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영광 넘어 후학 양성·유도 행정 발전에 헌신
이천우 총동문회 실무부회장 등 유도계 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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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철 교수의 정년퇴임식에 이천우 용인대 총동문회 실무부회장을 비롯한 유도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양정원 기자 |
[헤럴드경제=양정원 기자] 한국 유도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키워가던 순간마다 그의 이름이 있었다. 선수로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시상대에 올랐고, 스승으로는 수많은 국가대표와 지도자를 길러냈으며, 행정가로는 한국 유도의 미래를 설계했다.
조용철 용인대 유도경기지도학과 교수가 14일 정년퇴임식을 끝으로 42년간 이어온 교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날 용인대에서 열린 퇴임식은 한 교육자의 은퇴를 넘어 한국 유도의 한 시대를 함께해온 원로 체육인을 기리는 자리였다.
퇴임식에는 대학 관계자와 동료 교수, 제자, 동문, 유도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기념 영상 상영과 축사, 송별사, 공로패 전달이 이어졌고 참석자들은 오랜 시간 한국 유도를 위해 헌신해온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용인대 총동문회 실무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천우 서울시유도회장은 축사를 통해 “후학 양성에 헌신하며 한국 유도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참된 교육자”라며 “늘 자신보다 동료와 후배를 먼저 생각하는 헌신적인 자세로 유도계의 귀감이 돼 온 만큼, 앞으로도 한국 유도의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유도 중량급의 역사를 새로 쓴 선수로 평가받는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한국 유도 중량급 선수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고, 이듬해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며 한국 유도의 경쟁력을 세계에 알렸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메달을 추가하며 올림픽 2회 연속 메달리스트라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유도 인생은 메달에서 멈추지 않았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는 용인대 강단과 도장을 지키며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선수와 지도자, 심판, 체육행정가로 성장한 수많은 제자가 지금도 국내외 유도 현장에서 한국 유도를 이끌고 있다.
그는 경기 성적보다 사람을 키우는 교육을 강조했다. 기술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내와 절제, 상대를 존중하는 유도의 정신을 전하는 데 힘을 쏟았다. 도장은 승패를 겨루는 공간이기 이전에 사람을 성장시키는 교육의 현장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용인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며 “제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대한민국 유도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교육자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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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교수는 대한유도회장을 맡아 선수 육성과 경기력 향상, 유도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대한유도회 제공 |
교육 현장 밖에서도 그의 역할은 이어졌다. 대한유도회 국제평가위원장과 정무이사, 상임부회장 등을 거쳐 대한유도회장을 맡으며 선수 육성과 경기력 향상, 유도 저변 확대에 힘써왔다. 아시아유도연맹 사무총장과 교육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국제 교류와 지도자 교육에도 앞장섰다. 선수 시절 세계 정상에서 쌓은 경험을 교육과 행정으로 확장하며 한국 유도의 경쟁력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용인대에서는 무도대학장과 대학원장을 맡아 체육교육과 연구 기반을 다졌고, 대학과 유도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수행했다.
그는 “퇴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이제는 후배들이 대한민국 유도의 더 큰 역사를 만들어갈 차례다. 저 역시 필요한 순간에는 언제든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42년 동안 그가 남긴 것은 메달과 기록만이 아니다. 세계 정상에 섰던 선수는 스승이 돼 사람을 길렀고, 행정가가 돼 한국 유도의 미래를 준비했다. 교단에서는 물러나지만 조용철이라는 이름이 한국 유도에 남긴 시간은 앞으로도 제자들과 후배들의 도전 속에서 계속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