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휴전 깨졌나…미·이란 충돌 부른 ‘호르무즈 5조’[세모금]

이란 “해협 관리권 인정” vs 미국 “자유 통항 보장” 각기 다른 주장
모호한 문구가 해석 충돌 불러…호르무즈 다시 중동 최대 화약고로


호르무즈 해협. [로이터]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휴전했는데 왜 다시 충돌하는 걸까.”

최근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된 배경에는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이 있다. 지난달 미국과 이란이 체결한 종전 관련 양해각서(MOU)는 전면전을 멈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가장 민감한 쟁점인 호르무즈 해협의 지위는 명확히 정리하지 못했다. 양측이 같은 문장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휴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BBC는 15일(현지시간) 미국과 이란의 휴전이 불안정한 가장 큰 이유로 ‘호르무즈 5조’를 꼽았다. 합의문 5항에는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상선들의 안전한 통항을 위해 최선을 다해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문장이지만 미국과 이란은 이를 정반대로 해석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이 지난 2024년 10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레바논 국회의장 나비 베리와 기자회견을 진행한 모습. [로이터]


이란 이 조항이 자국의 호르무즈 해협 관리권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란은 자국이 지정한 항로를 선박들이 따라야 하며 해협 관리 역시 자국의 권한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이 조항이 이란에 국제 해상교통을 방해하지 말고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비료 원료 등 전략 물자의 자유로운 통항을 보장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하고 있다.

중동의 한 아랍계 석유회사 임원은 BBC에 “그 조항은 트럭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허점이 크다”며 합의문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다. 중동 산유국 대부분의 원유가 이곳을 통과해 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한다. 이 때문에 이란은 해협 통제권을 미국과의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전략 자산으로 여긴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측 수석 협상대표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약속을 지키거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적으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란 의회도 최근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의 안보 및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략적 행동’ 법안을 발의했다.

에브라힘 아지지 국가안보위원장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며 “적과 맞설 때 유용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란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종전 협상을 타결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미 종전 양해각서(MOU)에 전자서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FP]


미국 역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화물에 20%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철회했지만, 대신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봉쇄를 재개하고 군사적 압박은 오히려 강화했다.

최근 이란이 오만 인근 해역에서 선박을 공격하고 미국이 이에 대응해 이란 공습과 해상봉쇄를 재개한 것도 결국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양측의 해석 차이가 현실로 드러난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의 움직임은 주변 걸프 국가들의 반발도 불러왔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란이 통행료나 서비스 수수료를 부과하며 해협 관리권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재국인 오만 역시 이란이 합의문에 자국과의 해양 서비스 체계 구축 내용을 포함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양측 모두 장기적인 전면전은 원하지 않는 만큼 협상이 다시 재개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본다.

2015년 이란 핵협상에 참여했던 사이먼 가스 전 영국 외교관은 “완벽한 해법은 없지만, 이란이 직접 통행료를 부과하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서비스 체계를 통해 관리권을 인정받는 방식이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로버트 말리도 “미국과 이란 모두 상대가 먼저 물러설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어느 쪽도 원하는 것을 모두 얻기는 어렵다”며 “휴전은 어떤 형태로든 복원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세모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