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서 코인 사는 시대…미국發 ‘디지털금융 대전환’ 지각 변동 [H-EXCLUSIVE]

금감원 뉴욕사무소 분석 보고서 입수
미국, 디지털금융 패권 위해 제도 정비
은행들 가상자산 수탁 회계규제 풀고
가상자산 활동 사전통지·승인도 폐지
국내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에도 영향


[제미나이를 이용해 제작함]



금융감독원이 미국의 클래리티법을 은행과 가상자산업계 간 디지털금융 주도권 경쟁의 향방을 가를 핵심 법안으로 평가했다. 정부와 의회, 민간 금융회사까지 전방위적인 제도 정비에 나선 것도 혁신 기업과 자본의 해외 유출(오프쇼어링)을 막고 미국의 디지털금융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제도 변화에 맞춰 올 하반기 본격화할 국내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과정에서도 은행의 디지털자산 업무 허용 범위와 자본·건전성 규제, 금산분리 원칙의 적용 방식 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은행과 가상자산사업자 간 역할과 업무 경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가 향후 제도 설계와 감독체계를 가를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美, 클래리티법과 감독 완화 병행=14일 본지가 입수한 금융감독원 뉴욕사무소의 ‘미국의 디지털자산 명확성법 입법 동향’ 보고서를 보면, 금감원은 클래리티법을 둘러싼 입법뿐 아니라 은행 등 감독체계 전반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가상자산 수탁 규제 완화와 감독지침 폐지, 특별 감독 프로그램 종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미국이 은행 등 전통금융사들의 디지털자산 사업 참여를 가로막던 규제를 단계적으로 걷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금감원은 연방 감독당국의 규제 정비 과정을 ‘은행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위한 규제 완화’라는 큰 흐름으로 분석했다. 이에 보고서는 ▷가상자산 수탁 관련 회계지침 폐지 ▷기존 가상자산 규제·감독지침 폐지 ▷은행의 가상자산 보유 및 거래 권한 구체화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제도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은 클래리티법에 대해 “은행과 가상자산업계 간 디지털금융 주도권 경쟁의 향방을 가를 핵심 법안”이라며 미국이 디지털금융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좌우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또 정부와 의회, 민간 금융회사까지 전방위적으로 제도 정비에 나선 것도 혁신 기업과 자본의 해외 유출(Offshoring)을 막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은행 가상자산 수탁 막던 ‘자본 부담’ 해소=가장 먼저 손질된 것은 은행의 가상자산 수탁을 사실상 가로막아 온 회계 규제였다. 작년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은행이 고객의 가상자산을 수탁할 경우 이를 재무제표상 자산과 부채로 모두 계상하도록 했던 회계지침(SAB121)을 폐지했다.

그동안 해당 지침은 은행의 자기자본 부담을 크게 늘려 사실상 가상자산 수탁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SAB121이 폐지되면서 “은행 등 전통 금융기관도 과도한 자본 확충 없이 수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금감원은 평가했다. 또 이를 계기로 “향후 가상자산 거래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아울러 미국은 은행의 디지털자산 업무 범위까지 구체적으로 넓히고 있다. OCC(통화감독청)는 은행이 고객 지시에 따라 암호화폐를 매매·수탁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작년 말엔 블록체인 네트워크 수수료 지급을 위한 자체 가상자산 보유와 고객 간 암호화폐 상쇄거래(Riskless Principal Transaction)까지 허용했다.

예를 들어 고객이 비트코인을 사겠다고 주문하면, 은행이 거래소에서 같은 수량을 즉시 매수한 뒤 곧바로 고객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은행이 고객의 가상자산 매매를 직접 연결해주는 업무까지 허용된 것이다.

▶美, 사전규제 걷어내 은행 길 넓혀=금감원은 미국 OCC와 연방준비제도(Fed)도 잇달아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는 점도 주목했다. 작년 3월 OCC는 국법은행이 가상자산 관련 업무를 하기 위해 받아야 했던 사전 서면 승인 요건을 철회했고, 바로 한 달 뒤 연준 역시 가상자산 관련 활동과 스테이블코인 업무에 적용했던 사전 통지 및 사전 승인 제도를 폐지했다.

이어 작년 8월에는 은행의 가상자산 관련 활동을 중점 관리하기 위해 도입했던 ‘노벨 액티비티(SR 23-7)’ 감독지침도 폐지하면서 가상자산 업무에 대한 감독 기조가 사전 규제에서 사후 관리 중심으로 전환되는 흐름도 보였다. 여기에 미국은 가상자산 관련 특별 감독 프로그램과 평판리스크 검사도 종료하며 디지털자산 사업을 일반 금융업무와 동일한 감독 체계 아래 두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했다.

미국 은행권에서는 그동안 평판리스크가 가상자산 등 특정 산업과의 거래를 제약하는 명분으로 활용돼 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대형 은행들은 해당 조치로 감독의 초점이 추상적인 평판 위험에서 벗어나 재무건전성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리스크 중심으로 옮겨갔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국내에선 금융회사의 디지털자산 업무와 역할을 규정하는 법적 기반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 디지털자산 애널리스트는 “미국처럼 은행의 디지털자산 업무 범위와 역할을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제도를 정비해야 은행 등 전통 금융사들도 불확실성을 줄이고 관련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 예금 토큰 등이 본격화되면 결국 은행이 어디까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유혜림·경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