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팹 완성해도 메모리 공급 부족 여전”

브루스 배트만 옴디아대만 애널리스트
“HBM, 27년까지 사실상 완판 상태”
반도체 시장 ‘성장 속도’의 정점일 뿐
반도체 가격 올라도 생산량 답보 지적
“DC 광풍 이후도 수요 늘어날 것”


옴디아대만의 반도체 분야 수석 애널리스트인 브루스 배트만이 15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메모리 공급 문제는 신규 팹이 건설되고 높은 가동률에 도달할 때까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반도체 겨울을 겪고 과잉공급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끼지만, 앞선 반도체 사이클은 전적으로 ‘윈도우 시대’에 종속됐던 과거 유산입니다. 지금은 차원이 다른 ‘AI(인공지능) 시대’입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신규 반도체 팹 및 패키징 팹 등을 구축하기 위해 3200조원(삼성전자 2030조·SK하이닉스 1100조원)에 육박하는 메가 투자 계획을 내놨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반도체 피크아웃(정점 통과)을 우려하며 일본 반도체가 무너졌던 메모리 치킨 게임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IT 패러다임의 변화를 간과한 기우라고 옴디아대만의 반도체 분야 수석 애널리스트인 브루스 배트만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딱 잘라 말했다. 배트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새 팹을 가동한다고 해도 전체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규모에서 늘어나는 비중은 고작 최대 3% 수준”이라며 “메모리 공급 문제는 신규 팹이 건설되고 높은 가동률에 도달할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옴디아에 따르면 2027년까지 HBM은 사실상 완판된 상태라고 한다.

지금 ‘반도체 피크아웃’처럼 보이는 이유는 웨이퍼 생산량과 매출을 분리해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옴디아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6년까지 반도체 시장의 매출은 160%·단가(ASP)는 90% 급등했지만 웨이퍼 생산량은 고작 33% 증가하는데 그쳤다. 메모리 가격이 상승하면서 반도체 시장의 외형이 커진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옴디아에 따르면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4년 6870억달러(한화 약 1025조원)에서 2026년 1조6000억달러(한화 약 2387조원)로 전년 대비 87.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28년에는 2조1000억달러(한화 약 3133조원)로 성장세가 완만할 것으로 점쳐진다.

배트만 연구원은 “올해 시장은 규모의 정점이 아니라 성장 속도의 정점”이라고 분석했다. 성장률이 둔화한다고 시장이 축소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메모리 3사의 신규팹이 완공·가동될 2028년께부터 늦어도 2030년에는 HBM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장기적으로는 HBM이 대중화되며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슈퍼모멘텀을 좌우할 진짜 병목은 ‘전력’이다. 배트만 연구원은 “미국 주요 데이터센터 사업 가운데 전력과 용수 문제로 지연되거나 취소될 위험이 있는 규모가 9~12기가와트(GW)에 달한다”며 “데이터센터 건설이 중단됐을 때 기업들이 엔비디아 주문을 취소할지, 아니면 제품이라도 받아다 창고에 보관할지가 문제”라고 짚었다. AI 가속기는 공급까지 1년 이상이 걸리고 주문을 위해 20억~60억달러(약 2조9700억~8조9160억원)를 선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정확한 수요’다. 메모리 3사가 최근 컨퍼런스 콜 등에서 ‘LTA(장기공급)’를 언급하는 이유도 LTA를 맺으면 중장기적인 빅테크 수요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존이나 메타 등 빅테크는 자금력도 막강해 다들 ‘큰 손’이라 말하면서 100% 현금 선결제 조건도 기꺼이 수용하고 있다”면서도 “TSMC나 삼성 파운드리 경영진이 사석에서 가장 집요하게 던지는 단골 질문은 ‘도대체 빅테크 고객사 중 누가 진짜 패를 쥐고 있고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 광풍이 꺾이더라도 반도체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배트만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광풍이 한풀 꺾이더라도 모바일 기기, 저가형 미니 PC, 혹은 가정용 스마트 가전의 온디바이스 에이전트단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새로운 하이브리드 인프라 생태계를 이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윈도우’의 시대를 넘어 ‘에이전틱 OS(운영체제)’ 시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차세대 PC용 AI 슈퍼칩인 RTX 스파크를 발표한 것도 데이터센터 다음의 시대를 예측한 행보라는 설명이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