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핵실험 전문가인 미국인, 中서 600일 넘게 구금…간첩 혐의

중국계 미국인 지진학자 천유린(陳友林 ·54)과 그의 아내. [로이터]


[헤럴드경제=장윤우 기자] 북한의 지하 핵실험을 지진파로 탐지하는 연구를 해온 중국계 미국인 지진학자가 중국에서 간첩 혐의로 600일 넘게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과 영국 B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해외 억류자 석방을 지원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글로벌리치(Global Reach)는 지진학자 천유린(陳友林 ·54)이 2024년 11월 가족을 만나러 베이징을 방문했다가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고 밝혔다. 가족은 중국이 석방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사건을 공개하기로 했다.

천유린은 중국에서 태어나 2011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거주해 왔다.

천유린은 지진파를 분석해 지하 핵실험 여부와 폭발 규모를 가려내는 연구를 해왔다. 주로 북한의 지하 핵실험 탐지에 주력했다.

그의 연구는 미 국무부와 미 공군연구소의 지원을 받았다. 2020년 12월에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의 지진파 자료를 분석해 핵실험 탐지와 폭발 규모 추정 기법을 개선하는 공동 연구에 참여했다.

키어런 램지 글로벌리치 수석조사관은 천유린이 베이징에서 부모를 만난 뒤 공항에서 체포됐다고 전했다.

램지는 “중국은 국무부로부터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동시에 그 사실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미국 전문가를 붙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중국이 미국과의 강대국 경쟁에서 인질 외교를 활용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천유린과 마찬가지로 지진학자인 아내 룽위팡은 간첩 혐의를 부인했다. 룽위팡은 남편의 연구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중국 학자들과 협력해 진행됐다며 “남편이 해온 일은 중국 정부가 장려한다고 밝혀온 민간·학술 교류의 취지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말했다.

룽위팡은 남편과 600일 넘게 직접 통화하지 못했다며 건강과 안전을 걱정했다. 그는 중국 당국이 남편의 연구 내용을 놓고 100차례 넘게 심문했고 구금 초기 13개월 동안 변호인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해외 억류자 지원단체 제임스 W. 폴리 레거시 재단은 천유린이 당뇨병과 고혈압, 고지혈증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재단은 그가 꾸준히 약을 먹고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구금 시설에서는 필요한 치료를 안정적으로 받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중국 외교부는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천유린 사건에 대해 사법당국이 법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에는 이른바 ‘부당 구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미국 측 주장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