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지원 빠진 ‘한국판 IRA’…현대차 웃고, ‘적자’ 배터리 물음표

생산세액공제 도입엔 업계 환영
직접환급·제3자 양도는 추후 과제로
흑자 완성차는 곧바로 세 부담 감소
적자 배터리는 공제액만 누적될 가능성
中 전방위 지원·저가 공세에 경쟁력 우려
수출 물량·중복지원 인정 여부도 관건


K배터리 3사의 사옥. LG엔솔(왼쪽부터)과 SK온, 삼성SDI [각사 제공]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정부가 국내 생산량에 따라 세금을 깎아주는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도입을 공식화한 가운데 산업계에서는 환영과 아쉬움이 동시에 나온다.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에 집중됐던 세제 지원을 실제 생산 단계까지 넓힌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적자기업도 공제액을 현금화할 수 있는 직접환급이나 제3자 양도 방안이 빠진 것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16일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 따르면 정부는 경제안보와 녹색전환 측면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품목을 국내에서 생산·판매하면 생산량에 따라 법인세와 소득세를 깎아주는 국내생산세액공제를 신설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대상 품목과 공제 단가, 결손기업 지원 방식은 이달 말 발표될 세법개정안에서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전기차가 지원 대상에 포함될 경우 이익을 내면서 국내 생산 기반을 갖춘 현대자동차·기아가 가장 먼저 수혜를 볼 것으로 점친다.

반면 대규모 선행투자와 전기차 캐즘 여파로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배터리 기업은 직접환급 등 별도의 현금화 장치가 마련돼야 실질적인 지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생산세액공제 대상에 배터리가 포함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적자가 이어지는 기업들은 당장 공제받을 법인세가 없어 혜택을 활용하기 어렵다”며 “이익이 나지 않는 동안 공제액만 계속 쌓이는 만큼 직접환급이나 제3자 양도, 보조금 등 실질적인 현금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판 IRA와 미국 AMPC 비교


흑자 현대차는 바로 감세…적자 배터리는 공제액만 쌓여


생산세액공제는 국내에서 생산·판매한 물량에 품목별 단가를 곱해 산출한 금액을 법인세나 소득세에서 빼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국내 생산을 통해 100억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확보했다고 가정하면 납부해야 할 법인세가 150억원인 기업은 실제 세금을 50억원만 내면 된다.

반면 적자로 납부할 법인세가 없는 기업은 같은 100억원의 공제액이 발생하더라도 당장 사용할 수 없다. 미사용 공제액을 향후로 넘기는 이월공제가 허용되더라도 기업이 흑자로 전환할 때까지는 실제 자금 지원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때문에 전기차가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 현대차·기아가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회사는 국내 전기차 생산시설과 판매 기반을 갖춘 데다 완성차 사업에서 이익을 내고 있어 세액공제를 즉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기차가 대상 품목에 포함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생산한 뒤 해외로 수출한 차량까지 공제 대상으로 인정할지도 변수다. 국내 판매 물량만 인정하면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차·기아의 실제 수혜 규모도 제한될 수 있다.

직원이 LG에너지솔루션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 배터리 생산 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자료사진=LG에너지솔루션]


美 AMPC도 세액공제지만 적자기업에 ‘현금 효과’


국내 배터리 업계가 요구해 온 지원은 단순히 별도의 현금 보조금을 신설해 달라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미국 IRA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45X)처럼 생산량에 따라 발생한 세액공제를 적자기업도 현금화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에 가깝다.

미국 AMPC도 법적으로는 보조금이 아닌 세액공제다. 미국에서 배터리 셀과 모듈, 전극활물질, 핵심광물 등 적격 제품을 생산·판매하면 생산량이나 생산비를 기준으로 공제액을 산정한다.

차이는 현금화 장치다. 미국은 기업이 납부할 세금이 없어도 공제액을 현금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선택적 지급’, 이른바 다이렉트 페이를 허용하고 있다. 공제액을 세금을 미리 낸 것으로 간주해 납부할 세금을 초과한 부분을 환급해주는 방식이다.

예컨대 법인세가 0원이지만 AMPC 공제액이 100억원 발생했다면 세액공제에 그치지 않고 100억원을 환급받을 수 있다. 실제 지급은 생산 즉시가 아니라 세금 신고와 심사 절차를 거쳐 이뤄지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량에 비례해 현금이 유입되는 효과가 난다.

공제권을 다른 기업에 팔아 현금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납부할 세금이 없는 배터리 기업이 100억원 규모의 공제권을 법인세를 많이 내는 기업에 할인해 넘기면, 배터리 기업은 즉시 현금을 확보하고 공제권을 산 기업은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이를 제3자 양도 또는 크레딧 거래라고 부른다.

국내 배터리 업계가 요구하는 직접환급제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생산량에 따라 세액공제액을 계산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적자로 납부할 법인세가 없는 기업에는 해당 금액을 현금으로 돌려달라는 것이다.

삼성SDI 전고체 배터리 목업(모형) [삼성SDI 제공]


직접환급은 단계적 검토 전망…수출·크레딧·중복지원 ‘3대 과제’


정부는 우선 국내생산세액공제부터 시행한 뒤 직접환급과 제3자 양도 등 적자기업 지원 방안을 단계적으로 보완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생산실적에 따라 얼마의 공제액이 발생하는지 먼저 확인한 뒤 환급이나 양도제도의 규모를 설계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당장 내년부터 직접환급이나 현금 보조금 방식이 도입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환급은 납부할 세금이 없는 기업에도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인 만큼 기존 법인세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정부 내 신중론이 강한 데다 세수 감소와 재정 부담도 넘어야 할 문턱으로 꼽힌다.

업계는 국내생산세액공제가 산업 현장에서 실효성을 가지려면 우선 적자기업이 쓰지 못한 공제액의 이월 기간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배터리 업계는 이미 R&D와 시설투자 과정에서 발생한 세액공제를 상당 규모 쌓아놓고 있지만, 적자가 이어져 실제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국내 ‘생산·판매량’을 공제 기준으로 제시했지만, 해외로 수출한 제품까지 포함하는지 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국내 공장에서 생산했다면 최종 판매지역과 관계없이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존 투자세액공제와 생산보조금의 중복 적용 여부도 관심사다. 투자와 생산은 각각 공장 건설과 가동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정책 목적이 다른 만큼 일정 부분 중복 적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요구다.

독일 아른슈타트에 위치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의 유럽 본사. [게티이미지]


中은 재정·금융까지 전방위 지원…“세액공제만으론 경쟁 한계”


업계가 직접환급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에는 중국과의 보조금 경쟁도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와 배터리를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재정과 세제, 금융, 인프라, 연구개발, 인재 양성 등을 망라한 지원을 이어왔다.

중국 기업들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중심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이며 전기차뿐만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의 국내 시장 진입도 늘어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해외에서 보조금을 받기 위해 생산시설을 북미 등으로 옮겨야 하는 동시에 국내 시장에서는 중국의 저가 공세를 막아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전방위 지원을 토대로 빠르게 규모를 키운 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넓히고 있다”며 “국내 기업이 자구 노력만으로 이를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생산세액공제가 실제 현금 지원 효과로 이어지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