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카르노 초청 박세영, SF ‘지느러미’
세기말 연출·미장센 한창록 ‘충충충’
어른의 잔혹동화 유은정 ‘그림자 아이’
8년의 가족 복수극 김미조 ‘경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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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부터 ‘지느러미’ 박세영 감독‘, ‘충충충’ 한창록 감독, ‘그림자 아이’ 유은정 감독, ‘경주기행’ 김미조 감독 |
데뷔작부터 심상치 않았던 충무로의 신인들이 어엿한 ‘신예’의 얼굴로 관객 앞에 돌아왔다. ‘지느러미’의 박세영 감독, ‘그림자 아이’의 유은정 감독, ‘경주기행’의 김미조 감독, 그리고 첫 장편만으로 신인에서 ‘신예’로 단번에 발돋움한 ‘충충충’의 한창록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각자의 색깔을 거침없이 발산하는 이들의 신작은 과감해서 낯설고, 때론 불편하지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메시지를 가득 눌러 담았다. ‘개봉작 기근’에 빠진 극장가에 이들이 불어넣는 다채로움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호프’와 ‘스파이더맨’, ‘오디세이’ 그 사이에 저희가 있습니다. 시간이 날 때, 저희도 떠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박세영 감독) 할리우드 대작들의 공세에 홀로 맞서야 하는 유일한 한국 영화이자 기대작인 ‘호프’의 여름이, 왠지 마냥 외롭지만은 않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충’격과 파격…진격의 90년생이 온다
올 여름, 신작을 들고 나타난 두 명의 90년대생 감독이 있다. 1996년생 박세영 감독과 1990년생 한창록 감독이다. 두 번째 장편으로 신인의 꼬리표를 벗어던진 박 감독과, 데뷔와 동시에 화제성을 집어삼킨 한 감독은 각자의 속도로, 하지만 ‘충무로의 미래’라는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첫 장편 ‘다섯 번째 흉추’(2022)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3관왕과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괴물 신인’의 등장을 알렸던 박세영 감독은, 오는 22일 신작 ‘지느러미’로 극장가를 찾는다.
로카르노영화제 단편 경쟁부문 심사위원 특별언급을 받은 ‘괴인의 정체’를 비롯해 ‘땅거미’, ‘기지국’ 등으로 자신만의 개성 있는 미장센과 연출을 선보여 온 그는, 올 초 CGV에서 단독 개봉한 우즈(WOOZ) 주연의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로도 관객들과 만난 바 있다.
박 감독은 신작 ‘지느러미’에서도 지금까지 추구해 온 장르적 감각을 그대로 녹여내며 차세대 시네아티스트(Cine-Artist)로서 면모를 과감히 내보인다. 유전적 돌연변이 ‘오메가’와 인간이 공존하는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을 그린 SF(Science Fiction)다.
영화는 인간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핍박받고 차별받는 ‘오메가’와, 이유도 잊은 채 그들을 향한 맹목적인 증오만을 반복하는 인간의 대비를 통해 차별이라는 폭력이 만연한 현시대의 단면을 비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색감과 빛을 과감하게 사용한 미장센, 폐허가 된 세상의 황량함 속에서도 피어나는 향수(鄕愁)의 질감이 독특하면서도 신비롭게 다가온다.
영화의 제작은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시작돼, 팬데믹이 끝나갈 무렵 마무리됐다. ‘지느러미’에는 그 시기 감독이 마주했던 날 선 시선과 불편한 감정, 우울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 감독은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들이 어떤 시선으로 차별을 받고, 프로파간다나 정부에 의해 어떻게 변형되는지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더 스퀘어’, ‘슬픔의 삼각형’ 등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제작한 프로듀서 필립 보베르가 참여하며 글로벌 프로젝트로 확장된 이 영화는, 해외 시장이 먼저 알아본 기대작이다. 제78회 로카르노영화제 신인 감독 경쟁부문 ‘오늘의 영화감독’ 섹션에 공식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고, 지난 8일 프랑스 선개봉을 시작으로 북미와 유럽, 아시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등 해외 개봉도 확정한 상태다.
지난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어워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기대작으로 떠오른 한창록 감독의 ‘충충충’은 지난 6월 개봉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작품이자,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단편 ‘구경’(2024)으로 로테르담영화제, 루블린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등 국내외 다양한 영화제에 초청되며 이름을 알린 한 감독은, 제목 그대로 ‘충동과 충돌, 충격’을 한데 휘감은 ‘충충충’으로 국내외 평단과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는 2018년 미국 워싱턴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전학생이 오며 소녀의 삶이 망가지고 소년이 복수를 결심한다는 설정을 그대로 옮겨왔다. 단짝 친구이자 짝사랑하는 ‘지숙’(백지혜 분)을 지키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 믿는 ‘용기’(주민형 분)를 주인공으로, 꽃미남 전학생 ‘우주’(정수현 분)에게 집착하는 ‘지숙’, 이들의 친구 ‘덤보’(신준항 분)의 이야기를 통해 기댈 곳 없이 방황하는 청춘들의 혼란을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세기말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연출과 미장센은, 폭주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한 채 깨지고 망가진 10대들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그 안에는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 외모 강박 등 오늘날 청춘들의 고민과 아픔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모든 면에서 파격의 연속이지만 그 방식은 의외로 직설적이며, 다채로움 속에는 쉽게 해소되지 않는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가 날카롭게 녹아 있다. 한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세상이 팍팍하고 디스토피아 같다고 느꼈다”면서 “밀레니엄이 되면 세상이 망할 것 같다고 믿었던 시절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구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상실과 연대…잔혹 동화이거나 복수극이거나
지난 1일 개봉한 ‘그림자 아이’는 ‘장화, 홍련’(2003)을 떠올리게 하는 미스터리 영화다. 죽은 첫째와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녀가 모녀 앞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비밀을 감추고 있는 대저택과 ‘도플갱어’라는 초자연적 존재 등의 판타지적 소재를, 자매와 사랑, 상실의 아픔이란 감정과 엮어내며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의 감성을 발산한다.
영화를 쓰고 연출한 유은정 감독은 지난 2012년 단편 ‘낮과 밤’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단편 부문 최우수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고, 2019년 ‘밤의 문이 열린다’로 장편 데뷔해 부천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번 ‘그림자 아이’에서도 그는 ‘그림자 세계’라는 동화적 상상력을 녹여내며, 데뷔작에서부터 눈도장을 찍었던 몽환적이고 미스터리한 색채의 작품을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유 감독은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면, 그 상실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질문에서 시작했다”며 “떠나보낸 사람과 꼭 닮은 존재를 만나면 상실이 채워질지 하는 생각까지 나아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화와 민담, 전래동화를 좋아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현실에서 구현할 때 판타지의 느낌이 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성폭행 피해를 겪은 중년 여성이 세상에 맞서 나아가는 여정을 담담하고도 묵직하게 담아낸 장편 데뷔작 ‘갈매기’(2021)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을 수상했던 김미조 감독은, 다음 달 ‘경주기행’으로 돌아온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잃은 뒤, 8년의 기다림 끝에 복수의 여정에 나서는 엄마와 세 딸의 가족 복수극이다.
영화는 지난해 10월 제45회 하와이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고, 이어 올해 3월에는 제24회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 한국 고유의 정서가 짙게 밴 경주를 배경으로, 이정은과 공효진, 박소담과 이연 등 배우들의 호연과 김미조 감독의 탄탄하면서도 섬세한 연출력이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다. ‘경주기행’은 다음 달 26일 개봉한다.
손미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