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낯설게”…사진 거장 마틴 파 아시아 첫 대규모 회고전

‘마틴 파 : We Are Martin Parr’
사진·영상·사진책 등 595점 전시
‘남한’·‘북한’ 연작 최대 규모 공개


‘마틴 파 : We Are Martin Parr’ 전시 전경.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지루한 것에는 의외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마틴 파)

현대 사진의 거장 마틴 파(Martin Parr) 대규모 회고전 ‘마틴 파: 위 아 마틴 파(We Are Martin Parr)’가 오는 16일부터 10월 18일까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작가가 작고한 이후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전시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첫 사진작가 조명전인 이번 전시는 작가가 생전부터 사진미술관과 진행해 온 협의를 바탕으로, 그가 속했던 사진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와 마틴 파 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완성됐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15일 사진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마틴 파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라며 “그의 삶과 작업 세계를 기리고, 한국에 소개하는 귀중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정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장은 “마틴 파와 2024년부터 전시 논의를 했다”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사진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독보적 거장으로 사진작가 조명전의 첫 장을 여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매그넘 포토스 측에서도 전시에 감사를 표했다. 안드레아 홀스헤르 매그넘 포토스 글로벌 컬처 디렉터는 “1980년대 후반 마틴 파가 매그넘의 회원 후보로 지명되었을 때 단체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강렬한 컬러 사진과 아이러니가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도전했기 때문”이라면서 “입회 이후 그는 매그넘의 가치를 바꾼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사진이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넓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틴 파는 역사가 전쟁이나 정치적 사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인지를 규정하는 일상의 미래 속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마틴 파 ‘임페리얼 전쟁박물관, 런던, 영국’. [마틴 파, 매그넘 포토스 제공]


마틴 파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비판적이고 통찰력이 깊은 시선으로 동시대 사회를 관찰했다. 관광, 여가, 소비, 가족 등 일상을 담은 그의 사진은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어 있음을 보여줬다. 전통적 다큐멘터리 사진에 위트 있는 시선과 독창적 시각 화법을 도입한 그는 현대 사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마틴 파의 대표 연작 14개 시리즈를 아우르는 사진 작품 500여 점과 사진책 90권을 통해 1970년대 초기 흑백 작업부터 후기 작업까지 50여 년에 걸친 그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한다.

마틴 파와 전시를 협의하고 기획한 손현정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마틴 파는 한국에 사진미술관이 생긴다는 것에 호기심을 가졌다. 커미션 작업도 논의했는데 건강 문제로 진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전시는 마틴 파의 작업 세계를 통해 오늘날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하게 하는 전시”라며 “인공지능(AI) 이미지 시대에 사진만이 지닌 현장성, 우연성, 물질성 등을 재조명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먼저 마틴 파가 일상의 풍경을 통해 동시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을 조명한다. 대표작인 ‘작은 세계(Small World)’,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 ‘삶의 비용(The Cost of Living)’ 등은 관광과 여가, 소비문화의 풍경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다양한 현실을 비춘다.

수십 년 전부터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해 익숙한 장면을 낯설게 보게 하고, 현대인이 지닌 욕망과 행동 방식을 예리하게 담아낸 그의 사진은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상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오늘날의 시각 문화와 겹치며 현대인들의 이미지 소비를 되돌아보게 한다.

마틴 파 ‘평양’. [마틴 파, 매그넘 포토스 제공]


이어 마틴 파의가 이미지와 시각 문화 자체를 탐구하는 작업을 만나게 된다. ‘상식(Common Sense)’, ‘죽음의 셀피(Death by Selfie)’, ‘남한(South Korea)’, ‘북한(North Korea)’, ‘자화상(Autoportrait)’ 등을 통해 소비와 국가, 문화, 자기 재현 등 동시대 시각 문화의 다양한 양상을 소개한다.

특히 ‘남한’과 ‘북한’ 연작이 최대 규모로 공개된다. ‘북한’은 1997년 관광 패키지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으로, 김일성 동상 앞에서 참배하는 시민들처럼 이데올로기적 작품도 있지만 아이나 시장 풍경을 담은 작품도 있다.

‘남한’은 1998~2007년 사이 한국을 방문해 여러 장소와 대상을 담은 연작이다. 남대문 전통시장과 대형 마트의 식료품, 에버랜드 등을 촬영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그에 수반된 소비문화를 드러냈다.

마틴 파 ‘서울, 대한민국’. [마틴 파, 매그넘 포토스 제공]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작가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관광지와 사진관에서 촬영한 ‘자화상’ 연작을 선보인다. 사진을 찍고 소비하는 문화의 한 구성원으로서 작가 자신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틴 파의 사진책과 다양한 출판 형식의 작업도 대거 출품된다. 그의 사진집 150권 중 89권에 이번 전시 도록을 더해 만든 총 90권의 사진책은 사진가를 넘어 편집자이자 출판인, 컬렉터였던 마틴 파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We Are Martin Parr’라는 제목처럼 전시는 마틴 파의 사진이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오늘날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비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그의 사진 속에서 낯설지 않은 일상의 장면들을 마주하며, 소비와 이미지 문화 속에 놓인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시는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