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을 수 있는데 왜 안 빌려주나요?” 너무 일찍 닫힌 은행 ‘대출 문’, 내집마련도 포기

[고질병 된 대출절벽①]
대출 한도 축소 모든 은행권 확산 움직임
5대 은행 연간 대출 잔여 한도 1조원도 채 안 남아
잠재 부동산 구매자·계약자 등 실수요자 패닉
매년 반복되는 대출 절벽에 대출자 불신 깊어져
상환능력 아닌 대출 시기에 따른 불평등 지적


서울 한 은행 대출 창구의 모습 [헤럴드DB]


[헤럴드경제=서상혁·김은희·유혜림 기자] “집을 사려고 부동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완전히 날벼락 맞았어요. 이럴거면 대출도 선착순이니 서두르라고 말을 해주던가요. 완전 대출 배급제 아닌가요?”

경기도 남양주시 거주 중인 37세 직장인 남 모 씨는 올해 주택 구매 계획을 아예 접었다. 정부의 대출 규제에 맞춰 나름대로 자금 계획을 세우고 임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이번 달 들어 KB국민은행이 자체적으로 대출 한도를 반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들도 국민은행처럼 한도 제한을 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쏟아지면서 아예 의욕을 잃었다.

남 씨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한도를 3억원 줄여버리면, 어디서 그 돈을 구해오라는 것인가”라며 “상환 능력 안에서만 대출 해주면 되는 것이지, 왜 시기별로 차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하반기 들어 KB국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대폭 축소하면서 올해도 ‘대출 절벽’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숏폼 영상 등을 중심으로 “대출을 받지 못했다”는 사례가 잇따라 공유되면서 불안 심리도 빠르게 확산하는 모습이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하반기마다 대출 절벽이 반복되자 차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대출 가능 여부가 상환 능력이 아니라 신청 시기에 따라 갈리는 구조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일부 차주들은 벌써 내년 초 ‘대출 오픈런’을 준비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앞서 KB국민은행은 지난 10일부터 수도권과 규제 지역에서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기존 6억원에서 3억원으로 축소했다. 규제지역이 아닌 곳에는 3억원의 한도 규제를 새로 만들었다.

그간 은행권은 신용대출 한도를 축소하거나 주택담보대출의 모기지신용보험(MCI)·모기지신용보증(MCG) 가입 제한 등의 대출 규제를 펴왔다.

특히 KB국민은행은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은행 가운데 상반기 기준 가계대출 총량 여력이 가장 많이 남아 있던 곳이어서 시장의 충격은 더 컸다. 이미 전년보다 강화된 총량 규제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한 은행이 대출을 조이면 수요가 다른 은행으로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은행도 KB국민은행 수준은 아니지만 추가 대출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실제 KB국민은행에 이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MCI·MCG 가입 제한 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 상품에 가입하지 못하면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도 줄어든다. 우리은행은 이에 더해 16일부터 영업점별 부여된 월별 주담대 취급 한도를 기존 30억원에서 10억으로 줄이기로 했다.

5대 은행의 지난 9일 기준 가계대출(정책대출 제외) 잔액은 648조360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말 대비 3조3846억원 늘어난 수치로 이들 은행에 허용된 올해 전체 가계대출 증가분(4조3366억원)의 78%를 채웠다. 7월이 이제 막 시작됐음에도 잔여 한도가 1조원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추이


대출자들 사이에서는 “조만간 대출 문이 닫힐 것”이라는 불안감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대출 가능 여부를 묻는 글과 상담 후기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뉴미디어를 통한 정보 확산이 대출 수요를 앞당기는 이른바 ‘가수요’를 부추기며 악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올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 모 씨(35·인천 거주) 역시 커뮤니티 게시글 등을 접한 뒤 부랴부랴 은행 영업점을 돌며 부동산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

김 씨는 “자금 계획에 맞춰 차근차근 내집 마련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은행 대출이 막힌다는 소식을 듣고 조바심이 들었다”며 “실제 몇몇 영업점을 돌아봤는데 생각했던 거보다 한도가 많지 않아, 사실상 계획을 접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계약을 마친 이들은 중도금이나 잔금을 치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패닉 상태다. 집단대출, 중도금 대출 역시 가계대출 총량 규제 대상이다. 이날도 모 커뮤니티에는 “대출이 예정대로 가능할지 싶어 분양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자력으로 내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누리꾼은 “계약서에 서명은 하긴 했는데, 점점 잔금 날짜가 다가오니 불안하다”며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실제 예상대로 대출이 나올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주택 구매 수요뿐 아니라 생활자금이 필요한 차주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은행 대출이 어려워지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카드사나 저축은행으로 이동해야 하고, 기존 2금융권 이용자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P2P)이나 대부업체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이른바 ‘대출 난민’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저축은행 고위 관계자는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을 이용하던 차주들이 종종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며 “아직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모습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총량규제를 도입하면서 하반기 대출 대란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지난 2021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전년도 잔액의 5~6%, 이듬해 4~5%로 하향 설정했다. 2023년부터 2024년까지는 경상성장률 내에서 관리하도록 완화됐지만, 지난해 다시 부동산 가격이 꿈틀하면서 총량규제가 재도입됐다. 지난해에는 전년도 증가분의 1.7%, 올해는 더 강화된 1.5%로 설정됐다.

실제로 2021년에는 하반기 시작과 함께 NH농협은행이 가계대출 취급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다른 은행과 2금융권으로 수요가 몰리기도 했다. 당시 농협은행은 총량 목표를 초과해 협약을 맺은 아파트 사업장의 집단대출을 취급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고,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던 신한은행이 일부 물량을 대신 지원한 사례도 있었다.

정부는 올해부터 특정 시기 대출 쏠림 방지를 위해 분기별 목표치를 설정했다. 다만 이를 어기더라도 다음 분기 관리목표에서 차감하는 정도의 페널티만 적용하고 있어 현실에서 안착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 총량규제 역시 ‘자율규제’라는 점에서 별다른 제재도 어려운 상황이다.

모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은 연간 수익으로 실적이 판가름 나는데, 연초에 일단 대출을 많이 실행해 두는 것이 연간 이자수익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