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계부채 총량 관리 ‘경직성’ 문제
가계대출 안정화 효과에도 부작용 속출
시장 왜곡에 실수요자 대출 문턱 높여
경상성장률 2배 뛰더라도 기준치는 고수
자연스러운 성장흐름과 충돌 구조적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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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국민은행이 지난 10일부터 수도권과 규제 지역의 주택구입자금 대출 최대한도를 기존 6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축소했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제한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임세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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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는 열리고 연말이면 닫힌다. 창구를 닫았다 열 때마다 눌려 있던 수요는 폭발하듯 쏟아진다. 가계대출 시장에서 이런 풍경은 어느덧 상수가 됐다. ‘하반기에 집 사면 손해’라는 냉소 섞인 조언은 대출 여부가 ‘시기’에 좌우되는 불합리한 현실을 보여준다.
대출절벽이 매년 되풀이되는 배경에는 정부의 경직된 가계부채 총량 관리가 있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진단이다. 경기와 금리, 자금 수요와 상관없이 대출 물량을 기계적 한도 내로 묶다 보니 은행은 연말로 갈수록 한도 축소나 접수 중단 같은 강수를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따라 대출 규모가 늘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인데도 절대액만 억제하면서 시장을 왜곡하고 실수요자의 문턱을 높였다는 지적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본격 도입한 것은 2021년이다. 당국은 2019년 연간 증가율 목표를 한 차례 제시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자취를 감추면서 총량보다는 질적 관리에 방점을 찍는 듯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저금리 속에 ‘영끌’과 ‘빚투’가 확산하자 비상 브레이크를 꺼내 들었고, 총량 규제는 대출 시장의 핵심 통제 수단으로 굳어졌다.
총량 규제는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안정화하는 데 분명 효과를 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8.0%에서 2021년 7.4%로 둔화됐고 2022년에는 0.5% 역성장했다. 2023년에는 0.6% 증가하는 데 그쳤고 2024년과 2025년에도 각각 2.6%, 2.3%의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부작용도 속출했다. 공급이 제한되면서 대출 시장은 철저한 공급자 우위 구조로 기울었다. 은행은 가산금리를 인위적으로 올리고 한도를 줄이거나 모집 채널을 제한하는 등의 방식으로 물량을 맞췄다. 그 비용과 피해는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자 부담이 커졌고 일부 차주는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으로 밀려났다. 시장의 자율적 가격 기능을 훼손하고 실수요자와 취약 차주의 금융 접근성을 낮췄다는 비판이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자율규제라고는 하지만 금융당국이 페널티까지 부과하는 사안이다 보니 모두가 총량을 중심으로 대출을 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더 나아가 금융권에서는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경제의 자연스러운 성장 흐름과 충돌한다는 점을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으로 지적한다.
국내총생산(GDP)이 늘고 소득과 물가가 상승하면 주택 가격은 물론 기본적인 생활비와 사업 자금의 단위도 커진다. 그에 따라 가계대출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데 절대적인 액수를 억제하려다 보니 실수요와 투자수요를 가리지 못한 채 자금 흐름 전반을 막는 역설을 낳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올해에는 통상 연말 본격화되던 대출절벽이 조기에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이 역시 시장 현장의 흐름을 외면한 당국의 일률적 규제가 촉발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연초 잠잠했던 주택담보대출은 최근 급증세를 보였는데 이는 5월 9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라는 정부의 정책적 결단에 따른 수요 집중의 결과다. 또한 올해 전반적으로 보면 증시 활황으로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는데 여기에는 정부가 국내 주식 투자를 직·간접적으로 유도한 영향이 상당했다. 정부가 수요를 유인해 놓고는 정작 대출은 묶어버린 상황이 전개된 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상성장률(명목 GDP 성장률) 전망치가 지난 6월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 기준 10.4%로 6개월 전인 작년 12월 발표 당시(4.0%)보다 2.5배가량 상향됐다는 점이다.
올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 증가 목표로 1.5%를 제시했는데 이러한 수요 증대와 경제 규모 확대 등 현장 상황의 변화에도 기준치는 고수하고 있다.
물론 막대한 가계부채가 금융 시스템의 잠재 위험이고 높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적다. 다만 이 비율은 2021년 98.7%에서 2022년 97.3%, 2023년 93.0%, 2024년 89.6%, 2025년 88.6%로 낮아지고 있다. 체질 개선이 진행되는 만큼 절대액을 강하게 옥죄기보다 성장률과 정책 변화에 맞춘 유연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총량 목표는 낮은 경상성장률을 전제로 설정됐지만 성장률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며 “경제 규모 확대를 반영해 대출 총량 규제를 완화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