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종욱 관세청장. |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은 550배, 출입국 여행객은 37배로 늘었다. 올해 K-뷰티 수출은 70억 달러, K-푸드+ 수출은 65억 7000만 달러로 모두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고, 방한 외국인 관광객도 사상 처음으로 상반기 내로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수출입을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밝은 빛만큼이나, 국경을 통해 오가는 위험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커져왔다. 올해 상반기 국경 단계에서 적발된 마약은 1톤에 육박하며, 전략물자 및 핵심기술 유출 등 무역안보 침해행위의 차단 규모는 1조 3000억원으로 상반기 실적으로만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기회와 위험이 교차하는 국경에서 국민 안전과 경제 활력을 함께 지키기 위해, 수출입·여행자·외환거래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관세청의 역할이 더 정교해져야 하는 시점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마약 차단이다. 우리나라는 국내에 마약 제조 기반이 없는 대표적인 마약 소비국으로, 유통되는 마약 대부분이 해외에서 들어온다. 마약이 국내로 유입된 이후에는 강한 중독성으로 치료와 재활이 쉽지 않고, 실직 등 개인의 생활 붕괴가 가족과 주변으로 번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국경 단계에서 마약 반입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이유다.
그간 관세청은 국경단계 검사로 국내 적발 마약의 약 80%에 해당하는 양을 적발해왔다. 그러나, 기존의 단층적 검사체계에서는 관세청이 한 차례 검사를 통해 마약뿐 아니라 세액의 적정성, 수입허가 여부, 원산지 등 많은 정보를 동시에 확인해야 해 마약 단속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액체·분말 등 형태가 다양한 마약을 한 번에 적발해 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에 관세청은 모든 반입 경로별로 마약 적발을 전담하는 2차·3차 X-ray 판독 및 검사 단계를 추가하여 ‘N차 저지선’ 체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국제우편과 일반 컨테이너 화물에 대한 N차 저지선은 상반기에 구축을 완료해 시행 중이며, 하반기에는 이를 여행자 휴대품, 특송화물, 무역선박을 오르내리는 선원·항만출입자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국경의 위험은 물품뿐만 아니라 돈의 흐름 속에도 숨어 있다. 최근에는 무역 거래를 악용해 국가 재정을 편취하거나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범죄가 새로운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유형은 수출입 실적을 조작해 정부지원금을 편취하거나, 원산지를 국산으로 둔갑해 공공 조달에 납품하거나, 수출실적을 부풀려 허위매출로 주가를 조작하는 방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가재정 누수, 시장의 공정성과 투자자 신뢰 훼손으로 이어진다.
관세청은 이러한 신종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무역기반 재정·금융범죄(TBFC, Trade-Based Financial Crime)’로 개념화하여 정확히 겨냥하고자 한다. 관세청은 관세법, 외국환거래법 등을 근거로 수출입 실적과 자금의 국제적 이동 내역을 종합분석해 무역 거래 이면의 이상징후에 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한층 강화해 운영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정부 지원사업과 공공 조달·주식상장 관련 정보까지 연계해 부정수급이 의심되는 업체를 선별·단속하고, 관계 기관과 결과를 공유하는 ‘TBFC 종합 방지단속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국민 안전을 지키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는 우리 경제의 공정한 성장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저가, 저품질의 수입품이 ‘한국산’으로 둔갑해 시장에 풀리는 순간, 성실하게 만들어낸 국산 제품이 밀려나고 그만큼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법을 지키며 품질로 경쟁하는 기업이 손해를 보고, 원산지 둔갑이나 저가신고로 부당 이익을 얻는 기업이 시장을 잠식한다면 공정한 경쟁은 성립할 수 없다.
그동안 원산지표시 단속은 농수산물 등 소비자 보호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국내 제조업 보호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관세청은 지방정부·생산자 단체와 함께 3자 협업형 ‘원산지 둔갑 종합단속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관세청이 통관 데이터로 원산지 둔갑 정황을 포착하고, 지방정부는 지역 산업의 피해 실태를 파악하며, 생산자 단체는 업종별 피해 품목을 발굴하는 방식이다. 또한 저가신고를 통해 세액을 탈루하는 행위에 대해 기획 관세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외국 세관당국과 협력해 K-브랜드 위조 상품의 현지 보호기반을 구축하고 특별합동단속도 확대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것이다.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일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국내 시장은 한정되어 있지만 전 세계 소비 시장은 넓게 열려 있다. 더 많은 경제주체가 참여하도록 하면서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세계시장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모두의 창업’을 넘어 ‘모두의 수출’로 나아갈 때다. 특히 역직구는 개인·영세사업자도 해외 소비자를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유용한 수출 통로다. 이에 관세청은 역직구 관련 각종 세금 환급 절차를 간소화하여 수출자의 세제부담을 완화하고, 수출자들의 통관·운송비용 절감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접국과의 해상특송 협력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가까운 국가로 선박을 이용해 소형화물을 운송하는 해상특송은 항공특송과 속도는 비슷하면서도 비용이 훨씬 저렴해 전자상거래 수출 시 운송비용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아울러 통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자상거래 수출 통계를 개발해 수출 초보 기업에 제공함으로써 수출 전략 수립과 유망 시장 발굴 등 신규 비즈니스 기회 창출을 지원할 것이다. K-뷰티·K-푸드·중고차 등 유망 수출품의 원산지 증명 절차를 간소화해 해외 판로 개척도 뒷받침할 예정이다.
이 모든 변화의 밑바탕에는 AI 대전환이 있다. 관세행정은 방대한 관세무역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AI 활용의 잠재력이 크다. 관세청은 지난 2017년부터 업무 전문성과 AI 개발 역량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를 자체적으로 양성해 왔고, 올해 초에는 AX(AI Transformation) 추진단을 구성했다. 앞으로 이들을 중심으로 AI 정보화전략계획을 완성해 관세행정 전 분야의 인공지능 전환을 추진하고, 연 2회 ‘AX 챌린지’를 열어 현장 직원들이 AI 모델을 직접 개발하고, 활용하는 문화를 정착시킬 계획이다. 현장에서 시작되는 혁신이 국경 관리의 정확성과 속도를 함께 끌어올릴 것이다.
‘안전한 국경’은 국민을 지키고, 규칙을 지키는 ‘공정한 국경’은 기업을 키우며, 수출하기 쉬운 ‘열린 국경’은 ‘대체불가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 된다. 관세청은 국경 최일선에서 초국가 범죄를 빈틈없이 차단하고, 공정한 무역 질서를 확립하며, 더 많은 기업이 세계시장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