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만 하는 학생선수들…‘운동 이후’가 없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취지…‘E스쿨’ 도입
작년 8만명 수강했지만 학습효과 글쎄
학생들 “대회 출전에 필요…이수가 목적”
학습 보충 넘어 진로설계 실효성 강화를



학생선수 E스쿨은 초·중·고교 소속 학생선수가 대회 출전이나 훈련 참가로 비롯된 수업 결손을 온라인으로 보충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2016년 시범운영을 거쳐 2017년 중·고교 학생선수를 대상으로 전국에 도입됐다. 2023년에는 초교 선수까지 운영 대상이 확대됐다. 정규 교과 과정과 기초학력 보장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E스쿨 홈페이지]


배재고 야구부의 5·18 조롱성 응원 논란 이후 학생선수의 교육 공백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생선수 E-스쿨’(이하 E스쿨)과 최저학력제 등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엔 물음표가 붙는다. 내실 있는 학습은 커녕 기계적인 ‘강의 이수’에 그친단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진로 전환 컨설팅·직업교육 등 학생선수 피부에 와닿는 교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6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기준 한 번이라도 E스쿨을 수강한 학생 선수는 약 8만1000명(한국교육개발원 통계)이었다. 올해는 이달 1일 기준 7만9700명이 신청했다. 이 추세대로면 올해 이용 학생 수는 지난해 수준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학습보다 이수에 그친 E스쿨

그러나 현장에서는 E스쿨이 학습보다는 ‘보여주기식’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학생선수 입장에서는 수업 결손을 보충하는 장치라기보다 대회 출전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채워야 하는 절차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출결이나 학습 결손이 정리되는 구조지만 실제 수업 내용에 집중하는지 확인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E스쿨이 학습보다 이수에 그친다는 지적은 제도 확대 초기부터 있었다. E스쿨이 전국으로 확대됐던 2017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중앙대 농구부 출신 A씨는 “이전 선배들은 4교시까지만 수업을 듣고 오후에 낮잠을 자다 운동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우리 때는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듣고 운동에 참여했다”며 “제도 도입 이후 학생선수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늘었지만, 온라인 보충수업은 실질적 학습과 거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수업도 대회 참가 자격과 연결돼 있으니 수강하긴 했다”며 “쉬는 시간에 휴대전화로 틀어놓는 형태였다”고 전했다.

8년 차 현직 여자프로농구선수 B씨는 “학교에서 컴퓨터실에 가서 뭘 들으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며 “스스로 집중해서 듣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고교 농구부 학생 두 명의 담임교사였던 충남교육청 소속의 한 교사 C씨도 “담임은 주로 출결을 정리하는 정도였다”며 “학습은 코치님이 대부분 관리했고 수행평가만 제대로 해도 다행인 상황이었다”고 했다.

여전한 ‘운동 올인’…진로 탐색은 공백

문제는 이런 방식의 교육이 ‘운동 이후’를 대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등학교까지 엘리트 선수로 지내온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에 쏟는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대학 진학이나 프로 진출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부상, 성적 부진, 진로 변경 등으로 운동을 그만두는 순간 학생들은 일반 학생과 같은 방식의 학업 경쟁에 놓이거나 전혀 다른 진로를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학생 선수를 대상으로 한 교육 체계에서는 아무런 대비가 없다.

프로 1년 차 D선수는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를 ‘올인’ 문화라고 표현했다. 한 번 운동을 시작하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성공하지 못했을 때의 대안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D선수는 “지난해까지 들었던 E스쿨이 진로 설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운동을 그만뒀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스포츠 마케팅이나 매니지먼트처럼 선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분야를 배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프로농구 무대에서 13년을 뛰고 은퇴한 김진용 씨도 같은 문제의식을 밝혔다. 김씨는 “운동부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능 1등급을 받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기초적 교육”이라며 “제도는 학생을 책상에 앉혀놓을 수 있지만 실제로 수업에 집중하게 하는 것은 별개”라고 했다. 그는 학생 선수를 위한 교육으로 스포츠 심리학, 트레이닝 이론, 스포츠 산업 교육 등을 예시로 들었다.

교육당국도 형식적 이수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현재 E스쿨이 수업 결손을 보충하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학생이 실제로 학습했는지 확인하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여겼다. 최수진 한국교육개발원 박사는 “형식적으로 이수하거나 대리 수강을 하는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며 “하반기에 E스쿨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체육예술교육과 관계자는 “학생선수의 수업 결손 보충이라는 제도 취지는 유지하되 실제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살피겠다”고 했다.

전문가들 “진로·직업교육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E스쿨을 단순히 온라인 교과 보충 시스템으로만 운영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학생선수 교육은 일반 학생과 똑같은 교과 진도를 따라가게 하는 방식만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운동을 계속할 학생, 스포츠 분야로 진출할 학생, 운동과 무관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 학생을 나눠 각각에 맞는 교육과 진로지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E스쿨이 과거의 기초학력 보충 모델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지금의 E스쿨 제도는 약 10년 전 지식이나 기초학력이 강조되던 과거 모델”이라며 “현재 고등학교가 고교학점제와 역량 중심 교육으로 전환되는 만큼 학생선수 교육도 지식 중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 지식은 온라인으로 보충하되 스포츠산업이나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하는 선배를 만나는 오프라인 멘토링, 진로교육, 실무형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선수 교육을 세 가지 트랙으로 나눠야 한다고 했다. 양 교수는 “고교 선수 중 프로나 대학에 가는 학생들은 많아야 10% 수준”이라며 “대학이나 프로 진출을 준비하는 트랙, 운동 경험을 살려 스포츠 분야로 나아가는 트랙, 운동과 무관한 직업교육을 통해 다른 진로를 찾는 트랙이 함께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생선수에게 무조건 일반 교과 학습만 강조하기보다 운동 이후의 삶까지 고려한 교육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용재 기자·이우중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