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는 애정 결핍 E형, 엘사는 신중 I형
음악에 인물 성격 투영…자매 심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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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왕국’ 호주 프로덕션 ‘렛 잇 고’ 장면 [Lisa Tomasetti, 에스앤코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렛 잇 고(let it go)~ 렛 잇 고~”
2013년,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누군가에겐 ‘자유’였고, 누군가에겐 ‘용기’였다. 소용돌이치는 절망의 고통을 깨고 한 걸음을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이 노래에 실렸다.
“‘렛 잇 고’는 끝이 아니에요.”
브로드웨이 뮤지컬 ‘겨울왕국’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 이후의 이야기다. 끝나지 않은 죄책감,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다시 써내려간다. ‘겨울왕국’의 음악을 만든 로버트와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 부부는 애니메이션 영화 이후 10년, ‘엘사의 마음’을 다시 써 내려갔다.
한국 초연(8월 13일 개막, 샤롯데씨어터)을 앞두고 서면으로 만난 로페즈 부부는 “‘’겨울왕국‘은 본질적으로 가족 내부의 비극과 트라우마를 다룬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말했다.
은빛 마법으로 물들었던 얼음 왕국. 그곳에 ‘아름다운 동화’가 피어났다. 모험을 떠나는 자매, 사랑스러운 눈사람 올라프, 중독성 강한 선율들…. ‘겨울왕국’은 끝내 ‘렛 잇 고’로 해방의 순간을 마주하나, 작곡가 부부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사실 두 사람이 작품의 뮤지컬 작업을 제안받은 것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이었다. 디즈니의 ‘니모를 찾아서’를 뮤지컬로 작업한 경험이 ‘겨울왕국’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부부는 ‘겨울왕국’ 뮤지컬의 ‘음악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무수히 많은 날을 고민했다. 이들이 향한 곳은 작품의 가장 깊숙한 내면이었다.
“‘겨울왕국’은 한 가족이 예상치 못한 트라우마로 인해 어떻게 차갑게 얼어 버리는지, 그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어떤 방어기제적 역할을 떠맡게 되는지, 얼어붙은 채 고착된 역할들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한 인간의 삶에 얼마나 부정적인 패턴과 두려움으로 대물림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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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왕국’의 음악을 만든 로버트 로페즈,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 부부 [에스앤코 제공] |
당시를 떠올리며 부부는 “아이디어를 쥐어짜 낸 날들”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그 유명한 ‘렛 잇 고’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이틀간 이어진 워크숍에서 마침내 도달한 결론이 있었다. “‘렛 잇 고’가 반드시 1막의 엔딩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작품의 본질을 파헤쳐 얻은 이 결정이 무대의 출발점이었다.
크리스틴 로페즈는 “뮤지컬 스코어를 쓰는 모든 순간, 모든 곡의 선택 이면에 이 작품의 본질적인 심리적 서사를 깔아뒀다”라고 했다.
일종의 ‘심리 치료적 관점’은 엘사와 안나 자매의 캐릭터 보이스와 음악적 배치를 설계하는 확고한 기준이었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결핍과 두려움은 악보 위 음표와 노랫말로 적혔다.
크리스틴은 “안나가 부르는 모든 노래는 영화 속 ‘두 유 원트 투 빌드 어 스노우맨(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의 정서와 100%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닫힌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그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고, 왜 혼자여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 버려진 어린아이의 외로움”이 안나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안나의 결핍은 이 외로움에서 시작된다.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안나의 내면은 “빠르고, 크고, 흥분된 목소리”로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전형적인 E(외향형)’ 성향의 인물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불꽃처럼 강렬하고 화려한 원색의 언어들을 구사한다”는 것이 부부가 설정한 안나다.
엘사는 안나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두 사람은 엘사를 “자신의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사랑하는 여동생을 해치고 죽일 뻔했다는 공포에 저당 잡혀 있다”고 봤다. 엘사가 부르는 모든 음표와 가사의 근간 역시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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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왕국’ 호주 프로덕션 [Lisa Tomasetti, 에스앤코 제공] |
“엘사는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쁜 존재’이자 ‘누구의 곁에도 있으면 안 된다’는 강력한 죄책감을 품고 있어요. ‘겨울왕국’ 전체 스코어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 거대한 내면의 상처와 처절하게 격투하는 여정을 겪죠.”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
안나와 달리 엘사는 자기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지도, 세상이 들어주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것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혼자만의 공간’에 남겨져 비로소 ‘내려놓는 순간’(렛잇고)이 찾아오기 전까진 철저하게 내면을 숨기고 단속한다. 엘사의 가사가 “자연을 비유한 고요하고 은밀한 언어로 채워진 이유”라고 했다.
영화에선 엘사가 마침내 ‘렛 잇 고’를 부르며 성밖으로 뛰쳐나가지만, 뮤지컬의 구성이 달라지며 무대는 새로운 음악적 서사를 필요로 했다. 로버트 로페즈는 이 순간을 “엘사가 프로시니엄(proscenium, 액자 무대)을 만져 무대 전체를 얼려버리는 악몽 같은 혼란의 장면으로 완성했다”고 회상했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감정이 음악적으로 최고조에 달하는 이 시퀀스는 무대 위에서 숨이 멎을 만큼 압도적인 명장면으로 재탄생했다.
2막의 변화는 더 흥미롭다. 엘사가 고립된 설산에서 홀로 해방감을 마주하는 데에서 영화가 멈췄다면, 뮤지컬은 다르다. 엘사는 자신이 선택한 도피가 불러온 혹독한 대가를 마주하며 성장한다. 새롭게 추가된 엘사의 솔로곡 ‘몬스터(Monster)’는 힘을 가졌으나 절대 그 힘을 쓰면 안 되는 자의 처절한 고뇌와 도덕적 딜레마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독백이다. “나 혼자만 도망쳐서 살아갈 수는 없어. 내가 시작해 버린 이 파멸적인 상황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라고 묻는 엘사의 고뇌는 이 뮤지컬을 ‘성장 드라마’로 다시 쓴다.
로페즈 부부가 피아노 한 대로만 상상했던 평면적 선율은 오케스트레이터 데이브 메츠거의 손을 거쳐 풍부한 색채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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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왕국’에서 엘사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정선아 [에스앤코 제공] |
로버트 로페즈는 데이브 메츠거를 “영화와 뮤지컬을 통틀어 가장 과소평가된 숨은 영웅이자 편곡 예술의 거장”이라고 치켜세웠다.
데이브 메츠거는 악기를 화려하게 배열하는 것은 기본, 각각의 악기가 가진 고유한 음색을 통해 인물의 심리와 ‘스토리’를 전달한다.
“‘데이브, 이 멜로디 모티브는 플루트가 받아주면 좋겠어요. 플루트는 특유의 순진무구하고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으니까요. 오보에는 너무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성숙한 느낌이 나니 여기선 안 될 것 같아요.’ 데이브는 이런 감정적 의도를 직관적으로 완벽하게 이해해요.” (로버트 로페즈)
굳이 ‘기술적 대화’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다. 음악가들은 서로의 언어를 척척 알아차렸다. “‘여기선 분노가 느껴지도록‘, ‘여기선 감정이 뿜어져 나오게’, ‘여긴 아이처럼’ 해달라고 하면 메츠거의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적확하게 번역해 냈다”고 로버트는 설명했다.
오케스트라 편성은 압도적인 시각에 걸맞는 청각적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한 장치였다. 로페즈 부부는 웅장하고 무거운 저음을 뿜어내는 베이스 트롬본과 튜바를 통해 무대 사운드의 바닥을 채웠다. 크리스틴은 “서사적 스코어를 진정한 에픽(epic, 서사시)의 경지로 격상시켰다”고 귀띔했고, 로버트는 “우리 작품 중 두 악기가 편성된 것 처음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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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왕국’ 호주 프로덕션 [Lisa Tomasetti, 에스앤코 제공] |
오프닝 곡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20개가 넘는 버전을 갈아엎으며 새로 썼다”는 부부에게 음악은 또 하나의 배우이자, 캐릭터이자, 살아 숨 쉬는 예술이자, 감정의 번역기다. 두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겨울왕국 사운드’를 찾아낸 진짜 결정적인 순간은, 데이브가 영화를 위해 ‘포 더 퍼스트 타임 인 포에버(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를 편곡해 줬을 때였다”며 “관객들이 엄청난 양의 서사와 시각적, 음악적 충격을 한 번에 쏟아붓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했다.
로페즈 부부는 상처받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자 심리 치료제로 다시 태어난 ‘겨울왕국’을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나는 순간도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은 “거대하고 깊이 있는 예술적 요소를 관객과 나누는 순간이 가장 흥분된다”며 “한국의 관객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훨씬 더 거대하고 깊이 있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극장에서 받아 가게 될 것이다. 창작자로서 그 놀라움과 순수한 감동의 순간을 한국 무대에서 어서 빨리 마주하고 싶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