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백남준의 상상력, 동시대로 유영하다

20주기 맞아 ‘제1회 백남준미디어아트페스티벌’
‘백남준의 행성’ 주제…전시·퍼포먼스 등
“매년 개최…백남준 작동시킬 것”

백남준 ‘버추얼 비너스로 향하는 우주선’.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위성 안테나가 뻗어 있는 텔레비전(TV)과 밝게 빛나는 네온, 차가운 금속 구조. 다양한 이미지와 문자가 교차하는 작은 우주는 고정되지 않고, 서로 다른 신호를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서거 20주기를 맞아 백남준아트센터가 ‘제1회 백남준미디어아트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백남준의 이름으로 열리는 첫 글로벌 미디어아트 축제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16일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백남준은 동시대와 호흡하는 것을 좋아했다. 경계 없이 넘나들었던 그의 예술 형식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실험하고 도전하는 장을 만들기 위해 페스티벌을 열게 됐다”며 “매해 7월 다른 주제로 개최해 예술가들과 호흡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2월 14일까지 열리는 첫 페스티벌의 주제는 ‘백남준의 행성(Waiting for UFO)’이다. 별-행성-위성-미디어 네트워크로 이어진 백남준의 상상력에서 출발한 주제다. 백남준에게 우주는 인간과 지구 너머의 세계인 동시에,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 문화와 기술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는 열린 공간이었다. 1980년대 위성 예술에 이어 1990년대 나타난 행성 작업은 백남준이 갖고 있던 시간에 대한 개념과 우주의 연결을 확장해 보여준다.

페스티벌의 영문 주제 ‘Waiting for UFO’는 백남준이 1992년 미국 뉴욕 인근 스톰킹아트센터에 설치한 동명의 작품 ‘UFO를 기다리며’에서 가져왔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신호를 향한 기다림을 보여주는 이 작품처럼, 페스티벌은 백남준의 행성을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회로로 제안한다.

백남준 ‘무제’.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페스티벌의 주축은 두 전시 ‘별, 괘卦’와 ‘달들’이다.

먼저 ‘별, 괘卦’는 백남준의 1990년대 행성 작품을 중심으로 우주적 상상력과 동양적 사유, 전자 매체를 통한 세계 인식을 조명한다.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1991년작 ‘버추얼 비너스로 향하는 우주선’은 36대의 TV와 19세기 석조 불두, 네온 등이 결합한 대형 설치 작품으로, 오래된 조각과 미래적 상상, 불교적 이미지와 대중문화적 영상이 하나의 우주선 안에서 만난다. ‘비너스’(1990)와 ‘시리우스’(1990) 역시 인간과 지구 너머의 스케일을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보여준다.

‘역경’(1984), ‘NJP at 1800 RPMs’(1992), ‘로제타석’(1984)에는 ‘주역(周易)’의 괘가 새겨져 있다. ‘TV 부처’(1974/2002), ‘머리를 위한 선’(연도 미상)에서는 선불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발견할 수 있다. 괘가 이어진 선과 끊어진 선의 조합으로 세계의 변화하는 국면을 읽는 기호인 것처럼, 백남준의 작품 속에 보이는 요소들 역시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맥락을 만든다.

두 번째 전시 ‘달들(Moons: The Bright Rainbow Dots)’은 백남준의 행성적 사유를 동시대 작가들의 우주, 기술, 생명에 대한 상상으로 확장한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Moon is the Oldest TV)’(1965/2000)에 나타나는 것처럼 달을 지구 안팎의 복수적 존재로 바라볼 때 생겨나는 질문들을 백남준의 행성적 사유와 연결한다.

백남준이 1992년 제작한 ‘해왕성(Neptune)’은 16대의 TV 모니터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휘감기는 구조로, 작품 속 두 채널의 비디오에선 행성적 이미지가 상영된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해왕성의 강력한 폭풍과 한국의 전통 문양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이어 1993년작인 ‘거북(Turtle)’은166대의 TV 모니터를 거북 형태로 배열한 대작이다. 인류의 오랜 상징으로서 동양과 서양, 신화와 역사를 잇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지연 ‘얼룩무지개숲 7-1’.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동시대 작가들 중 김덕희는 LED 디스플레이 속 픽셀들의 배열을 통해 우주의 풍경을 표현한 ‘사과와 달’과 ‘부분일식’을 선보인다.

우주여행자 언해피는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영상 ‘센타우루스자리 팔의 가장자리에 서서’를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으로 제작했다. 지구인의 은하 횡단 여행기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미래 환경을 그려낸다.

이지연의 커미션 작품 ‘얼룩무지개숲 7-1’, ‘얼룩무지개숲 7-2’는 나노 필름을 주재료로 장소 특정적으로 제작해 온 연작이다. 제각각 다른 패턴의 구조색 필름은 기술과 인간 인지의 불완전성을 포착한다.

전시와 연계한 상영, 퍼포먼스, 강의 프로그램도 펼쳐진다.

스크리닝 프로그램으로는 백남준, 로랑 그라소, 로르 프루보, 류타 아오키, 스카이 호핀카의 작품이 상영되고, 퍼포먼스로는 이천거북놀이보존회와 진행하는 ‘거북놀이’가 추석 연휴 기간인 9월 26일에 열린다.

관객 참여 프로그램으로는 우주여행자 언해피가 공상과학소설(SF)과 관련한 워크숍을, 이지연이 나노 필름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강의 프로그램으로는 천문학자 박창범이 ‘백남준과 행성’이라는 주제로, 국문학자 신범순이 ‘거북렉처’를 주제로 관람객과 만난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번 페스티벌을 준비하며 “우리는 백남준을 기념하지 않는다. 우리는 백남준을 작동시킨다”는 선언을 했다. 백남준의 예술 정신이 동시대와 어우러져 살아 있게 만든다는 목표다.

박 관장은 “향후 더 많은 젊은 예술가들, 글로벌 아티스트들과 협업할 것이다. 페스티벌을 지속 가능한 제도로 정착시키고 싶다”면서 “시각예술 외의 타 장르와 더 많이 결합하고 과학, 기술, 인문학과도 경계 없이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백남준처럼 예술 안에서 실제 삶의 고민을 나누고,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장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