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에 지배 당한 증시…삼전닉스와 스페이스X는 왜 다를까 [홍길용의 화식열전](904회)

2년 연속 글로벌 최고 수준의 질주를 이어오던 코스피가 15개월 만에 장기 추세선(120일선)인 6600까지 위협받는 처지가 지경이 됐다. 시가총액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천문학적 이익을 예고하고 있음에도 글로벌 증시 역사에서 가장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는 점에 아이러니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명작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이 떠오른다. 오만한 남자 주인공 다아시(Darcy)가 편견에 사로잡힌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Elizabeth)가 만나 갈등을 겪다 서로가 진실을 마주하면서 화해로 마무리 되는 줄거리다.

* 챗GPT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미지입니다.


오만, 감마(Γ)도 모른 채 허용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가장 먼저 달러/원 환율 잡겠다고 섣불리 삼전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leverage) ETF를 허용한 정부의 오만이다. 기초자산 가격 변화(Δ)에 대한 민감도, 즉 그 변화율(Γ/γ)에 대응하는 감마 헤지(hedge)의 기본 원리를 이해한다면 시가총액 비중이 절반이 넘는 초대형 종목들에 L・ETF를 그리 쉽게 허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초대형인 두 종목 움직임은 지수까지 흔들어 다른 ETF는 물론 파생상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삼전닉스 외에 다른 시총 상위주도 급락한 이유다. L・ETF에 투자하려고 코스닥에서 넘어온 자금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야말로 파장이 어마어마하다.

단기 수익에만 눈이 멀어 원주 보다 삼전닉스 단종L・ETF에만 집중한 일부 국내 투자자들 역시 오만했다. 단종L・ETF 투자 자격 획득을 위한 의무교육 과정에서 가장 강조한 것이 ‘음의 복리효과(Volatility drag)’다. 레버리지투자는 자산 가격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때 위험이 아주 크다.

특히 단종L・ETF 출시 당시에도 외국인들은 비중 조절(rebalancing)을 위해 계속 삼전닉스를 팔고 있었다. 주가가 오를수록 이들의 매도 강도가 높아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류의 시장에 대한 이해는 교육과정에 없었다.

편견, 한국 기업에만 더 깐깐한 글로벌IB

최근 해외의 시각을 보면 예전과 차원이 달라진 삼전닉스를 여전히 과거 잣대로만 평가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는 AI 서비스 고도화와 자율주행, 피지컬 AI 등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AI 데이터센터의 반도체 사용 연한도 기존 일반 서버용 보다 짧다. 신규 뿐 아니라 교체 수요도 크다.

HBM은 범용 D램과 다르다. 범용 D램은 만들어 놓고 팔리지 않으면 재고 부담에 수익성이 악화됐다. HBM은 엔비디아 등과 물량·가격을 미리 묶는 주문생산이라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폭락 사이클의 진폭이 작다. 이익의 가시성이 D램 같은 원자재(commodity)가 아니라 파운드리에 가깝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를 넘어 파운드리·패키징을 아우르는 수직 통합으로, SK하이닉스는 HBM에 이어 신개념 낸드 ‘HBF’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그럼에도 두 회사의 12개월 선행 PER은 각각 6배, 5배 안팎이다. 범용 D램 회사이던 시절의 상단(삼성 13배, SK하이닉스 10배)에도 한참 못 미친다.

삼전닉스가 장기공급계약을 늘리는 것은 이익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최근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늘어나는 수요에 걸맞는 생산능력을 갖추기 위해 적절한 설비투자(CAPEX)를 하지 않으면 중국 창신메모리(CXMT) 같은 경쟁자에게 시장점유율을 내어주기 쉽다.

글로벌IB들이 이같은 변화를 모를 리 없을텐데, 결국 ‘엿장수 마음’인 것일까? 최근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은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이 AI에 투자하면서 반도체를 사들인 결과다. 같은 현금흐름 구조에서 엔비디아에 있으면 높은 가치를 인정받지만, 한국 기업에 도착하면 그 값이 깎인다. 삼전닉스가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더 우월한 자신들이 보기엔 부족하다는 ‘편견’이다. 검증되지 않은 스페이스X의 서사엔 상상력까지 부여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삼전닉스가 미국 기업이었더라도 과연 지금과 같을까?

외국인들이라고 모두 현자(賢者)는 아니다. 글로벌IB의 예측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스스로 초래한 서브프라임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도 예견하지 못했다. AI 반도체 슈퍼사이클도 지난해 하반기에 시작된 후에야 알았다. 1년 전 이들이 제시한 삼전닉스 올해 합산 영업이익 전망은 79조원으로 지금(627조원)의 1/8이다. 국내 증권사의 반도체나 제조업에 대한 이해가 이들보다 나아 보인다.

중용, 과열도 급랭도 그 끝은 가치의 새로운 발견

오만과 편견은 한쪽에 치우친 개념이다. 공부와 사색으로 자리를 바로잡아야 중용(中庸)이 될 수 있다.

“정성스러운 자는 선(善)을 선택하여 굳게 잡는 자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며, 밝게 분별하라(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중용 제20장)

최근 코스피와 삼전닉스 급락은 과장된 우려가 지나친 쏠림과 만난 증폭된 일시적인 충격이다.

삼전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 평균이 627조원(삼전 362조+닉스 265조)이다. 내년에는 그 이상이 유력하다. 지난 1년 새 주가도 많이 올랐지만, 이익이 늘어난 폭이 더 크다. 정말 반도체 투자 감소(peak out) 우려가 크다면 주가 수준(valuation)이 더 높은 같은 생태계의 엔비디아나, TSMC, 마이크론 등의 낙폭도 삼전닉스 만큼 깊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6월 고점에서 지난 14일 저점까지 낙폭은 31%로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1~3월 때의 변동성 보다 더 깊다. 과연 지금이 그 때와 같은 불확실성의 상황일까? 아니면 고점 대비 주가가 반토막이 났던 2008년과 같은 위기의 상황일까? 2020년에는 미국이나 우리나 비슷했지만, 이번엔 유독 우리만 심하다.

이례적으로 변동성이 커진 시장에서는 경거망동 보다는 신중함이 미덕이다. 일단 장기 선인 6600선 지지 여부를 보자. 지난 해 4월 트럼프의 관세전쟁 선포 이후 유지되던 이 선은 지난 14일 장중 잠시 무너졌지만 이내 회복했다. 6월 19일부터 이달 7일까지 연속 순매도했던 외국인들은 8일, 9일, 14일 순매수를 기록했다. 기업들의 환전으로 달러/원 환율도 1500원대 아래로 떨어졌다. 모든 터널엔 끝이 있다.

시장을 탓하지 말라...결국 투자는 본인 책임

“활쏘기는 군자와 비슷한 점이 있다. 과녁을 놓치면 반대로 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射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중용 14장)

이번 폭락과 그에 따른 투자 손실은 정부의 오판, 일부 개인의 과욕, 외국인의 편견 등에서 비롯됐지만 이를 피하지 못한 것은 결국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다.

“현자는 지나쳐서, 범인은 부족해서 도를 밝히지 못한다(道之不明也 我知之矣 賢者過之 不肖者不及也)”

“사람들이 모두 음식을 먹고 마시지만, 맛을 잘 알 수 있기란 드물다(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

단종 L·ETF가 나올 때 쯤이 꼭지였던 것을 지나고 나면 너무 잘 알게 된다. 이참에 시장의 현실을 잘 배웠다고 생각하자.

팔 만큼 판 외국인, 기대보다는 실적이 가치를 결정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020년 코로나, 2022년 미국의 초긴축은 우리 증시 매수 주도권이 개인에서 외국인, 외국인에서 개인, 개인에서 외국인으로 각각 바뀐 시기다. 지난 해 하반기부터는 AI 반도체 특수로 외국인에서 개인으로 매수 주도권이 바뀌었다.

개인이 주도권을 쥔 때는 증시 상승폭은 가팔랐지만 지수 정점에서의 조정 폭이 컸다. 개인들이 값을 끌어올리면 외국인이 차익을 실현하는 패턴이었다. 반대로 외국인이 주도권을 가진 때는 상승 기울기는 완만하지만 변동폭이 적었다. 대부분 기관인 외국인들은 포트폴리오 원칙에 따라 비중 조절을 해 시장 과열을 유발하는 경우가 드물다.

중동 상황이 다시 오리무중이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7월 하순에는 하이퍼스케일러(hyper scaler)들인 미국 빅테크가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AI 투자 속도조절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모두 부담스런 재료이지만 이미 주가가 많이 하락했으니 어찌 보면 미리 매를 맞은 셈이다.

부담스런 재료가 다 소화되면 다시 가격 발견이 이뤄지고, 그래도 견조한 실적을 내는 반도체 기업들의 가치가 다시 평가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시장은 때로는 절망을 안겨주지만 늘 희망을 남겨놓는다.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의 오해를 푼 것은 진실을 담은 한 통의 편지였다. 시장에도 곧 편지가 도착한다. 막연한 기대는 경계하되 실적에 대한 믿음은 가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