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균 한 달 침수 잔혹사’...반구천 암각화 보존에 다부처 협력 시동

세계유산 등재 1주년, 반구천 암각화
연평균 33일 침수…여전한 ‘물의 위협’
수십 년 이어진 침수로 풍화 위험 단계
수위 53m 넘으면 침수…구조적 한계
809억 투입해 사연댐 수문 설치 추진
주민 식수 절반 감소되는 갈등은 과제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한국관광공사 제공]


[헤럴드경제(울산)=김명상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맞은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 보존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 수자원공사의 다부처 협력 모델이 가동된다. 암각화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 사연댐 수위 53m를 상시 제어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문화유산 침수 방지와 시민의 식수원 확보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난제로 꼽혔다.

17일 울산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 포럼’ 행사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과 울산광역시는 17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반구천의 암각화 현장답사 및 브리핑’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오는 19일부터 29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과 연계해 기획됐다. 행사에는 허민 국가유산청장, 김상욱 울산광역시장을 비롯해 세계유산 보존·관리를 담당하는 국내외 현장관리자와 국제기구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김명상 기자]


대곡천 일대의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포함하는 약 3㎞ 길이의 ‘반구천의 암각화’는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후 9세기까지 여러 시대 사람들이 남긴 암각화가 한곳에 모여 있는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 [국가유산청 제공]


특히 배를 타고 작살과 부구를 이용해 고래를 사냥하고 해체하는 전 과정을 단계별로 상세히 묘사한 장면이 담겨 있는 등 전 세계 바위예술 중에서도 독창적인 걸작으로 꼽힌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뛰어난 예술성과 해양문화를 보여주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인정받아 지난해 7월 1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답사 중인 제8회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 참가자들 [김명상 기자]


세계유산 등재 효과로 관람객 수는 급증했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인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간 울산암각화박물관 방문객 수는 11만 7372명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7만 5428명) 대비 55.6% 늘었다.

하지만 반구천의 암각화는 하류에 위치한 사연댐의 구조적 한계로 수십 년간 침수 피해를 겪어왔다. 암각화는 해발 53~57m 구간에 위치한 반면, 1965년 준공된 사연댐은 수문이 없어 만수위가 해발 60m에 달한다. 댐 수위가 53m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암각화 하단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 구조다.

절벽을 배경으로 구불구불한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반구천 전경 [울산광역시청 제공]


이 때문에 최근 5년간 연평균 암각화 침수 기간은 33일을 기록했다. 특히 2023년에는 태풍 카눈 등의 영향으로 74일간 물에 잠겼고, 지난해에도 집중호우로 인해 37일간 침수됐다. 적외선 열화상 분석 등에 따른 조사 결과, 암각화는 생성 당시 대비 현재 약 24%의 표면 유실이 발생했으며 풍화 지수가 위험 단계인 5단계 직전에 진입해 암반 구조의 안전성이 위협받고 있다. 수몰 시 빠른 유속과 부유물의 충격으로 하부 공동부 패임이 확대되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1970년 암각화 발견 이후 차수벽 설치, 생태 제방 축조, 가변형 물막이 등 다양한 보존 대책이 논의됐으나 역사문화환경 경관 훼손 우려와 기술적 실패로 모두 부결됐다. 2014년부터 취수탑을 통해 임시로 댐 수위를 낮추고 상류 대곡댐과 연계 운영하면서 과거 연평균 151일에 달했던 침수 일수를 2013~2020년에는 평균 38일로 줄였으나, 매년 한 달 이상 물에 잠기는 근본적인 한계는 극복하지 못했다.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울산암각화박물관 제공]


이에 정부는 암각화 침수를 막을 항구적 대책으로 수문이 없는 사연댐에 대형 수문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총사업비 809억 원을 투입해 사연댐 여수로를 약 17m 굴착한 뒤, 폭 15m, 높이 7.3m 규모의 수문 3개와 취수 시설을 신설할 계획이다.

올해 기본 및 실시설계를 마무리하고 2026년 하반기에 착공해 2030년까지 완공하는 일정이다. 수문이 완공되면 평상시 댐 수위를 암각화 아래인 해발 48m 이하로 유지하고, 집중호우 시에도 수문을 열어 수위를 신속히 조절함으로써 연평균 침수일을 1일 이하로 단축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수문 설치에 따른 갈등 조율과 지역 상생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사연댐 수위를 상시 낮추면 댐 저수 용량이 기존 2500만t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 울산의 생활용수 배분량이 하루 4만 9000t 감소한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사연댐은 울산시민 식수의 약 40~50%를 공급하고 있어 시민들의 식수난과 직결된다.

불가리아의 세계유산인 ‘마다라의 기사상’ [유네스코 제공]


해외에서도 야외 노출 유산의 보존은 난제로 꼽힌다. 이날 반구천 암각화 현장을 직접 방문한 마리엘라 인코바 불가리아 보야나교회 지역관구장은 “불가리아의 세계유산인 ‘마다라의 기사상’도 수직 석회암 절벽에 노출돼 빗물 유입 등에 의한 침식을 겪고 있다”며 “보호각 설치 등 영구 대책을 논의 중이나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에 따른 극한 호우가 빈번해지면서 사연댐의 수문 설치 이후에도 암각화의 침수 우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극심한 기후 변화 앞에 완벽한 대책이 있을 수 없는 만큼 현재 가능한 대안을 총망라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17일 울산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사연댐에 수문을 만들어 수위 조절을 하고 암각화를 유지 보존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며 “세계유산의 지속가능한 보존과 관리는 정부와 지자체,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하고 협력할 때 지켜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시도 범정부 협력을 통해 대체 식수원 확보와 유산 보존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국가유산청과 같이 반구천 암각화 보전에 초점을 맞춘 만큼 대체 수원을 확보하고 유산 보존을 위한 추가 조치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울주 대곡리 반구천의 암각화’ 현장을 찾은 김상욱 울산광역시장(사진 왼쪽)과 허민 국가유산청장 [김명상 기자]


김상욱 울산광역시장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는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을 지키는 것 역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며 “울산의 식수 부족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면 반구대 보존을 위한 추가 조치도 속도를 낼 수 있는 만큼, 중앙정부의 관심과 이웃 지자체들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25년 동안 국가유산청과 울산시의 입장이 충돌해 시민들이 불안해했으나, 현재는 유산청과 같은 입장으로 협력을 맞춰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