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열린 ‘금오음악회’가 원조
해설·시간·가격 등 ‘전략적 집합체’
중장년에서 MZ까지…다양한 고객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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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세비야 광장은 오후 12시가 되면 군인들과 담배공장 여공들이 쏟아져 나와 기묘한 ‘썸’의 기운이 몰아쳐도 카르멘이 등장하면 모두의 시선은 그에게로 향한다. [AI로 만든 오페라 이미지]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새빨간 드레스에 하이힐,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이 등장하자 무대는 19세기 스페인 세비야 광장으로 돌아간다. 매혹적인 중저음이 실어 보내는 육감적 선율, 어디에 숨겼는지 그는 객석으로 ‘장미꽃’을 던진다.
‘댕, 댕, 댕’
매일 오후 12시, 담배공장의 휴식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고된 노동과 훈련의 땀방울을 털어내는 꿀맛 같은 점심시간. 이 시간이 되면 광장엔 기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오른쪽은 군대 연병장, 왼쪽은 담배공장. 한 곳은 온통 남자만, 다른 한 곳은 온통 여자만 존재하는, 이질적인 두 공간이 나란히 자리했다. 각각은 금남, 금녀의 구역처럼 보이지만, 이 시간이 되면 그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다.
공장에서 수많은 여공이 쏟아져 나오면 야릇한 썸의 내음이 진동하지만, 광장의 군인과 사람들은 이내 단 한 사람을 찾는다. ‘이 구역’ 얼짱, 세비야의 여신 카르멘이다.
“공장에서 가장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인이죠. 군인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 노력하고 온갖 아양과 아부를 떨죠. 유일하게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군인이 있어요.” (‘맥모닝 콘서트’ 중 콘서트 가이드 김용배의 해설)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날 이렇게 대한 건 처음이야!”라는 바로 그 마음. ‘군인들의 뮤즈’이자 ‘담배공장의 퀸카’, ‘자유로운 영혼’ 카르멘은 그 유명한 ‘하바네라’를 부르며 돈 호세를 유혹한다.
“사랑은 길들지 않는 자유로운 새, 그 누구도 길들일 수 없네, 아무리 불러보아도 소용없다네.” (오페라 ‘카르멘’ 중 ‘라바네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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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아트센터 ‘맥 모닝 콘서트’에서 비제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를 부르다 관객에게 장미꽃을 주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
잠깐, 주의 사항이 들린다. “그 꽃을 받는 순간 인생 망한다”고 콘서트 가이드가 말한다. 누구도 ‘그녀’가 주는 장미를 받아선 안 된다. 팜므파탈의 유혹에 빠져들면, 자기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피아니스트이자 추계예대 교수인 콘서트 가이드 김용배는 “돈 호세는 카르멘을 사랑하며 탈영하고, 감옥에 가고, 밀수업자가 되고, 결국 카르멘까지 죽인다”고 해설한다.
콘서트 가이드는 이야기꾼이다.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와 비제의 ‘카르멘’ 중 ‘하바네라’의 압축 서사를 들려주고 작곡가의 배경까지 귀띔한다.
이를테면 이렇다. “오스트리아에 모차르트가 있었다면, 독일엔 멘델스존, 프랑스엔 생상스가 있다고 할 만큼 천재적인 작곡가”라는 사실. 그러다 자그마한 전자 건반으로 두 곡의 핵심 선율을 연주하니, 관객들의 감탄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아, 이 곡”이라며 이제야 알겠다는 반응까지 나오니 전략은 적중한다. “이렇게 짧게 치고 박수받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나밖에 없을 것”이라는 김 교수의 말에 객석엔 또 웃음이 터진다. 평일 오전 11시, 클래식 공연장에선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오전 11시~오후 1시까지. 집 근처 공연장이 있다면 어디라도 찍어보자. 그곳에서 의외로 ‘고퀄리티’ 클래식 공연이 저렴한 가격(1~4만원)에 기다릴지도 모른다. ‘마티네’(matinée, 평일 오전 및 낮 공연)는 이제 공연계의 ‘스테디셀러’가 됐다.
한국에 마티네 콘서트가 태동한 것은 1980년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창단을 주도한 지휘자 홍연택이 오케스틑라 창단 1주년을 맞아 1986년 3월 서울 남산 힐튼호텔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금오음악회에서 첫 스타트를 끊었다. 당시로선 ‘야심 찬 기획’이었다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측은 설명한다.
당시 한국은 빠른 경제 성장을 하며 문화적 욕구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클래식 공연은 그러나, 여전히 엄격하고 권위적인 저녁 행사로 인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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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전당 사장 시절 마티네 콘서트 ‘11시 콘서트’를 기획, 진행하고 현재 ‘마음을 담은 콘서트’(예술의전당)과 ‘맥모닝 콘서트’(마티네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 콘서트 가이드 김용배 [마포문화재단 제공] |
‘금오음악회’는 금요일 오전의 음악회라는 의미다. 홍연택 지휘자는 이 공연을 시작하며 “음악회를 오고 싶어도 저녁 공연이라 못 오시는 분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음악회를 가지려 한다”며 “교향곡, 협주곡의 악장마다 구성된 곡해설을 곁들여 많은 청중과 음악 애호가를 맞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해설은 홍연택 지휘자가 직접 맡았다.
김용배 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 공연이 한국 마티네 콘서트의 원조이자 시초”라며 “이후 예술의전당 마티네 공연의 아이디어가 됐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호암아트홀에서도 ‘아침 음악회’라는 이름으로 공연이 시도됐다. 지휘자 금난새가 나섰지만 정규 프로그램으로 정착하진 못했다.
1990년대만 해도 마티네 콘서트의 성공 확률은 낮았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의 실패 원인은 클래식 음악 향유층의 절대적 부족과 평일 오전 시간을 문화 활동에 할애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한국 사회 전반에 확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금의 ‘마티네 콘서트’는 클래식 공연계의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예술의전당을 포함한 수많은 전문 공연장에서 ‘마티네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마티네 콘서트의 시작은 1986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역사적 분기점’은 이후 18년이나 지난 2004년 9월이다. 바로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가 시작하면서다. 그해 5월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한 김용배 교수는 “낮에 이렇게 좋은 공연장이 쉬고 있다는 것이 아쉬워 국민에게 돌려줄 방법이 없을까 고심했다”며 “1980년대에 홍연택 선생님이 하던 공연이 기억에 오래 남아 시도해봤다”고 회고했다. 공연장의 입장에서도 유휴 시간대인 낮의 활용은 부담이 없었다. 추가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예술단체와 민간의 대관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 달 내내 홍보팀, 기획팀과 회의를 하며 공연의 시작 시각, 명칭, 부제 등을 세밀하게 결정했다”며 “서울 강남 압구정동과 서초구 반포의 반상회에 가서 알리고 초대권도 나눠주며 첫 공연을 올렸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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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문화재단 마티네 콘서트의 해설을 맡은 한석준 [성남문화재단 제공] |
그해 예술의전당의 ‘11시 콘서트’는 2회 때부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김용배 교수는 사장 시절 이 공연을 진두지휘하는 해설자로 총 50회까지 진행했다. “2회부터 50회까지 전석 매진이 되지 않은 공연이 없었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의 ‘11시 콘서트’는 이후 한국 마티네 콘서트 계의 ‘교과서’가 됐다. 현재 예술의전당의 마티네 공연은 총 2가지다. 김용배 교수가 만들어 현재까지 효자 공연으로 자리한 ‘11시 콘서트’와 김 교수가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 해설을 맡아 진행하는 ‘마음을 담은 클래식’이다.
‘마티네 콘서트’의 맏형 격이자, ‘표준 모델’인 예술의전당을 필두로 각 지자체 공연장에서도 이 시간대에 공연을 올린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성남아트센터다. 2006년 첫발을 디뎌 예술의전당과 함께 전통과 역사를 갖춘 1세대 클래식 마티네 콘서트로 자리하고 있다. 대전예술의전당의 ‘아침을 여는 클래식’ 역시 2005년 첫선을 보인 이래 20주년을 맞이한 장수 브랜드다.
마티네 콘서트는 ‘전략의 산물’이다. 오전 11시라는 시간대는 물론 요일, 프로그램, 해설자의 선정까지 전략적이지 아닌 것이 없다.
우선 시간은 모두 ‘오전 11시’이다. 말의 어원이 이미 ‘오전 시간대’를 내포하고 있지만, 굳이 이 시간대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용배 교수는 2004년 예술의전당 공연 기획 당시에도 시간대 선정에 고심했다. 그는 “오전 10시는 관객들이 도착하기에 너무 이르고, 정오나 오후 1시는 저녁 공연 리허설 시간과 겹칠 우려가 있다”는 실무적 판단으로 ‘오전 11시’를 최종 낙점했다.
당시엔 단순히 공연만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 후 로비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목요일의 브런치’라는 부제를 달았다. ‘마티네 콘서트’가 가졌던 ‘사교적 의미’를 강화한 것이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 역시 이후 여러 공연장이 벤치마킹했다.
시작 시각만큼이나 끝나는 시간도 중요하다. 해설과 연주를 겸하는 만큼 공연 시간도 자칫 길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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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콘서트홀의 마티네 콘서트를 책임지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롯데문화재단 제공] |
김용배 교수는 “11시에 시작하다 보니 공연이 너무 길면 관객들의 허기가 심해진다. 아무리 늦어도 인터미션을 포함해 1시에는 공연을 마쳐야 했다”며 “인근 상권에서도 12시엔 학생과 직장인을 손님으로 받고, 1시엔 공연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손님으로 받으면 윈윈(Win-win)의 결과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예술의전당과 같은 대형 콘서트홀은 저녁 공연을 위한 리허설이 오후 3시에 시작되는 만큼, 1시에는 마쳐야 공연장 재정비 후 저녁 콘서트를 준비할 수 있다.
마포문화재단 역시 철저한 기획 의도를 반영한 시간대로 결정이다. 김용배 교수를 새로 선보이는 마티네 공연인 ‘맥(MAC) 모닝 콘서트’의 해설자로 함께하며 재단 측은 “중장년 여성 관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오전 11시 공연을 기획했다”고 했다. 이 연령대는 “저녁 시간대보다 오전과 낮 시간대의 문화 활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며, 오전 11시는 공연 관람 이후 점심과 여가 활동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시간”이라며 “11시 공연시간이 관객이 일상 속 문화 소비를 확장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재단 측은 귀띔했다.
요일도 전략이다. 마티네 콘서트를 열고 있는 대부분의 공연은 상당수가 한 주의 중반으로 관객과 만난다. 예술의전당이 ‘찜’한 목요일을 성남문화재단이 굳이 낙점한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성남문화재단 관계자는 “평일 낮 시간대 공연장을 찾을 관객의 입장을 고려해, 주 초반부보다는 주 후반부가 심리적·일정적으로 부담이 적을 것으로 분석했다”며 “주말 직전의 혼잡함은 덜하면서도 한 주의 생활 리듬 안에서 문화 외출을 끌어내기 좋은 요일이 목요일”이라고 분석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이 관계자는 “공연이 집중되는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까지의 일정을 제외하고, 매월 시리즈로 이어지는 공연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 목요일이 적합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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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아트센터 ‘맥 모닝 콘서트’에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라장조를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마포문화재단 제공] |
수요일을 낙점한 마포문화재단은 “주 초반인 월·화요일은 업무 집중도가 높고, 금요일은 외부 일정과 약속이 많아지지만, 수요일은 심리적·시간적 여유가 비교적 확보되는 요일”이라고 판단했다. 재단 관계자는 “주말의 혼잡을 피하면서도 일상에 작은 환기를 제공할 수 있는 ‘주중의 쉼표’ 같은 시간으로, 관객에게 보다 쾌적한 관람 경험을 제공한다는 브랜드 정체성을 가져가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강동문화재단 역시 “주중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수요일은 비교적 일정에 여유를 두기 좋은 시점”이라고 봤다.
수요일 오전 11시 예술의전당과 강동아트센터, 목요일 오전 11시 마포아트센터와 성남문화재단. 학생과 직장인이라면 기함할 ‘주차 대란’이 평일 오전 이곳에서 벌어진다. 예술의전당은 ‘11시 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임윤찬, 조성진의 리사이틀처럼 콘서트홀 앞이 주차장으로 변신한다. 마포아트센터는 지하 주차장은 일찌감치 가득 차, 인근 도서관과 대학 주차장을 안내하곤 한다.
수요가 많으니 해마다 공연이 늘고 있다. 2026년은 클래식 음악계 ‘마티네 콘서트’의 변곡점이자 분수령이라 할 만하다. 이제 한국의 ‘마티네 콘서트’는 단순히 저렴한 낮 공연을 넘어 하나의 독립적인 ‘공연 브랜드’로 고도화됐다.
오전 11시 시간대에 공연을 찾는 관객층은 대체로 중장년 세대다. 지난 25일 열린 ‘맥모닝 콘서트’ 첫 회에선 약 600명의 관객이 찾았다. 전체 예매자 중 약 82%는 40~60대 중장년층. 성별로 살펴보면 여성이 80%로 압도적이었다. 마포문화재단만의 특징은 아니다. 대부분의 마티네 콘서트가 이러한 연령대 분포와 성비를 보인다.
대신 장수 마티네 공연은 관객의 연령대가 확장하는 추세다.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의 경우 40~60대가 70%대지만, 20~30대 역시 20%대로 유지하고 있다. 성남문화재단 역시 40~50대 관객층의 비중이 50%대로 가장 높지만 30대도 10%대를 차지한다. 60대 이상은 30%대다.
특이점은 재관람 관객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성남문화재단의 경우 “평균 80% 이상, 한 시즌 10회 공연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시즌권 판매량도 전체 티켓 판매량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충성 관객의 비중이 높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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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전당 마티네 공연 ‘마음을 담은 클래식’의 연주를 맡고 있는 KT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의전당 제공] |
연령대의 특성은 해설자와 프로그램 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형 ‘마티네 콘서트’는 해설과 연주가 곁들여진 교육형 공연이라서다.
프로그램은 ‘콘텐츠의 고급화’, ‘장르의 융합’ 등으로 진화했다. 과거 마티네 콘서트는 소위 ‘클래식 입문자’들을 위한 가볍고 쉬운 공연 정도였으나 지금은 차이콥스키나 라흐마니노프의 거대한 협주곡과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등 예술적 중량감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직장인과 학생을 포함한 전 세대로 관객층을 확장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프로그램을 보면 테마형, 융합형, 체험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남문화재단은 ‘테마형 장인’이다. 이미 한 명의 작곡가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마티네 공연을 이어왔고, 2021년부턴 국가와 지역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2021년 프랑스, 2022년 영국, 2023년 이탈리아, 2024년 체코, 2025년 오스트리아, 2026년(~2027년) 독일 등이다.
성남문화재단 관계자는 “대중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가들 외에도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해당 국가에서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음악가의 작품까지 다채로운 클래식의 매력을 전하고자 했다”며 “충성도 높은 관객들의 신뢰와 음악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 덕분에 이러한 기획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1세대 ‘마티네 콘서트’는 20여년의 세월을 거쳐 명실상부 ‘지식 콘텐츠’로 거듭났다. 재단 측은 “마티네 콘서트를 찾는 관객들은 ‘편한 음악’이 아닌 ‘사유하는 음악’을 찾는 아카데믹한 음악 애호가들”이라고 귀띔했다.
이색적 테마형도 있다. 강동아트센터는 지난해엔 악기 편성을 다루너미 올해 마티네 콘서트에서 초특급 해설자와 함께 ‘여행’을 테마로 한 공연을 기획했다. 아트센터인천의 ‘조조 클래식’은 비올라, 트럼펫, 더블베이스, 바순 등 오케스트라의 뒷자리에 머물던 악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악기의 재발견’을 테마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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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8대 해설자 배우 강석우. 임세준 기자 |
‘융합형’ 공연의 선두는 롯데콘서트홀의 ‘대니 구의 플레이리스트’다.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클래식, 재즈, 영화 음악 등을 넘나드는 장르 융합형 무대를 통해, MZ 관객까지 흡수하고 있다. 다양한 곡을 융합해 흐름을 설명하는 ‘한 상 차림’ 공연은 흔하다. 서곡, 협주곡, 오페라, 교향곡을 골라 보여주는 방식으로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마포문화재단 ‘맥모닝 콘서트’가 대표적이다.
오르간 내부를 공개하는 투어와 함께 공연도 만나는 ‘오르간 오딧세이’(롯데콘서트홀)는 ‘체험형’ 마티네 공연의 선구자다.
해설자는 마티네 콘서트의 ‘엔진’이다. 마티네 콘서트의 성패는 ‘해설의 질’이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심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아야 한다”는 점. 엇비슷한 해설과 입문자용 공연이라는 안일한 판단은 잘 차려둔 밥상에 재를 뿌리는 격이다. 음악의 문턱을 낮추면서도 관객과의 정서적 교감을 함께 하는 ‘막중한 책임’을 잘 해내야 성공할 수 있다. 해설은 ‘단순한 설명자’가 아닌 관객의 ‘청취 방식’을 설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해설자의 유형도 각양각색. 음악가가 ‘콘서트 가이드’가 돼 마이크를 잡는 ‘음악가형’(김용배, 대니 구), 공연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 직접 해설형’(최수열, 홍석원 등), 배우나 아나운서를 얼굴로 내세운 ‘대중형’(강석우, 한석준), ‘지적 만족’을 책임지는 ‘평론가형’(송현민, 장일범 평론가) 등이 있다. 여기에 새로운 유형이 처음으로 추가됐다. ‘스타 작가형’(김영하)이다.
공연장에선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한다. 업계 관계자는 “배우나 아나운서는 대중적 선호도가 높아 타깃 연령대를 충성 관객으로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연주자나 지휘자와 같은 음악가는 전문성이 높아 클래식 지식 콘텐츠로의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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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아트센터는 올해 마티네 콘서트에 유튜브계의 ‘지식 전도사’로 거듭한 한석준 아나운서를 해설자로 발탁했다. [성남문화재단 제공] |
‘대중형’ 해설자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와 성남문화재단의 마티네 콘서트에서 활약한다. 배우 강석우는 2023년부터 현재까지 11시 콘서트의 진행을 맡고 있다. 이 콘서트의 해설자 변천사는 다채롭다. 피아니스트 김용배 전 사장(2004~2008)을 시작으로 아나운서 유정아(2009), 첼리스트 송영훈(2009~2013), 피아니스트 박종훈(2014~2016), 조재혁(2017~2018), 비올리스트 김상진(2019~2021), 성악가 손태진(2022) 등이 거쳐 갔다. 강석우가 이끄는 지금의 ‘11시 콘서트’는 ‘원조 꽃미남’ 배우의 진행에 객석엔 중장년 여성 관객이 열띤 환호를 보낸다.
성남아트센터는 성악가 박종호(2006~2007)를 시작으로 음악평론가 장일범(2008~2009), 바리톤 김동규(2010), 뮤지컬 배우 카이(2011~2014), 배우 김석훈(2015~2021), 피아니스트 김태형(2022~2025)을 거쳐 현재는 유튜브계의 ‘지식 전도사’로 거듭한 한석준 아나운서를 해설자로 발탁했다.
성남문화재단 관계자는 “전문 연주자 중심의 해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수 브랜드인 ‘마티네 콘서트’를 보다 폭넓은 관객과 연결하는 ‘소통형 진행’으로 확장하려는 선택”이라며 “2026 시즌은 독일 음악을 2년에 걸쳐 탐구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음악적 해설을 보다 쉽게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능력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석준 아나운서는 안정적인 진행력과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으로 관객과 소통해 온 진행자”라며 “클래식이 낯설게 느껴지는 입문자들에게는 편안한 안내자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악가형’은 롯데콘서트홀의 대니구, 마포아트센터의 김용배 교수가 있다. 롯데콘서트홀은 대니 구가 직접 짠 프로그램으로 장르를 확장, 클래식 음악의 진입장벽을 허물며 ‘콘텐츠 실험실’이자 ‘브랜드형 마티네’ 공연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포아트센터는 그야말로 ‘콘서트 가이드’라는 포지션의 ‘창시자’ 격인 김용배 교수를 통해 ‘해설 콘텐츠’의 정수를 보여준다. 김 교수는 “해설은 음악을 위한 디딤돌”이라며 “입문자를 위한 공연이라고 수준을 낮춰 쉽게 갈 것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성장하기 위한 해설이 관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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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 작가의 마티네 콘서트 ‘여행의 이유, 그리고 음악’ [강동아트센터 제공] |
올해 ‘마티네 콘서트’ 중 최고의 ‘스타 해설자’는 강동문화재단의 마티네 콘서트다. 2023~24년 바이올리느스트 대니 구, 지난해 피아니스트 오은철에 이어 올해는 김영하 작가와 ‘여행의 이유, 그리고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1년간 4차례 관객과 만난다. 문학계 대표 스타가 클래식계에 첫 발을 디딘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직접 여행하며 마주했던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스페인의 풍경과 사유를 풀어내고, 그 정서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을 소개한다. 강동문화재단 관계자는 “김영하 작가가 강동 구립 중앙도서관 개관을 기념하는 강연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신청자들이 너무 많아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됐다”며 “악에 ‘이야기’를 더하면 더 많은 관객들이 편하게 클래식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평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김 작가를 어렵게 섭외했다”고 귀띔했다.
온갖 전략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마티네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과 공연장이 ‘생존’을 위해 발굴해 낸 가장 성공적인 ‘관객 생산 시스템’이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마티네 콘서트는 시간적,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클래식 공연장을 찾기 어려웠던 잠재적 수요층을 시장으로 유입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마티네 콘서트는 가사 노동에 묶였던 주부들에게 ‘문화적 해방구’가 됐고, 은퇴 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세대에겐 활기찬 낮의 여가 활동을 제안했다. 야간 근무가 잦은 의료진이나 서비스직 종사자 등 전통적인 공연 시간대(평일 저녁 7시 30분)를 이용할 수 없는 직업군에게도 마티네 콘서트는 중요한 대안이다. 관객층의 다변화는 클래식 음악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공공재로서의 가치를 획득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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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모닝 콘서트’ [마포문화재단 제공] |
무엇보다 ‘마티네 콘서트’는 음악계와 공연장의 ‘상생 전략’으로도 자리한다. 신진 예술가들과 실력 있는 중견 연주자들에게 소중한 무대 기회를 제공하는 인큐베이터 기능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국내 클래식 음악계는 이제, 대중적 인지도나 티켓 파워가 검증된 스타 연주자 위주로 라인업이 구성된다. 김용배 교수는 “마티네 콘서트는 기획 의도에 따라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며 “클래식 음악계의 인적 자원을 풍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연주자들에게는 낮 공연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과 소통하며 무대 경험을 쌓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마티네 콘서트에서 ‘달변’의 해설가와 함께 들었던 곡에 매료돼 전곡 연주가 이뤄지는 저녁 공연으로 유입되는 ‘낙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공연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5일 ‘맥모닝 콘서트’에서 만난 60대 여성 관객은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을 처음 들었는데 ‘악마의 바이올린’이라고 할 만큼 너무 현란하고 듣기만 해도 어려운 곡을 너무나 잘 연주해 놀랐다”며 “송지원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관심이 생겨 다음에 공연할 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클래식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일등공신인 셈이다.
공연계 관계자는 “마티네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이 ‘특별한 행사’가 아닌 ‘매일의 습관’이 되도록 이끄는 징검다리”라며 “다양한 레퍼토리의 개발과 해설 방식의 고도화로 한국 클래식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자산의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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