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자리 뺏은 게 아니었다”…美 노동시장 대체 무슨일? [나우, 어스]

2032년까지 대졸 은퇴자 1800만명…신입 대졸자는 1400만명 ‘미스매치’
AI 대체 어려운 직종에서 인력 부족 사태 위기
대학진학 감소·이민자 저지·저출산 등 노동인구 부족 가중
JP모건 “美 생산성·경쟁력, 국가안보까지 위협”

미국 뉴욕 퍼킵시에 위치한 바사칼리지의 졸업식 현장 모습.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문제는 AI도, 일자리 부족도 아니다. 그냥 사람이 부족하다.”-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본사를 둔 채용업체 블루시그널의 최고경영자 맷 월시

미국 대학 졸업생들 사이에서 신입사원 채용 감소의 원인으로 인공지능(AI) 확산이 지목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 인구 부족이 취업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13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기술 업계 채용 전문가들은 저출산과 대규모 은퇴, 인재 미스매치가 겹치면서 미국 경제 전반이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구구조가 변화한 것이 노동력 부족을 심화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장기간 이어진 저출산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노동시장에 공급되는 인력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지타운대는 2024년부터 2032년까지 대졸 노동자 1800만명 이상이 은퇴하는 반면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대졸자는 1400만명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 결과 약 460만명의 대졸 인력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라이트캐스트는 부족 규모가 최대 6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노동력 부족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현재 실업자 전원을 빈 일자리에 투입하더라도 상당수 산업에서는 여전히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빌 해슬럼 전 테네시 주지사는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준비시키지 못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슨의 카슨 이벤트 센터에서 구직자들이 ‘HIRE360 다양성 채용 박람회 및 메가 취업 박람회’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FP]


경제학계도 같은 진단을 내놓고 있다.

조지타운대 교육·노동력센터는 미국에서의 노동 인구 부족이 “향후 수년간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동시장 분석업체 라이트캐스트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노동력 부족 사태”라고 평가했고, JP모건체이스는 “만성적인 인재 부족이 국가의 생산성과 경쟁력, 나아가 국가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간호사와 의사, 교사, 엔지니어, 약사, 정신건강 상담사, 건설 노동자, 항공기 정비사 등 AI로 대체하기 어려운 직종에서 최대 수십만명의 인력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라이트캐스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론 헤트릭은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직종 대부분에서 사람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슨의 카슨 이벤트 센터에서 열린 ‘HIRE360 다양성 채용 엑스포 및 메가 취업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담당자들을 만나고 있다.[AFP]


전문가들은 대학이 배출하는 인재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 간 불일치도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료 분야다. 의료 인력 수요는 급증하는데 관련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헤트릭은 “우리는 너무 많은 학생을 경영학과 금융 분야로 보내고 있다”며 “사회는 다른 분야 인재를 필요로 하는데 대학은 필요 이상의 인력을 계속 찍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과 함께 대학 진학률 하락, 이민 감소도 노동력 부족을 악화시키고 있다.

미 교육부에 따르면 2023년 대학 등록자는 2010년 정점보다 약 200만명 감소했다. 여기에 저출산 영향으로 대학 진학 연령 인구도 2041년까지 13%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지난해 미국 이민자 수가 전년보다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령화로 수요가 급증하는 재가요양보호사의 41%는 이민자 출신이며, 간호조무사와 약사, 치과의사, 간호사의 약 20%도 해외 출신 인력이 차지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이에 대해 브래드 허시바인 업존고용연구소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스스로 ‘당신들은 필요 없다’며 환영의 문을 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에이펙스 기술학교에서 한 학생이 고급 전기 과정의 실습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AFP]


반도체 산업도 대표적인 인력난 업종이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2030년까지 반도체 산업 일자리가 11만5000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지만, 필요한 기술자와 엔지니어는 현재 공급 전망을 모두 합쳐도 6만7000명 정도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에릭 해들랜드 반도체산업협회 기술정책 담당자는 “반도체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큰 노동력 부족 문제의 일부”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숙련 기술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건설인재재단의 브란카 미닉 최고경영자는 “숙련 기술직에는 일자리가 넘쳐난다”며 “시급 50달러부터 시작하는 일도 적지 않지만, 대학 졸업생 가운데 그만한 시급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했다.