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당 절반 “이스라엘 지원 중단”…수십년 ‘친이스라엘’ 균열

하원선 지원 중단안 부결됐지만 민주당선 찬성이 반대보다 많아
NYT “미국 정치 ‘무조건 이스라엘 지지’ 시대 저물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7일(현지시간) 이란 공격 재개 가능성을 전화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AP]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 민주당 내 친이스라엘 기류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하원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중단하는 법안은 부결됐지만, 민주당 의원 가운데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두고 수십 년간 이어진 미국 정치의 ‘초당적 친이스라엘’ 구도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15일(현지시간) NYT에 따르면 미 하원은 이날 외교 예산안 수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04표, 반대 314표, 기권 10표로 부결시켰다.

수정안은 이스라엘에 지원되는 33억달러 규모의 군사·인도주의 지원을 전액 삭감하는 내용이다. 법안을 발의한 토머스 매시 공화당 하원의원을 제외한 공화당 의원들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반대표보다 찬성표가 더 많이 나왔다. 일부 의원들은 인도적 지원까지 함께 삭감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스라엘 군사 지원을 더 이상 무조건 지속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NYT는 “민주당이 수십 년간 유지해 온 확고한 친이스라엘 기조에서 급격하고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이 문제를 두고 갈라졌다.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피트 아길라르 원내총무는 반대표를 던졌지만, 당 서열 3위인 캐서린 클라크 원내부대표는 찬성했다.

클라크 의원은 “수정안 전체 내용이나 공화당의 의도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가 반드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도 “유감스러운 선택”이라면서도 “법안이 전달하는 메시지 때문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인사로 꼽혀온 제프리스 원내대표도 당내 반발이 커지자 의원총회를 두 차례 여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수정안에는 반대하면서도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의 “대대적인 재설정”이 필요하다며,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안보 지원을 팔레스타인 인권 존중과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자지구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민주당 내 이스라엘 회의론은 더욱 확산하는 분위기다.

텍사스주 민주당 소속 호아킨 카스트로 의원은 “자위권에는 민간 주택을 무차별 폭격하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부를 비판했다.

한때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성향으로 분류됐던 세스 몰턴 민주당 의원도 모든 지원 중단에 찬성하며 “현상 유지를 통해 우리의 도덕적 양심과 국가안보 이익에 반하는 네타냐후 정부의 행동을 더는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AIPAC)의 정치후원금도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지층의 여론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난 5월 NYT와 시에나대가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자의 74%가 이스라엘에 대한 추가 군사·경제 지원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의견은 젊은 층뿐 아니라 모든 연령대에서 과반을 차지했다.

중도 성향 친이스라엘 단체인 J스트리트의 제러미 벤아미 대표는 “이번 표결은 미국 정치에서 가장 빠른 여론 변화 가운데 하나를 보여준다”며 “이스라엘이 옳든 그르든 무조건 지지한다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NYT는 이번 표결 결과가 법안의 통과 여부보다 민주당 내부의 변화 자체를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민주·공화 양당의 공통분모였던 친이스라엘 노선이 가자 전쟁을 계기로 민주당에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