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대출절벽 배경에는
경직된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
가계대출 안정화 효과 내긴 했지만
시장 왜곡·실수요자 대출 문턱 높여
경상성장률 2배 뛰어도 기준치는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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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구 일대 아파트의 모습. [헤럴드DB] |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연말이면 닫히고 연초면 열린다. 창구를 닫았다 열 때마다 눌려 있던 수요는 폭발하듯 쏟아진다. 가계대출 시장에서 이 같은 기풍경은 어느덧 상수가 됐다. ‘하반기에 집 사면 손해’라는 냉소 섞인 조언은 대출 여부가 ‘시기’에 좌우되는 불합리한 현실을 그대로 대변한다.
대출절벽이 매년 되풀이되는 배경에는 정부의 경직된 가계부채 총량 관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공통된 진단이다. 경기 흐름이나 금리 변동, 자금 수요와 상관없이 대출 물량을 기계적 한도 내로 묶어두다 보니 은행으로서는 연말로 갈수록 한도 축소나 접수 중단 같은 강수를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따라 대출 규모가 확대되는 것이 순리임에도 금융당국이 절대 액수만 강하게 옥죄면서 시장을 왜곡하고 결국 실수요자의 대출 문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지난 2021년이다. 이는 일방적인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지양하겠다던 종전 정부의 기조와 180도 달라진 조치였다.
2015년부터 계속된 가계대출 확대 흐름에 당국은 2019년 연간 증가율 목표를 한 차례 제시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자취를 감추면서 총량보다는 질적 관리에 방점을 찍는 듯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직후 저금리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빚투(빚내서 투자)가 확산하자 총량 규제 카드를 전격 꺼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임시 ‘비상 브레이크’로 여겨졌지만 현재까지도 이는 자금 흐름 전반을 조이는 대출 시장의 핵심 ‘잠금장치’로 굳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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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DB] |
총량 규제는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안정화하는 데 분명 효과를 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8.0%에 달했던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은 2021년 7.4%로 둔화됐고 2022년에는 0.5% 역성장했다. 2023년에는 가계대출 총량 증가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도 0.6% 증가하는 데 그쳤고 2024년과 2025년에도 각각 2.6%, 2.3%의 비교적 안정적인 증가 흐름을 보였다.
문제는 부작용도 속출했다는 점이다. 대출 시장이 철저한 공급자 우위 구조로 기울었다는 게 대표적이다. 대출 수요가 있는데 공급을 제한하다 보니 은행은 가산금리를 인위적으로 올리거나 한도를 낮추고 모집 채널을 제한하는 등의 방식으로 물량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과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자를 더 많이 부담해야 했고 대출이 거절된 일부는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으로 떠밀려 가야 했다. 시장의 자율적 가격 기능을 훼손하고 실수요자와 취약 차주의 금융 접근성을 떨어뜨린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총량 규제에 있어 개별 은행의 특성이나 영향, 대출 상황 등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며 “수요와 공급의 기본적인 원칙을 제한하는 일괄적인 총량 제한이 시장 왜곡과 소비자 불안, 혼란을 초래하는데 은행권이 이에 앞장서고 있다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자율규제라고는 하지만 금융당국이 페널티까지 부과하는 사안이다 보니 모두가 총량을 중심으로 대출을 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더 나아가 금융권에서는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경제의 자연스러운 성장 흐름과 충돌한다는 점을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으로 지적한다.
국내총생산(GDP)이 늘고 소득과 물가가 상승하면 주택 가격은 물론 기본적인 생활비와 사업 자금의 단위도 커진다. 그에 따라 가계대출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데 절대적인 액수를 억제하려다 보니 실수요와 투자수요를 가리지 못한 채 자금 흐름 전반을 막는 역설을 낳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올해에는 통상 연말 본격화되던 대출절벽이 조기에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이 역시 시장 현장의 흐름을 외면한 당국의 일률적 규제가 촉발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연초 잠잠했던 주택담보대출은 최근 급증세를 보였는데 이는 5월 9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라는 정부의 정책적 결단에 따른 수요 집중의 결과다. 또한 올해 전반적으로 보면 증시 활황으로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는데 여기에는 정부가 국내 주식 투자를 직·간접적으로 유도한 영향이 상당했다. 정부가 수요를 유인해 놓고는 정작 대출은 묶어버린 상황이 전개된 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상성장률(명목 GDP 성장률) 전망치가 지난 6월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 기준 10.4%로 6개월 전인 작년 12월 발표 당시(4.0%)보다 2.5배가량 상향됐다는 점이다.
올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 증가 목표로 1.5%를 제시했는데 이러한 수요 증대와 경제 규모 확대 등 현장 상황의 변화에도 기준치는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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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DB] |
물론 막대한 가계부채가 금융 시스템의 잠재적 리스크라는 점, 높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당국의 부채 하향 안정화 기조에 대한 공감대는 있다.
다만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완만한 우하향 곡선을 그리는 등 체질 개선이 진행 중인 만큼 부채액을 강하게 옥죄기보다는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는 거시경제 지표와 정책 연동성을 고려해 규제에도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우리나라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부동산 급등기인 2020년과 2021년 각각 97.1%, 98.7%까지 치솟았다가 점진적인 관리를 거쳐 2022년 97.3%, 2023년 93.0%, 2024년 89.6%, 2025년 88.6%로 둔화되고 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총량 목표는 종전의 낮은 경상성장률을 기초로 설정한 것인데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률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경제 규모가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고 정부가 2030년 목표로 제시한 GDP 대비 부채비율 80% 도달에도 빠른 속도로 수렴하고 있다. 바뀐 성장률을 반영해 대출 총량 규제도 보다 완만하게 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언급했다.
한편 15일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학계·전문가, 금융·주택·건설업계·국민 등 약 70명과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대출총량 규제완화 등 각계의 제언이 나올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