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에 익숙해졌는데 이젠 오히려 급락 걱정?…원화 급강세 땐 수출·성장 ‘역풍’ 오나

환율, 1500원 밑에서 하향 추세
신현송 “환율 여전히 높은 수준”
SK하이닉스 ADR 등 하락요인↑
하향 쏠림 올수도…수출 등 타격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1500원대에서 고공행진하던 환율이 차츰 떨어지며 한국 경제가 ‘고환율’의 긴 터널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모양새다. 원화 가치를 끌어올릴 요인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환율이 앞으로 급속도로 떨어져 수출이나 경제 성장 등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외환당국이 이제는 반대로 환율 하락 쏠림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최근 하락 폭을 키우고 있다. 16일 기준 장중 저가는 1477.1원으로 5월 12일(1474.8원) 이후 약 두 달 만에 가장 낮았다. 장중 저가는 8일(1498.1원) 27거래일 만에 1500원 밑으로 떨어진 뒤 계속 하락 추세다.

외환당국 한 관계자는 “중동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역외의 국내주식 환헤지 축소 목적 달러 매도와 SK하이닉스 ADR(주식예탁증서) 자금의 외환시장 유입 기대 등이 겹치며 하락 폭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기초여건) 등을 고려하면 여전히 원/달러 환율 수준이 높다는 것이 당국 안팎의 입장이다. 신현송 한은 총재도 16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이 몇 주 전보다는 약간 안정되는 모습이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은 원·달러 환율의 하단을 지지하는 요인이다. 이란 전쟁 이후 미국의 물가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긴축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미국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하면서도 점도표상 연말 금리 예측치 중간값을 3.4%에서 3.8%로 높였다. 연말까지 최소 한 차례 인상이 FOMC의 지배적인 전망인 셈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환율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시카고상업거래소의 기준금리 예측 도구인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연말까지 FOMC가 기준금리를 최소 한번 올릴 것이라는 전망은 70.9%에 달했다. 예상보다 낮은 CPI(소비자물가지수)에 하루 전(78.5%)보다는 7.6%포인트 떨어졌지만, 한 달 전(57.1%)보다는 여전히 13.8%포인트 높았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향후 환율 하락을 이끌 요인들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상수지다. 5월 경상수지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386억1000만달러로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5월 누적 흑자는 지난해 연간 규모를 넘어섰다. 6월 수출도 사상 처음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채권 자금도 WGBI(세계국채지수) 편입 등에 순유입세를 이어가고 있다. 6월 채권자금 순유입액은 16억5000만달러로 4월부터 3개월 연속 순유입됐다. 상반기 누적 순유입 규모는 92억8000만달러에 달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국내 투자와 세금 납부용 환전 수요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최근 SK하이닉스가 미국 ADR 발행을 통해 조달한 265억달러도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현물환 시장에 대규모로 달러가 풀릴 전망이다.국민연금의 환헤지 비율 확대 등도 원화 수요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원화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강세를 보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환율은 방향이 한쪽으로 정해지면 쏠림이 증폭되는 특성이 있다. 그간 이란 전쟁과 외국인 주식 순매도 등이 원화 강세 요인들을 억눌렀던 상황에서 환율이 본격적으로 하락하면서 기대 심리도 커질 경우 가파르게 하락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환율 하락은 인플레이션 압력이나 수입업체 등에는 호재다. 반대로 수출업체들은 직격탄을 맞는다. 같은 물량을 팔아도 원화로 환산한 수출 대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곧 경제 성장 경로에도 영향을 끼친다. 특히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구조라 수출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현재도 한국 경제는 반도체를 앞세운 수출이 먹여 살리고 있다. 급격한 원화 강세로 경상수지 흑자에 제동이 걸리면 기업 투자와 고용 감소로 이어지며 성장 전반을 짓누를 수 있다.

이와 같은 환율 하락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경우 지나친 원화 강세를 억누르기 위해 당국이 개입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동안 환율 상승 쏠림을 막기 위해 당국이 현물환 시장에 달러를 풀었다면, 앞으로는 반대로 환율의 급격한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당국 한 관계자는 “최근 환율 상승세와 비교하면 지금 떨어지는 것은 가파르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원화 강세 요인들이 많이 쌓여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