’ 중)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은 8년간 이집에 살며, 세 장의 앨범을 냈다. 기타 하나에 얹어진 부부의 음성은 깊은 밤 적어 내려간 일상의 고백이다.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하루의 끝에 알알이 맺혀있는 이야기들이 가만히 흘러간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가까스로 막차에 몸을 싣는 사람, 마음이 무거워 집으로도 향하지 못한 채 술 한 잔으로 하루를 내려놓는 사람, 그럼에도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을 견디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용히 적힌다.
“저흰 소설은 못 쓰고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에요.” (여유)
여유와 설빈의 음악엔 제주와 제주의 오래된 집과, 그곳에서 보낸 사계절과, 부부의 대화가 스며있다. 살아왔고, 살아낸 시간을 적은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두 사람과 술 한잔하고 싶다”는 댓글을 남긴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상과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은 여유와 설빈의 음악과 삶을 조명한 EBS 다큐멘터리 ‘스페이스 공감’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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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 [세종문화회관 제공] |
낮은 지붕과 100년쯤 된 돌담, 그 너머로 일렁이는 바다, 파도 같은 소리를 내는 바람에 둘러싸인 여유와 설빈의 제주 집이 세종문화회관 안으로 들어온다. ‘싱크넥스트26’(7월 17~19일, S씨어터)을 통해서다. 잠시 제주를 떠나 육지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무수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써낸 그곳에 관객을 초대한다. 여유와 설빈의 첫 세종문화회관 입성기이자 이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의 ‘라이브 버전’이다.
최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부부 듀오는 “제주의 풍경을 공연장으로 가져와 우리 집에 놀러온 것 같은 무대”라고 했다. 객석 1열을 모두 들어내고 빈백 30여개를 놓은 공연장은 부부 듀오의 앞마당이 됐다.
여유와 설빈의 음악에서 ‘제주’는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연고도 없는 제주로 둘은 무작정 향했고, 아내 설빈은 이곳에서 상담교사를 시작했다. 사실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 역시 제주에서 태어났다. 둘의 첫 음반이 2017년, 제주에 살기 시작할 때였다.
앨범은 긴 호흡으로 띄엄띄엄 나왔다. 2년 뒤 2집 ‘노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만’(2019)을 냈고, 4년 뒤 3집 ‘희극’(2023)을 빚어냈다. 한국대중음악상을 사로잡고 EBS ‘스페이스 공감’이 2000년대 이후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하나로 꼽힌 앨범이다. 설빈은 이 앨범을 “제주의 정서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앨범”이라고 귀띔한다.
세 번째 앨범 ‘희극’은 오랜 고민과 망설임 끝에 세상에 나왔다. 여유는 당시를 돌아보며 “1, 2집은 희망이나 꿈을 이야기하는 노래가 많았는데, 이 앨범은 나의 개인적인 불행을 전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과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 놓는다.
작업기간이 오래 걸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4년의 세월을 보냈다. 살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러는 사이 써 내려간 음악엔 삶을 견디는 이야기가 담겼다. 앨범명은 ‘희극’인데, 듀오는 말간 얼굴로 침잠된 정서를 길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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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 [세종문화회관 제공] |
여유와 설빈은 섣부른 위로나 치유라는 단어로 노래를 잇지 않는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끝끝내 ‘살아있음’을 희극이라고 말한다. “비극이라고 앨범명을 정했으면 너무 뻔했을 것 같다”는 여유와 설빈은 “왜 그렇게나 심각해, 불쌍한 인생엔 혁명이 필요해”라며 “오래된 낙서는 코메디라고 하자”(‘코미디’ 중)고 노래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가내수공업처럼 앨범을 만들었다. 그사이 조급한 마음은 내려놨다. 여유는 “2집을 만들 때 정해진 발매 일정에 맞춰 작업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고 했다. ‘희극’을 빚어낼 땐, 마감을 맞추는 것보다 음악에 다. 서울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관성도 버렸다. 제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음반을 완성했다.
설빈은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제주에서 끝내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정말 우리가 마음에 드는 음악을 만들자는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때마침 태풍으로 발이 묶였던 트럼펫 연주자 정보석이 제주에서 무료한 날을 보내던 중 여유와 설빈의 집에 놀러갔다가 3집 앨범에 소리를 보탰다. 이번 공연에서도 정보석이 활동 중인 살래재즈트리오가 함께 무대에 서며 ‘사운드의 확장’을 시도한다. 여유는 “트럼펫이 재즈 악기로 들리기보다 어떤 ‘바람’ 소리처럼 들렸으면 좋겠고, 일렉트릭 기타가 ‘파도 소리’를 연상시켰으면 좋겠다”며 “장르보다는 하나의 ‘장면’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유와 설빈에겐 제주를 빼놓을 수 없지만, 이들은 ‘제주’를 노래하는 포크 듀오는 아니다. 그럼에도 노래엔 제주가 담긴다.
여유는 “음악을 하기 위해 제주에 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게 된 곳이 제주였다”며 “삶에서 나온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주가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슬픔, 아픔, 힘듦을 말하는 대신 여유와 설빈은 제주의 바다와 하늘, 바람과 돌담을 응시한다. ‘생활의 구체성’을 사랑한 시인 백석처럼, ‘상실’을 자연의 풍경에 스미게 한 김소월의 시처럼, 이들의 노래도 삶의 감정을 풍경 속에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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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 [세종문화회관 제공] |
EBS ‘공감’ 팀이 여유와 설빈의 3집 앨범을 듣고 무작정 다큐멘터리 촬영을 제안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당시 제작진은 러브콜을 보낸 뒤, 여유와 설빈이 혹시라도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을까 뒤늦은 걱정도 했다고 한다. 설빈은 당시를 떠올리며 “촬영 전 사는 곳 사진을 보내주니 ‘아,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음악처럼 살고 있구나’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KBS ‘인간극장’에서도 촬영 제안을 받았다. 여유와 설빈 음악이 가진 특별한 끌림이다. 여유는 “우리 음악은 결국 사람이 드러나는 음악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10년간 세 장의 앨범을 거치며 여유와 설빈의 음악도 조금씩 달라졌다. 애초 혼자 음악 활동을 해왔던 여유의 삶에 설빈이 등장하며 음악은 변화가 생겼다. 여유는 “1집에서 설빈은 코러스에 가까웠지만, 2집에선 두 사람의 목소리는 나란히 나왔다”고 했다. ‘희극’은 온전히 두 사람의 목소리가 완전한 균형을 이룬 수작이다.
“3집에선 설빈의 목소리가 없으면 안 되는 음악이 됐어요. 어디서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설빈과 여유’로 바꾸라고요. (웃음)”(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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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 [세종문화회관 제공] |
앨범마다 담긴 이야기도 달라졌다. 듀오의 음악은 여유가 전곡을 만들고 설빈의 자작곡이 하나씩은 반드시 들어간다. 설빈은 “첫 앨범이 나왔을 땐 여유도 지금보다 10년은 어렸고 그래서 당차고 희망적인 에너지가 가득했다면, 시간이 흐르고 때가 묻으며 세상이 마냥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그럼에서도 내 삶에서 나오는 한 가지 빛을 어떻게 응시할 수 있을까, 이런 메시지의 흐름이 많이 느껴진다”고 조곤조곤 말했다. 설빈의 이야기에 여유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부터 내면 깊숙한 곳에 쓸쓸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원래 인간은 다 그런 건지, 저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외로움, 쓸쓸함의 정서가 내재해 있고, 그것들을 투명하고 솔직하게 드러난 앨범이 ‘희극’이었어요.” (여유)
다음 앨범은 또 더디다. 대학원 4학기에 접어든 설빈이 논문 작업을 마치는 내년 초, 두 사람은 다시 제주로 돌아간다. 서로에게 “4집은 금기어”라고 하면서도, 설빈은 “요즘 여유의 음악은 이전보다는 희망을 더 이야기한다”고 귀띔한다.
‘자기 이야기’를 노래하는 여유와 설빈의 음악은 누구나의 삶을 닮았다. 그들이 적어내려간 하루에서 애써 드러내지 않은 나의 쓸쓸함을 마주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을 들려준다. 어느 고단한 날 닿고 싶었던 살아있다는 감각을 여유와 설빈의 음악에서 찾게 된다.
여유는 “결국 포크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여유의 이야기에 설빈이 말을 보탠다.
“저희는 저희 이야기를 꺼내놓지만, 듣는 분들은 이 노래들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늘 이 노래를 들을 때, 내가 지나온 어떤 일이나 내 삶의 장면이 문득 생각난다면 좋겠어요.” (설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