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미국에 멱살 잡혔나… ADR, 단종L・ETF & 피드백 루프 [홍길용의 화식열전](905회)

SK하이닉스의 ADR은 시장에서 대체로 호재로 여겨졌다. 미국에서 달러를 자본으로 조달하고, 한국보다 높은 가치도 인정받으면 본주에도 긍정적일 테니 꿩 먹고 알 먹는 모양새가 될 것이란 해석이 많았다.

그런데 SK하이닉스 본주는 ADR보다 할인되기 쉬운 구조다. 또 ADR은 신주 발행인데 지난 1월엔 주주 가치 높이겠다며 자사주를 소각했다. 이번에는 대규모 자본조달 효과를 거뒀지만, 앞으로 ADR을 추가 발행하려면 SK스퀘어가 지분을 더 사거나 SK하이닉스가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통해 지주회사 규제상 지분율을 관리해야 한다. 특히 SK하이닉스 ADR이 단일종목 레버리지ETF(단종L・ETF)라는 ‘괴물’을 만나면서 한국 증시는 미국 투자자들에게 멱살까지 잡히게 됐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인데, 그림자가 꽤 짙다.

*챗GPT의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 입니다.


ADR로 형성된 한미 ‘피드백 루프’

ADR과 본주는 반(半) 태환 구조다. SK하이닉스 ADR은 본주로 전환할 수 있지만, 본주의 ADR 전환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사실상 전환이 어렵다. ADR 값이 본주보다 비쌀 때 본주를 사서 ADR로 전환하는 차익거래가 현실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차익 해소 메커니즘이 없어서 ADR은 본주 대비 높은 가치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구조의 TSMC도 ADR이 대만 본주 대비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ADR과 본주의 가격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ADR로 인해 SK하이닉스는 서울의 가격이 뉴욕에서 다시 평가되고, 그 결과가 다음 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이른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다.

피드백 루프는 헤지펀드의 전설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재귀성 이론(Theory of Reflexivity)’으로 거품(bubble)을 설명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시장 참여자의 인식과 시장의 실제 펀더멘털이 서로 피드백(feedback)을 주고받으며 변동성을 높인다는 이론이다. 기대가 가격을 높이고, 높아진 가격이 다시 기대를 키우는 구조다.

변동성 증폭1, 양국 모두 단종L・ETF가

피드백 루프를 더 강화하는 장치가 단종L・ETF다. 한국은 지난 5월 27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단종L・ETF 16종과 단종L・ETN 2종이 동시에 상장했다. 미국은 ADR 상장 나흘 만인 7월 14일부터 그란이트셰어스(SKUU·SKDD), 프로셰어스(SKHU)가 2배 상품을 내놨고, 15일에는 디렉시온(SKHL)이 가세했다. 미국에서 확대된 가격 변동성이 ADR을 통해 한국 본주에 전달되고, 국내 단종L·ETF의 리밸런싱이 이를 다시 증폭시키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TSMC도 미국 ADR에 단종L・ETF가 있지만 대만 본주에 대한 레버리지 투자는 선물·옵션으로만 가능하다.

변동성 증폭2, 큰 시장인데…ADR 유동성 부족

유동성도 변수다. 전체 발행주식수 대비 ADR 발행 비중은 TSMC가 20%, SK하이닉스가 2.5%다. 발행 주식이 많지 않으면 적은 거래에도 가격이 크게 움직일 수 있다. 미국 증시는 한국보다 유동성 규모가 훨씬 크다. 미국의 풍부한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얇은 ADR 시장으로 몰리면 가격 변동폭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레버리지는 현물 주식 외에도 선물과 옵션을 통해 조성할 수 있다. 미국은 옵션 거래 형태가 다양하다. 단일종목 옵션은 보편적이고, 만기가 하루인 상품도 있다. 미국 단종L・ETF는 대부분 ADR을 직접 사지 않는다. 총수익맞교환(TRS, total return swap)과 옵션을 활용한다. 운용사가 ADR을 직접 사지 않더라도 TRS 제공 증권사와 옵션 시장조성자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ADR이나 관련 파생상품을 거래한다. 델타(Δ)·감마(γ) 헤지(hedge)까지 겹치면 ETF에 실제로 들어온 자금보다 훨씬 큰 규모의 거래가 기초자산과 주변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는 14일부터 SK하이닉스 ADR 옵션 거래가 시작됐다.

변동성 증폭3, 괴리 키워야 돈 버는 헤지펀드

또 다른 변수는 헤지펀드들이다. 공모 시점 ADR 프리미엄은 3% 남짓이었다. 상장 첫날 16%로 벌어졌고, 13일에는 23.7%, 14일에는 51%를 넘어서기도 했다. 15일에는 다시 20%대로 낮아졌지만 16일에는 41.8%로 다시 확대(환율은 각 시점 서울환시 종가 적용)됐다. 가격 괴리와 변동성이 커질수록 이를 이용한 상대가치 거래(relative value trading)의 기회도 함께 늘어난다. 롱숏(long-short), 페어트레이딩(pair trading) 등 가격의 절대 방향보다 두 자산 사이의 괴리를 노리는 헤지펀드 전략이 잘 통하는 환경이다.

실제로 UBS는 ADR 상장 전 ‘SK하이닉스 국내 본주를 팔고(short) ADR을 사라(long)’는 전략을 권했다. 그리고 실제 공매도 선행지표인 대차잔액은 6월 23일부터 7월 8일까지 31.4% 급증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11.7%였다. 외국인들이 본주 대비 ADR 프리미엄을 예상하고, 비싼 ADR을 사고 싼 본주를 공매도하는 자리를 미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거래는 가격 괴리가 곧 수익률이다. 괴리를 줄이기보다 더 늘리는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단종L・ETF는 장 막판에 기초자산 가격과의 배율을 맞추기 위한 리밸런싱(rebalancing)이 집중된다. 기초자산 가격 흐름을 보면 리밸런싱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선취매・선매도(anticipatory trading)와 고빈도매매(HFT)를 자극해 기초자산의 변동성을 다시 높일 수 있다.

한국, ADR로 시총 2위 종목 멱살 미국에 내준 꼴

SK하이닉스는 코스피 시가총액 2위 종목이어서 주가 변동은 지수는 물론 ETF, 파생상품 등에까지 영향이 크다. 단종L・ETF는 개별 종목의 변동성을 시장 전체의 변동성으로 확대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다. 특히 단종L・ETF 상장 직전인 5월 26일 51.06%였던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은 7월 10일 55.17%로 올랐다. 두 종목의 거래대금 비중은 30% 안팎에서 44%까지 높아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움직이면 이는 관련 ETF의 리밸런싱으로 이어져 다른 종목들의 주가에도 영향이 닿게 된다.

SK하이닉스는 ADR 추가 발행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TSMC도 1996년 ADR을 처음 상장할 때는 발행 주식수의 2.9%로 시작했다. 이후 차차 발행을 늘려 현재의 20%가 됐다. ADR 발행이 늘수록 한국 증시의 멱살을 잡은 미국 투자자들의 힘은 더 커진다. 미국 증시가 훨씬 규모가 커 SK하이닉스가 ADR 발행을 늘려도 한국 투자자들의 뉴욕 증시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ADR 자본조달 효과 제한하는 SK그룹 지배구조

SK하이닉스의 지배구조로는 ADR로 새로 자본을 조달하는 효과도 애매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월 자기주식 1530만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ADR로 발행한 주식은 그보다 더 많은 1779만주다. 증자로 약 265억 달러(환율 1500원 기준 약 40조원)를 조달했지만 여기까지다. 추가로 ADR을 발행하면 현재 꼭 20%인 SK스퀘어의 SK하이닉스 지분율이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지주사 자회사 최소 보유율(20%)을 밑돌게 된다. 지분율을 20% 이상으로 유지하려면 SK스퀘어가 지분을 더 사든지, SK하이닉스가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해야 한다. ADR로 자본을 조달해도 그룹차원에서 상당한 비용을 지분율 관리에 투입해야 하는 구조다.

보완책 나왔지만 부족...근본적 해결방안 마련해야

금융위원회는 지난 16일 단종L・ETF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중심은 예탁금과 거래 단위를 높이고 교육·판촉 규제를 강화해 개인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데 맞춰졌다. 그나마도 기존 보유분에는 소급되지 않고, 초단타 회전은 그대로 가능하다. 증권사·운용사의 괴리율 관리 책임은 높였지만 변동성의 주범으로 꼽히는 종가 리밸런싱 메커니즘은 업계의 자율규제 숙제로 넘겼다.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문제의 본질은 본주와 ADR 사이의 차익거래 통로가 좁은 상태에서 양국의 레버리지 ETF와 옵션, 헤지펀드 거래가 동시에 붙었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 주식을 뉴욕에 상장한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증시의 가격결정권 일부까지 뉴욕에 넘긴 모양새다.

“성인도 천 번을 생각하면 하나는 실수하기 마련이며,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을 생각하면 한 번은 올바른 결론을 얻는다”(聖人千慮, 必有一失; 愚人千慮, 必有一得) - 안자춘추(晏子春秋)

제나라 경공(景公)이 재상 안영(晏嬰)의 가난한 살림을 보고 큰 재물을 내린다. 안영이 이를 거절하자 경공은 과거 환공(桓公)이 재상인 관중(管仲)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준 사례를 들었다. 이때 안영이 한 말이다. 관중이 현명했지만 재상이 부를 축적한 것은 실수이고, 자신은 어리석지만 관중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ADR도 단종L・ETF도 부작용과 문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성인의 작품으로는 보기 어렵다. 공자(孔子)의 존경을 받았던 안영도 스스로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낮췄다. 정부와 시장 관계자들이 안영의 마음으로 천 번을 숙고해 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