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연기도 관세로 갚아라”…트럼프, ‘외교 갈등’ 캐나다 압박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 주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물에 반사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캐나다에서 번진 산불 연기가 국경을 넘어 미국 하늘을 뒤덮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도 관세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대기질 악화의 책임을 캐나다 정부에 물으며, 그 대가를 기존 관세에 얹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간)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캐나다가 산림과 수풀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미국이 더럽고 해로운 공기를 마시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의 공기질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위험한 수준이라며, 이날 중 캐나다 총리와 통화해 해결책을 따져 묻겠다고 예고했다.

배경에는 캐나다 전역을 휩쓴 800여 건의 산불이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이 연기가 국경을 넘어오면서 디트로이트, 시카고, 워싱턴 D.C.는 순식간에 세계 최악의 대기오염 도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국회의사당조차 뿌연 연기에 가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지경이었다고 WP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캐나다를 향해 ‘고의에 가까운 직무 태만’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산림 관리와 잔해 제거를 방치한 결과가 뻔히 보였는데도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일이 이제 해마다 되풀이되면서 미국에 수십억 달러의 피해를 안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전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한 연기가 미국 워싱턴DC를 뒤덮은 모습 [AFP]


이번 발언을 단순한 환경 이슈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캐나다 관계는 이미 여러 차례 파열음을 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지난 5월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를 앞에 두고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또다시 꺼냈다. 한 나라 정상이 다른 주권국 앞에서 편입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례적 장면에, 카니 총리는 부동산 비유를 들어 캐나다는 팔려고 내놓은 곳이 아니라고 맞받아쳤다.

관세를 둘러싼 충돌도 누적돼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펜타닐 밀반입과 국경 안보를 이유로 캐나다산 제품 대부분에 25% 관세를, 에너지 제품에는 10%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이 여파로 캐나다 내에서는 트뤼도 전 총리가 “이 관세로는 캐나다가 무너진다”고 반발하기도 했고, 결국 정치적 위기 속에 물러난 트뤼도의 후임으로 카니 총리가 들어섰다.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총리를 ‘주지사’라 부르며 격을 낮추는 언사를 반복하는 등 감정적 앙금도 쌓여왔다.

최근에는 카니 총리가 8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관계 개선에 나서자,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가 중국과 통상 합의를 맺을 경우 100% 관세를 물리겠다고 경고하며 갈등이 다시 격화하기도 했다. 이런 연쇄적 압박 속에 캐나다 내부에서는 석유 산업 중심지인 앨버타주가 분리 독립 주민투표 절차에 착수하는 등, 관세 전쟁의 후폭풍이 캐나다 국내 정치에까지 번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산불 연기 발언 역시 그 자체로 독립된 이슈라기보다는 취임 이후 꾸준히 이어져 온 대(對)캐나다 압박 기조의 연장선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해법으로 제시한 카드 역시 예외 없이 관세였다. 그는 오염으로 인한 비용을 캐나다가 현재 부담 중인 관세에 얹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부과 방식이나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관세를 지렛대 삼아 상대국을 압박하는 방식은 취임 이후 그가 반복해서 써온 전형적인 협상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